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동 슬픔 ~찡한글

30년째 기름집을 하는 친구

갓바위 2024. 12. 9. 18:51

 

 

30년째 기름집을 하는 친구

 

시장에서 30년째 기름집을 하는 친구가 있습니다.

고추와 도토리도 빻아 주고, 떡도 해 주고, 참기름과

들기름도 짜 주는 집인데, 사람들은 그냥 기름집 이라 합니다.

 

그 친구 가게 문을 열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게 있습니다.

달력? 가족사진? 아니면 광고? 궁금하시지요?

빛바랜 벽 한가운데 시 한 편이 붙어 있습니다.

 

그 시가 윤동주의 <서시>입니다. 시장에서 기름집을

하는 친구가 시를 좋아한다니? 어울리지 않나요? 아니면?

 

어느 날, 손님이 뜸한 시간에 그 친구한테 물었습니다.

"저 벽에 붙어 있는 윤동주 '서시' 말이야. 붙여둔 이유가 있는가?"

"으음, 이런 말 하기 부끄럽구먼." "무슨 비밀이라도?"

 

"그런 건 아닐세. 손님 가운데 말이야. 꼭 국산 참깨로

참기름을 짜 달라는 사람이 있어." "그렇지. 우리 아내도

국산 참기름을 좋아하지." "국산 참기름을 짤 때, 값이 싼

중국산 참깨를 반쯤 넣어도 손님들은 잘 몰라. 자네도 잘 모를걸."

 

"......" "30년째 기름집을 하면서 나도 사람인지라, 가끔 욕심이 올라올 때가

있단 말이야. 국산 참기름을 짤 때, 중국산 참깨를 아무도 몰래

반쯤 넣고 싶단 말이지. 그런 마음이 나도 모르게 스멀스멀 올라올 때마다,

내 손으로 벽에 붙여놓은 윤동주 <서시>를 마음속으로 자꾸 읽게 되더라고."

 

"....."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이 구절을

천천히 몇 번 읽고 나면 나도 모르게 시커먼 욕심이 사라지고 마음이

맑아지는 것 같아. 그러니까 30년 동안 시가 나를 지켜준 셈이야.

저 시가 없었으면 양심을 속이고 부자가 될 수도 있었는데. 하하하."

 

그 친구와 헤어져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나도 모르게 그 친구가 좋아하는

구절이 생각났습니다.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가톨릭 마산 주보 '영혼의 뜨락'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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