卍 불교 교리 강좌

나만의 미황사를 만들어라

갓바위 2024. 3. 27. 09:57

 

 

 

나만의 미황사를 만들어라

​畢竟無佛及衆生

새벽예불 때 항상 암송하는 스님들의 발원문을 행선축원行禪祝願이라 한다.

내용 가운데 힘주어 생각하는 대목이 있다. 나의 이름을 듣는 이는

삼악도(지옥, 아귀, 축생으로 태어나는 것)를 면하고

나의 모습을 보는 이는 해탈을 얻게 하소서.

 

이와 같이 중생을 교화하기를 오랜 세월이 지나도록 하여

결국 부처도 중생도 없는 세계가 이루어지게 하소서.

聞我名者免三途

見我形者得解脫

如是敎化恒沙劫

畢竟無佛及衆生

나는 이 구절을 내가 살고 있는 절에 대입시킨다. 바쁘고 힘들고 지칠 때

TV나 라디오, 신문, 인터넷에서 미황사라는 이름을 듣거나 보기만 해도 힘과

용기와 위안을 얻을 수 있으면 좋겠다고, 누군가에게 든든한 마음의 고향이

되어 주는 절을 만드는 일은 나에게 큰 숙제이다.

 

처음 주지 임명장을 받고 나서 그 무게감 때문에 몇날 며칠 잠을 설쳤다.

1,200년 역사를 가진 사찰의 주지 소임이었기에 고민이 깊었다. 자칫 실수하여

긴 장강의 역사를 써온 미황사의 궤적에 누를 범하지 않을까 노심초사했다.

 

좋아하는 절은 들어설 때부터 평화롭고 행복한 느낌이 들고, 극락세계에

들어 온 것처럼 근심 걱정이 사라지는 곳이다. 내가 꿈꾸는 이상적인

절은 모든 이에게 그런 느낌으로 다가가는 곳이다.

 

그러니 돌 하나, 나무 한 그루 허투루 놓거나 심을 수 없다.

천 년이 넘는 호흡으로 오늘을 살고 있는 미황사. 이곳에 사는 대중들의 신실한

말과 행동과 마음이 얹어졌을 때 미황사는 비로소 그 가치가 살아 움직인다.

 

그래서 이 가람을 외호하며 사는 일은 예나 지금이나 조심스럽다. 농담 삼아

외국 어디에 미황사 같은 절이 있다면 나오 한 달 쯤 머물다 오고 싶다고 말한다.

내가 절을 가꾸듯 사람들도 자신의 공간을 좋은 수행처로 가꾸면 좋겠다.

 

집이 수행처라면 수행대중은 물론 그의 식구들일터이다.

회사에 가면 그곳이 수행 도량이 되고 직장 동료들이 수해행대중이 된다.

내가 머무는 곳을 수행처로 만드는 것, 자신의 공간을 수행의 처소로

만들기 위해서는 날마다 꾸준한 노력이 필요하다.

 

울력 시간을 만들어 집 안팎을 청소하고, 물건들은 항상 단정하고 단순하게

정리한다. 번뇌를 버리듯, 쓸모없는 물건은 쓸모있는 사람에게 과감하게

나누어 준다. 깨끗하고 단정한 공간에 맑은 기운이 깃든다.

 

그곳은 평화롭고 안락한 법당이자 선방이 된다. 이곳에서 우리는 단정한 옷을

입고 정중하고 부드러운 말을 쓴다. 안으로는 지혜롭고 밖으로는 자비롭게 마음을

쓴다. 혼자 있을 때도 많은 대중과 함께하듯 절도와 단정함을 앓지 않는다.

 

이처럼 자신만의 수행 처소를 정갈하게 만들어 간다면 내 이름은 타인에게

기쁨의 이름이 된다. 누구나, 자신이 머무는 공간을 여여(如如, 모든 괴로움과

욕심이 사라진 편안한 상태)한 수행 도량으로 만들어야 한다.

물흐르고 꽃은피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