卍 불교 교리 강좌

참스승은 모습만으로도 충분한 가르침이다

갓바위 2024. 3. 22. 10:16

 

 

참스승은 모습만으로도 충분한 가르침이다

​無上甚心微妙法

출가 초기, 나는 많은 방황을 했다.

수행에 대한 열망은 높은데 수행의 방법과 방향에 대해 제시해준

스승을 만나지 못했던 것이다. 아니 스승 많았지만 나의 고집과

폭넓게 바라보는 시각이 부족해 곁에 있는 눈 밝은 스승을 알아보지못했다.

 

해인사 학인시절 윗반 스님과 다툼 끝에 대중생활을 포기하고 뛰쳐나왔다.

그 길로 찾아간 곳이 광주 시내에 자리한 송광사 포교당이었다. 잠시 그곳에

머물며 지냈는데 마당이 좁아 새벽 예불을 하다 보면 답답한 마음이 들었다.

 

그럴 때면 도로까지 나가 목탁을 두드렸다. 미명에 어슴푸레 보이는 키 큰

빌딩들이 해인사의 숲처럼 느껴지고, 목탁을 두드리면 돌아오는

공명이 좋아서 8개월 남짓 금남로에서 도량석을 했다.

 

5.18 광주민중항쟁 때 피로 얼룩졌던 금남로, 1987년 초 무렵이던 그 즈음은

전두환 정권 말기라 낮에는 최루탄으로 뒤범벅이 되곤 했다.

그 거리에서 새벽마다 도량석을 도는 동안 나는 부처님의 가르침이나

수행보다 시민들의 외침과 한국사회의 아픔이 먼저 느껴지곤 했다.

 

그로부터 10년 뒤, 백양사에 주석하시는 서옹 스님을 가까이에서 모시면서 밖으로

향하는 마음을 안으로 갈무리할 수 있게 됐고, 평생의 갈 길을 찾았다.

개인의 욕망과 사회적 욕망으로 인한 고통과 모순을

어떤 방법으로 극복해야 하는지를 알게 됐다.

 

참사람 수행결사와 무차선회, 실직자 단기출가수련과,

운문선원에서의 실참을 통해서 자세하게 지도를 받을 수 있었다.

아무리 자세하게 스승으로부터 지도를 받는다하더라도 자신의 그릇이

부족하면 받아들이는 것은 한계가 있다. 그래서 스승님이 열반에 드신 후

나는 늘 스승에 대한 그리움과 아쉬눈 마음이 크다.

3년 전, 88세의 노구를 이끌고 한국에 오신 틱낫한 스님을 만났다.

다행히 보름 동안 지근거리에서 모실 기회가 있었다.

방에 혼자 계실 때 말고는 늘 모시고 다녔다.

 

걸으면 함께 걷고, 멈추면 나도 멈추고, 밥을 먹으면 함께 먹고, 대중강연을

하면 앞에서 듣고, 차를 타고 이동하면 함께 차를 타며 스님의 일거수일투족을

함께 했다. 어느 순간 저 노장스님이 나를 가르치러 먼 길을 오셨구나 생각하니

고마움뿐이었다. 스님의 몇 마디 말과 걸음과 눈빛, 모든 것이 배움이었다.

 

큰 스승을 만나 '배우는 방법'을 알게 된것이다. 갑자기 세계적 스승인 달라이

라마 스님이 뵙고 싶다. 달라이 라마 스님은 그 모습만으로도 충분하게

자비심이 느껴지고 감동을 주는 분이다. 지견을 갖추고 평생 자비행을

실천하신 스승은 잠시먼발치에서 보는 것만으로도 배움이 된다.

 

이렇듯 자격이 있는 훌륭한 스승을 모시고 있다면 따로 경전을 읽을 필요는

없다. 그 스승은 우리의 체험이 진짜인지 가짜인지 정확히 이해하고,

우리가 걸려 있는 집착이나 장애를 직접 지적해줄 수 있기 때문이다.

 

깨달음을 얻기 위해서는 반드시 부처님 지견에 기초한 지도를 받아야 한다.

깨달음을 얻고 난 후에도 여전히 자신의 체험이 부처님의 지견과 같은지를

점검해야 한다.지견을 열어줄 스승이 없다면 부처님의 경전에 의지해야 한다.

 

깨달음의 지혜가 고스란히 녹아 있는 것이 경전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직접적

지도를 받을 수 없기에 경전을 대할 때 스승을 대하듯 해야 한다. 석가모니

부처님의 한 자락 법문을 생생하게 듣기 위해서 스님들은 꼭두새벽에 차를

달여 부처님께 올리고, 정성스런 공양을 지어 사시에 예불을 드리듯 경전을

공부하는 자세 또한 그와 같아야 한다.그래야 최소한 잘못된 길로 가지 않는다.

 

더 없이 깊고 미묘한 법 백천만겁에도 만나기 어렵도다.

나 이제 듣고 보고 수지할 수 있으니

원컨대 여래의 진실한 뜻을 알고자 하나이다.

無上甚心微妙法

百千萬劫難遭遇

我今開見得受持

願解如來眞實義

물흐르고 꽃은피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