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할머니의 비녀
엄마 아빠에게서 버려진 해선이는 성이 다른 가족이 된 영아원에서 지내다
민들레 한껏 날리든 봄날 외할머니 품속으로 들어온 지 어언 5년이 되어갑니다
할아버지가 할머니 약값이라도 벌어볼 심산으로 새벽녘 뻘밭에 갔다 돌아가시고
난 뒤 그 충격으로 중풍을 앓으며 한쪽 수족마저 마비가 되었지만 하늘에
단비가 되어 찾아온 해선 이를 바라보며 일어설 수 있었다고 말하고 있었습니다
할머니란 이름으로 말이죠...
달려더는 바람을 온몸으로 맞고는 갯내음 물씬 풍기는 뻘밭을 헤매 다니며
살아온 한평생 어느덧 갯벌 위에 놓인 폐선처럼 할머닌 앉아 있습니다
갯벌을 스쳐온 바람 한 점이 할머니 앞에 머물더니
“할머니 나 조개 큰 거 잡았다…. 봐봐..“
이제는 할머니에게 해선이는 없어서는 안될 존재가 돼가고 있었기에
할머니는 머문 바람을 빌려 한마디를 건네봅니다
“잉, 그려…. 허벌나게 다니지 말어.. 그러다 새 옷 다 버린당께”
옷에 벌탕질을 하고 나온 해선이를 보며 “아이고 이삔거,,” 라며
사랑한다는 표현을 하는 할머니를 보며 마냥 신이 난 해선이
사랑한다는 또 다른 표현이 “가슴 아프다”라는 말인 걸 혜선이는
아직 알지는 못하는 것 같습니다 “아거야…. 어여 집에 가야..”
갯벌 뻘판에 하루를 묻으며 살아온 댓가앞에 허망한 맘
들어내 보이며 산 세월이 걸어 나오더니 눈물을 데리고 왔나 봅니다
살갗으로 느끼는 마주 잡은 손으로 전해지는 이 행복이 얼마 만인지
할머니는 눈물이 놓아준 디딤돌을 밟으며 걸어가고 있었습니다
누가 알아주지 않아도 봄볕을 아름답게 만드는 그들만의
동행은 참 아름답기까지 하니까요...
“해선아 얼렁 인나 핵교 가더라고 그라고.. 조기 저 가세 좀 가져오더라고”
“할머니 가세가 뭐야?” “가세가 가세지 머다냐“ “이거 가위 말이야...
할머니 따라 해봐 가위...“ “가세...” “아니 가위 해봐 할머니” ‘가세....“
앵무새 처럼 똑같은 말만 하는 그런 할머닐 바라보며 싱긋이 웃어 보이더니
“할머니 .. 나 학교 댕겨올텐께 가만히 누워 계시소”
손녀의 서툰 사투리에 환하게 웃음 짓던 할머니는 손녀를 바라보며
“그려 가차번께 겁나게 빨리 갔다 오더라고“ 내 가만히 자빠져 있을텐께“
한참 뒤 그렇게 정든 손녀가 걸어 나간 자리를 더듬어 내 그림자 밟듯
똑같은 걸음으로 나온 할머니를 보며 “워메 기적이 일어나부렀서야
일어나지도 못하는 도암댁 성님이 손녀땜시 저렇게 날라 다닌당께 말이시...“
넘사밭에 한참을 머물던 할머니가 “이거면 저녁 찬거리로 솔찬한께
내새끼 핵교 다녀오면 국이라도 끓여 줘야스걷다“며 내듸는 한발에 힘을 져봅니다

산을 밟고 올라선 해님이 하늘을 성큼성큼 걸어가더니
하늘 꼭대기에 매달려 있는 한가한 오후 “아이고 우리 딸랑이 핵교 댕겨오냐
욕봐서야…. 내새끼 배고프제...“ “할머니 욕봤스야가 뭐야”
“거시기……. 음…. 음 몰러..” "...뭐냐니깐“
“참말로 넌 따지사꼬 그라냐.. 이헬메 헷갈리게.“
오늘도 손녀와 할머니는 사투리 하나로 빚어낸 행복을
마음 주머니에 담고는 달달한 하루를 보내고 있습니다
오늘은 할머니가 한 달에 한번 병원에 가는 날입니다
해선이는 새벽녘 일찍 동네 어르신들을 따라 뻘밭에 조개 캐러 나와
조막손으로 캐고 있네요 “해선아 ... 뭐할라꼬 이새벽부터 조개 캔다냐?”
“우리 할머니 병원비 하려고요 그리고 이건 비밀인데요..
울 할머니 생신 선물도 사드리려고요“
“오메 이삔거... 나도 너 같은 손녀 하나 있었스면 쓰것다”
“헤...헤. 헤... 우리 할머니 기뻐하시겠죠“
“그라제... 와따 우리 도암댁 성님얼굴에 달뜨뻔지겠네”
한 아름 조개를 들고 들오는 해선이의 맘과는 달리
할머니는 한숨 썩인 넋두리를 토해내고 있었습니다
“오메 내 비녀...그 비녀가 어떤 비년디.. 오메오메…. 우짠단가.."
할아버지와의 한평생 추억이 고이 묻어있는 비녀를 신줏단지 모시듯 하는
할머니가 자고 일어났더니 그 비녀가 없어져 버렸기 때문인데요
“서방과 헤어진 지 얼마나 됐다꼬 또 시집간뎌“ "............."
이삔 낮바닥 들고 뻘짓만 하고 댕긴께 참말로..“ “할머니 누구말야?“
“느자고 없는 니애미 말이시 지천을 해도 소용없스께 징허다,,“
담 너머 걸터 앉은 달을 쳐다보며 먼 산 짓다 초저녁 잠 고이 잠든
해선이 얼굴 위로 아침 절에 다녀간 딸의 말을 곱십어봅니다
“시방 그게 뭔말이다냐..” “내일 해선이 데리러 다시 올 테니까
옷가지랑 소지품 다 챙겨놔 알았지..“
할머니에겐 전부가 돼버린 해선이를 떠나보내고 굴러가야 할 내일이
할머니 앞에 눈물로 마주선 밤을 뜬 눈으로 보낸 아침 “난 할머니랑 살 거야
엄마랑 살기 싫어 맨날 술주정이나 하고..“
“얼렁 차에 타... 애가 왜 이리 보챈데.. 시골 촌구석이 뭐가 좋다고”
“ 촌구석 이래도 여기가 난 좋아 가기 싫어 할머니랑 살 거야“
눈물로 줄다리기를 하다 멀어지는 해선이를 보며 고무신이 벗겨지고 지팡이가
없다는 것도 잊은 채 두서너발 띄어보다 할머닌 그 자리에 주저앉고 말았습니다
내 빈속 까지 같이 매달아 떠나보내고 만 할머니는
허망한 속내를 내보이며 막걸리 한잔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이장 양반,, 이 세상이 헝겊지만은 않은갑소“
넘사밭에 일하다 온 이장님도 넋 놓고 있는 할머니를 보며
“ 식사라도 허셔야 할텐디 안잡스꼬 덴단가요 뭐라도 챙겨올텐께 한술뜨쇼“
“난 개안아야.. 신경쓰지 말더라고” “참말로 지맘도 껄쩍지근하요..”
한 계절이 머물다간 하늘 위로 홀로 떠다니는 새를 올려다보다
당산나무 끝에 앉아 손녀의 울음소리를 닮은 소리쳐 우는 새들을 눈물로 바라보며
행복과 불행의 크기가 다르지 않다면서 스스로를 위로하며
아픈 몸을 누이러 텅 빈집으로 가고 싶지 않은 길을 걸어가고 있습니다
손녀가 머문 빈방을 넋 놓고 바라보며 울고만 있는 할머닌
“고것도 정이라꾜……. 맴이 요렇게 쓰라링게 말이시..”
할머니는 같이 있으면서 하지 못했던 말을 나지막이 해봅니다
“징하게 보고잡다......." 반쯤 열린 손 때 묻은 책상 서랍을 닫으려다
고이 접어 놓은 예쁜 손 편지 위에 가지런히 놓인 비녀를 바라보고 섰습니다
딸년은 지 애미 생일이 언제인지도 모르고 지 할 짓만 하다 돈이 된다고
가져가 버린 비녀를 할머니 생신날 말아 올린 쪽 찐 머리에
예쁜 두 손으로 꽃아 주고 싶다는 말을 끝으로 마지막 말은 눈물이라
차마 더 읽어 내려가진 못하는 것 같습니다
“할머닌 내 사랑인 거 알지” 라는 그 말은.....
찬물에 말아 김치 쪼바리 하나 얹어 먹어도
잘 넘어가는 밥술이 이젠 넘어가지도 않는가 봅니다
머리맡 저 구석진 곳으로 내팽겨진걸 보니 말이죠...
할머니는 문풍지 사이로 손녀의 발자국 소리를 닮은 저 지친 바람 를
따라 걸어올 손녀를 애타게 기다리다 오늘도 잠이 듭니다
손녀가 와서 꽂아줄 비녀를 머리맡에 두고서.....
펴냄 /노자규의 골목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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