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날한시
푸른빛 산과 거친 들녘을 다니며 계절이 준 보석 같은 선물 산나물들을 캐서는
신문지 한 장 펼쳐놓은 시장 바닥 위에 앉아서 석양에 밀려가는 하루를 보내고
번 돈 12,000원을 들고 할아버지는 시장 안으로 들어가 버리는데요
온종일 누워만 있는 아내에게 줄 몰랑몰랑한 쑥떡과
메밀 죽을 안고서 마을버스를 기다리는 머리 위로
한 방울 두 방울 굵어지던 비가 소나기 되어 퍼붓기 시작했습니다
"어이쿠.. 이러다 동네 집들 다 떠내려가겠구먼"
한낮의 뜨거움을 흩뿌려준 빗물이 쓸어 놓아 준 길을 따라 서로의 지붕이
되어주고 있는 집으로 가는 내내 할아버지는 아픈 할머니 걱정뿐입니다
걱정 어린 눈길조차 지우려는 듯 거침없이 내리는 빗줄기는 점점 굵어져
차오르는 통에 멈춰 선 버스 안 사람들은 내리지도 걷지도 못한 채
안절부절 못하고 있을 때 "저기 저 기사 양반 문 좀 열어 주실라우.."
"할아버지 .. 지금 나가시면 빗물에 쓸려 위험할 수도 있어요"
가슴은 기다림만으로 버티고 있을 아내가 있는 집으로 먼저 걸어간
할아버지의 마음을 안 건지 문을 열리고 있었고 아내에게 줄
검정 봉지가 젖을까 봐 점퍼 안으로 집어넣고는 첨벙첨벙 길을 걸어가는
할아버지를 보며 버스 안 사람들은 "비나 좀 그치면 나가시지.."
"급한 일이라도 있어 저러시나""저러다 뭔 일 나는 거 아닌지 걱정이네"
등 뒤에 메아리치는 버스 안 사람들의 애태움은 아랑곳없이
무릎까지 차오른 물살을 가르며 내달리듯 걸어가던 할아버지는
반지하 창문으로 스며드는 빗물을 보며 황급히 현관문을 열고
뛰어 들어갑니다 "임자…. 얼른 일어나 봐"
골목에서 넘쳐난 빗물이 온 방으로 넘쳐나고 있어도 목이 긴 기다림만으로
누워만 있는 할머니를 두 팔로 안고 나가려 해도 기력이 노쇠한
할아버지 혼자만의 힘으로는 턱없이 모자라 보입니다
“영감.. 물이 점점 불어나요 어서 피해요“
계단을 타고 흘러들어온 빗물은 현관문 높이까지
차올라 안에서 열리지 못한다는 걸 이미 알고 있었던 할아버지는
한평생 남편 그림자로 살아온 할머니와 나란히 늅더니
"임자 두고 내가 어디를 가 옆에 있을 테니까 걱정 말어..."
나이가 가르쳐 주는 시간만큼 더 많이 사랑하지 못한 걸 아쉬워하며

한날한시에 함께 떠날 수 있는 걸 행복이라 여긴 두 사람은
말하지 않아도 포근히 안아주는 나무의 품속 같은 서로를 껴안은 채
한 줌 바람마저도 아름다웠던 생을 마감하고 있었습니다
죽음도 두려움을 주지 못하는 부부라며...
서로를 행복하게 해주기 위해 부부라는 직업을 택한 걸 행복해하며
죽음을 맞이한 노부부가 무연고자로 장례를 치른 지 얼마 지나지 않은
시간을 걸어온 낯선 발 길이 지나간 자리마다
흙바람에 굴러다니던 낙엽들이 들려주는 슬픈 이야기가 들려오고 있었습니다
수재민에게 주는 시민 안전 보상금을 받으러 온 아들과 며느리가 있었다는....
펴냄/노자규의 골목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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