卍 불교 교리 강좌

죽음은 차원을 옮겨가는 여행 같은 것

갓바위 2024. 3. 24. 10:59

 

 

죽음은 차원을 옮겨가는 여행 같은 것

암세포와 싸우는 동안 64킬로그램이었던 법정 스님의 몸무게는

45킬로그램까지 내려앉앗다. 병상에서 스님은 이렇게 말했다.

"육신이 거추장스럼다. 빨리 번거로운 거 벗고 다비에 오르고 싶다."

 

남에게 페 끼치는 일을 극히 싫어했던 스님은 폐암이라는 진단을 받고

본의 아니게 여러 사람에게 폐를 끼치게 된 것을 무척 거북해했다. 담배도 안

피우고 산골 맑은 공기 속에서 사는 스님이 왜 폐암으로 투병했는지 궁금해한다.

 

사실은 스님 나이 네 살 때 세속의 아버지가 폐질환으로 돌아가신 집안

내력이 있다. 법정 스님이 떠나기 이틀 전, 나는 속가의 어머니와 함께 마지막

으로 스님을 만났다. 부처의 세상에서 속가의 인연이란 사소한 점 하나에

지나지 않지만, 피붙이의 정을 어떻게 지울 수 있으랴.

 

스님과 어머니는 고종사촌지간이다. 세속에서 법정 스님은 나의 삼촌뻘 되신다.

어머니가 스님께 물었다. "이제 볼 수 없는 거냐?" 법정 스님이 대답했다.

"왜 못 봐? 불일암에 오면 보지." "다리 아파서 불일암엔 못 올라가."

 

"그럼 길상사로 와." 두 분의 대화를 엿들으며 편안함을 느꼈다.

'어떤 이에게는 죽음이 끝이 아니다. 죽음은 시간과의 작별이고 차원을

옮겨가는 여행 같을 것. 스님께서는 병으로 고통받던 육신을 버리고 다른 세계로

건너가려 하고 있다. 그러니 슬퍼할 일이 아니다. 축하해드리는 것이 옳다.'

 

부처의 길을 따르는 사람은 두 가지를 버리고 두 가지를 소유해야 한다.

버려야 할 두 가지는 탐욕과 무지이며, 소유해야 할 두 가지는 무아와 무소유다.

'나 없음'을 체험한 수행자는 청정과 청빈의 맑은 삶을 꽃 피우고, '내 것

없음'을 깨달은 불제자는 나눔과 관용의 향기로운 삶의 향기를 전하게 된다.

 

법정 스님의 생전 소원은 보다 단순하고 간단하게 사는 것이었다.

찾아오는 사람이 많아 사는 곳이 번거로워지면 버리고 떠나기를 통해 초심을

잃지 않았다. 사후 장례 절차까지도 간단하게 해줄 것을 당부햇다.

 

스님은 평소에 유머 감각이 뛰어났다. 스님 책을 가져와서 좋은 말씀 써 달라고

하면 즉석에서 펜을 잡고 '좋은 말씀' 네 글자를 써준다. 책을 받아본 이는

"진짜로 좋은 말씀이네요" 하고 유쾌하게 웃는다. 제주도 농장에 갔을 때는

메뚜기 때문에 농작물 피해를 많이 입은 농장 주인이 차를 대접하면서

한마디 했다. "스님, 제주도 메뚜기 말도 못합니다."

 

"어이, 육지 메뚜기도 말 못해."

임종을 앞둔 병상에서도 유머 감각을 잃지 않았다.

회진을 온 의사 선생님이 "스님, 불편하신 곳 없으십니까?" 하고 물으면,

"어이, 내가 불편하니까 병원에 왔지"라고 대답했다.

 

법정 스님이 서울 봉은사 다래헌 생활을 정리하실 때 나는 스님을 찾아뵙고 출가

상담을 했다. 나도 송광사로 내려가니 송광사로 출가하라는 말씀을 하셨다.

그리고 스님께서는 자정암 터를 닦아 불일암을 짓기 시작하였다.

 

1975년 불일암이 생기기 전에 자정암이 있었다. 자정암 건물을 해체하여

쓸 만한 자재를 골라 지은 집이 불일암 아래 부엌채다.

그리고 불일암 지을 목재와 기와는 전부 인부들 손을 빌어 인력으로 운반했다.

 

나는 송광사 행자생활을 하면서 인부들 먹을 음식, 밥, 국, 반찬을 두 손에

들고 매일 불일암까지 올라갔다. 그리고 가을 효봉 노스님 기일에 맡춰

낙성식이 열리고 나는 사미계를 받았다.

 

스님은 불일암 부엌에 '먹이는 간단명료하게'라는 글을 붙여놓고 세가지

이상 반찬을 놓지 못하게 하였다. 아침에는 미숫가루나 빵으로 때웠다.

시작할 때 그마음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