사랑밭 ~ 행복한가

사랑을 이길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다

갓바위 2024. 3. 7. 10:36

 

 

사랑을 이길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다

 

봄이 갔다 싶으면, 어김없이 집 안 가득 뭉근하게 익어가는 딸기 향이 났습니다.

초여름을 앞둔 엄마의 장바구니는 늘 상처 받은 딸기로 가득했죠.

빈병들에 딸기가 잼으로 채워질 때면, 어김없이 봄이 끝났습니다.

그렇게 만들어진 딸기잼은, 옆집으로, 친구의 집으로, 외할머니댁으로 보내졌습니다.

한 번은 “엄마, 나 이 냄새 싫어. 근데 딸기잼은 왜 이렇게 많이 만들어?“

철없는 어린 딸의 투정에, 엄마는 잠시 망설이다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외할머니가 엄마가 만든 딸기잼을 좋아하셔.” 나이가 들어서야 알게 됐습니다.

뭉근하게 익어 가는 딸기의 향은 엄마의 외로움의 냄새였을 것이라는 걸요.

 

외로움은 인간의 본능입니다. 하지만 그 외로움을 대하는 방식은 사람마다

다르죠. 어떤 이는 외로움을 슬픔으로 받아들이지만 어떤 이는 외로움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입니다. 여러분은 외로움을 어떻게 다루는 사람인가요?

 

좋은 나무는 나쁜 열매를 맺지 않는다.

또 나쁜 나무는 좋은 열매를 맺지 않는다. 나무는 모두 그 열매를 보면 안다.

가시나무에서 무화과를 따지 못하고 가시덤불에서 포도를 거두어들이지 못한다.

 

선한 사람은 마음의 선한 곳간에서 선한 것을 내놓고, 악한 자는 악한

곳간에서 악한 것을 내놓는다. 마음에서 넘치는 것을 입으로 말하는 법이다. 

<루가의 복음서 6. 43-45>

이 문장을 보면 더없이 나쁜 나무와 같이, 가시나무처럼, 가시덤불이라도

되는 듯 느껴지진 않나요? 우울한 생각을 지우려 냉동고 청소를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냉동고 깊은 곳에서, 지난해 엄마가 보내 준 김치통과,

함께 얼어붙은 메모를 발견했습니다.

 

딸, 니가 좋아하는 딸기야. 상처 난 딸기지만, 먹기 좋게 손질해서 얼려 보낸다.

냉동고에 잘 보관했다가 한여름 시원하게 주스로 만들어 마셔.

건강 잘 챙기고, 딸 잘 알지? 넌 참 귀한 사람이야.” -엄마가

 

꽁꽁 얼어붙어 있던 김치통을 끌어안고 한참을 울었습니다.

엄마가 보내 준 상처 난 딸기가 참 별 볼 일 없던 나를 귀한 사람으로

만들어 주는 순간이었습니다. 엄마의 당부대로

상처 난 딸기 한 움큼을 믹서에 넣고 갈아 마셨습니다.

 

왠지 영혼까지 달달해지는 듯 했죠.

농부가 한철 내내 어렵게 농사지었을 딸기였을 겁니다.

하지만 슬프게도 상처 나고 뭉그러진 딸기는 사람들에게 환영 받지 못합니다.

 

나 역시 상처 난 딸기와 다를 바가 없었습니다.

상처받고, 뭉그러져 못난 마음을 가진 쓸모없는. 하지만

‘상처만 난’ 나 자신으로 남고 싶지는 않았습니다. 포기하고 싶지도 않았죠.

그래서 매일매일 글을 썼습니다.

그리고 조심스레 메모지 한 구석에 이런 문장을 추가했죠.

 

인연을 귀하게 여길 것 못난 마음일지라도 온기를 나눌 것

그렇게 마음먹었지만, 외롭고, 상처받는 순간은 꽤 자주 찾아 왔습니다.

다만 달라진 것이 있다면, 그 순간마저 귀하게 여기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선택을 해야 합니다. 매일 매일을 어떤 마음으로 살아갈지 말이죠.

환영 받지 못한 상처 난 딸기가 달콤한 위로를 전했듯이,

망가지고 뭉그러져 보이는 아픔의 시간도 귀한 시간으로 돌아올 수 있습니다.

 

‘포기하지만 말자. 좌절하지만 말자.’ 삶은 외로울 수는 있어도 포기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좌절하려 태어난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모두 귀한 사람입니다. 엄마의 상처난 딸기가 나를 일으켜

세운 것처럼 사랑을 이길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으니까요.

 

출처 행복한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