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집시 노부부
마음이 닿는 곳이 몸이 허락하는 곳이 내 집이라는 노부부는 오늘도
해와 달을 친구 삼아 출구가 없는 거리를 달려가고 있었는데요
사는 곳이 어디냐고.. 돌아갈 집은 있느냐며 ... 물어도
입술을 꼭 다문 하늘처럼 아무 말도 하지 않는 해와 달도 다 아는
그 이야기를 차마 말하기는 힘들어서였을까요
“아버지… 이번에 대박 나는 사업이 있어요”
“엄마… 마지막으로 이번 한 번만 도와주시면 두 배로 갚을게요”
목숨처럼 지켜온 집을 떠내려 보내고 남은 돈으로 자신들만큼 늙어버린
고물 트럭을 사 얼기설기 판자를 덧대어 바람 따라
세월 따라 헤매도는 집시 부부가 되었다는 이야기를 말이죠
내 목숨보다 사랑했던 자식들과 인연까지 끊겨 버린 사연 속 외로움에
짓눌린 세월 운명이 창문을 열어 주기만 기다리는 작은 즐거움들을
쌓아가다 보니 큰 행복이 되었다며 애써 웃어 보이는 노부부는
먼 훗날 천국에 가면 서로에게 말해줄 마음 첩에 새긴
일기장을 가지고 다닌다고 말하고 있었습니다

집 잃고 자식 잃고 나니 이젠 서로를 안아주고 위로해 주는 그 한마디가 그리웠어요
끝나지 않은 인생의 겨울을 보내고 시간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부부만의
사랑을 알게 된 지금 아내가 늘 웃는 게 힘듦을 감추기 위해
웃는 거란 걸 이제서야 알게 되었다며
"여보, 이것 좀 고쳐줘요" (다음에…. 다음에)
"오늘 좀 일찍 와요" (나 오늘 늦을 거야,)
제가 알아서 해 볼게요 (당신이 뭘 알아서,)
남자는 말을 마음속에 담아 놓고 여자는 말 속에
마음을 담아놓는다는 말뜻을 이제서야 돌이켜 본다는 남편은
아내가 아플 때 아내가 힘들어할 때
언제 한번 제대로 도와준 적 없는 남편의 그림자를 안고
젊음을 모두 가족을 위해 쏟아부은 아내가 이제야 보이더라고요

"당신 자?" 달리는 차 옆에서 잠이든 아내의 얼굴을 비추는 햇살에 잠이 깰까
팔을 벌려 손바닥으로 아내의 얼굴을 가려보는 순간 그늘진 얼굴에
포근함이 그림자처럼 드리우는 걸 보면서 겨우 이만큼의
햇살밖에 감싸주지 못했던 것 같은 지난날에
비친 미안함에 도로 밖 사물들이 뿌옇게 펼쳐지는 게 싫어
아내 몰래 눈물을 훔친 남편은 말하길 좋아했던 아내의 굳게 닫힌 입술에서
나를 믿지 말고 절실함을 믿고 살아가자는 말을 곱씹어 보는데요
나처럼 행복한 남편이 있을까 자신에게 되물어봐도 모든 날 모든 순간을
글썽이는 눈물 속에 담아 놓으며 잠든 아내를 싣고 새벽을 달려가고 있었습니다.

"여보…. 고기 잡아서 저녁 맛있게 차려줄게"
바다를 마트 삼아 산을 시장 삼아 찬 가지들을 만들어가며
하늘 끝까지 달려가는 이 길에 비치는
아내의 눈물에 한 번 더 철이 들어간다는 남편은
서로가 없으면 정말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순간들이 오는 게
슬픈 일이라며 오늘도 비개인 하늘에 길을 물으며
달려가다 낯선 병원 앞에 차를 멈춰 세웁니다
갈수록 늘어만 가는 약봉지를 허리춤에 차고 터덜터덜 걸어
나오는 모습을 애써 감추려 노쇠한 두 어깨에 힘을 줘보지만 아내의 슬픈
눈을 보는 게 더 슬퍼서인지 마음이 허락한 눈물 한 방울을 매달고 있더니
“힘들면 오늘 여기서 자고 가요”
"뭔 소리야, 서울을 왕복해도 될 힘이.남았구먼”
남편의 객기로 녹슨 하늘을 달려가다 산언덕에 이름 모를 무덤가에 핀 잡초가
아침 이슬로 무너져 내리는 새벽을 달려 회색빛 어둠 속에서 잠든 아내를
볼 때가 제일 미안하다는 남편은 그 기억 속으로 혼자 걸어가고 있나 본데요
세월이 쌓인 만큼 아내는 이제 나 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순간들만이
늘어만 가는 것 같아 슬퍼진 허공에 긴 한숨을 뱉어놓으며
머리가 아니라 마음이 빛나는 부부이기를 기도하면서
삶이 저무는 그날까지 달려가고 있었습니다
다시 한번 삶이 주어진다해도 자식은 낳지 않을 거라며....
펴냄/노자규의 골목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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