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공덕은 업장소멸하는 마음가짐과 행위 업장소멸하는 마음가짐과 행위를 우리는 공덕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공덕이란 우리들이 모든 것에 집착하지 않는 마음, 거기에서 비롯되는 행위들 속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그리고 그 집착하지 않는 마음이란
단순하게 집착하지 않는다는 것이 아니라,
거기에다 감사와 참회의 마음,
이것이 곁들여져야만 그 행위가 공덕이 되는 것이다.
어떤 불자가 있었다.
절을 창건할 정도로 신심도 대단하였고
법회에는 반드시 참가하여 기도도 열심히 하는 불자였다,
이 불자가 병이 들어 임종을 맞이하게 되자 카톨릭을
믿는 아들이 "어머니. 영세를 받으셔야 천국에 갑니다" 하며 간곡하게 권하자 영세를 받고 임종을 하였다. 그런데 이 불자가 돌아가시고 얼마 안돼서 불자의 남편이
병을 얻어 누워 있다 3년이 안되어 돌아가셨다.
그리고 장례를 치르고 돌아오는 길에 어머니에게
영세를 권하였던 아들도 교통사고로 명을 달리하였다. 그러면서 집안의 가세는 기울기 시작하였다.
그러자 가족들은 "어머니가 불교를 믿었는데 영세를 받으셔서
그렇게 되었으니 어머니가 평소에 다니시던 절에 가서
천도제를 지내드리자"고 의견을 모아 천도제를
지내드렸지만 집안의 형편은 좋아지지 않았다.
이러한 지경에 놓이게 되면 누구나 이 집안의 가족들처럼 부모님이 좋은 데로 못 가셨기 때문이거나 어머니가
다른 종교를 믿었기 때문이었다고 생각할 것이다.
하지만 이 집안의 가세가 기울고 사고가 발생한 것은
그러한 이유 때문이 아니다.
이러한 일들이 발생하게 된 원인은 어머니에게 있는 것이다.
왜냐하면 종교를 믿는다고 하는 것은 자신이 죽은 후에
가야 할 곳이 확실하게 결정되어져 있음을 의미한다.
하지만 돌아가시면서 자신의 종교를 바꾼 이 불자님의
신앙생활은 뭔가 의구심을 가지게 한다.
즉 바른 신앙생활이었다기 보다는
미신적인 신앙생활을 하였을 것이라 추측하게 되는 것은 그다지 어려운 일이 아니다.
즉, 우리가 이 세상에 태어났을 때는 선업과 악업을
모두 가지고 태어났다. 선업을 받을 적에는 남들은 백배 천배 노력해야 할 일도 나는 힘을 들이지 않고서도 이룰 수 있는 것이고. 악업을 받을 적에는 남들은 손쉽게 하는 일도 나는
백배 천배 노력을 해도 이룰 수 없는 것이다.
즉 선업을 받을 때에는 행복이 찾아오고,
악업을 받을 때에는 불행이 찾아오는 것이다.
하지만 선업이든 악업이든 다 받아서 소멸시켜야 한다.
인생이란 선업이 끝났으면 악업이 찾아오고
악업이 끝나면 선업이 찾아오는 것이 인생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불자님은 선업만 받고
악업은 받지 않기 위하여 점을 쳐서 미리 악업이 찾아올 것을 알아 부적이나 쓰고,부처님 전에 "우리 남편, 우리 자식 편안하고 행복하게 살게 해주세요"
라고 빌 줄이나 알았지 악업을 받으려고는 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기에 이 불자님의 일생은 선업을 지으면 짓는 즉시 다 받아 없애면서, 악업은 축적하여 사는 일생이 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우리가 부처님에게 기도할 때에 발원을 한다면
"우리 가정이 행복하게 해주세요"라고 빌기보다는
"우리 가족이 업을 받음에 있어서 피하지 않고 받아
이길 수 있도록 하여 주시옵고 또 항상 보살피는 부처님이 옆에 계심을 믿을 수 있도록 하여주십시오"
라고 발원을 하여야 할 것이다. (출처 -서진스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