卍 ~불교 상식

주문에 대하여

갓바위 2015. 1. 27. 09:53

주문에 대하여 우리가 일상 생활에서 사용하는 말들은 엄밀하게 따져 보면 결코 진실할 수가 없다 다만 진실에 가깝게 묘사될 뿐이다. 불교에서는 일찍이 언어의 이런 진상을 간파하여 인간의 모든 언어 표현을 '임시로 세워진 것' 즉 가립(假立)이라고 규정했다 . 물론 애초부터 진실을 가장한 거짓된 말들도 여기에 해당한다. 종교적 관점에서 보면 세속의 모든 언어는 여기에 속한다. 이에 반해 성직자의 말만은 진실이라고 믿을 만한 것으로 간주된다. 하긴 성직자의 말이라도 그것이 세속에 쉽게 영합해 버릴 경우에는 오히려 속인의 거짓말보다 더한 화근이 될 수 있다. 일찍이 인도에서는 인간의 직접적인 경험과 추리보다 정확하고 진실한 것을 성언(聖言) 이라고 하여 이 성언 만큼은 절대적으로 신뢰했다. 이 성언은 진실을 그대로 표현한 신의 계시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굳이 종교적 관점을 적용하지 않더라도 인간의 고차적인 탐구 활동에서 말은 진리를 표현하고자 한다. 이런 말들이 진리 그 자체로 간주되면서 인간 생활의 모든 분야에 걸쳐 큰 위력을 발휘해 왔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말의 이러한 위력이 종교적 관점과 결부되면 어떤 특별한 말은 인간 세계를 포함한 우주에 편만해 있는 진리를 함축할 수 있으며, 그 말은 자체의 효능으로서 진리를 실제 생활에 끌어낼 수 있는 힘을 지닌다고 믿을수 있게 된다. 이런 말들을 객관적인 표현으로는 ' 진실한말' 즉 진 실어라고칭 할수 있다. 흔히 통하는 표현으로 바꾼다면 그것은 주문이다. 진실어는 진실한 말을 외움으로써 상식적으로는 실현 불가능한 것을 성취시키려고 하는 것이다. 원칙적으로는 진실 그 자체에 내재하여 있다고 믿어지고 있는 힘에 의해 지극히 현실적인 소원을 성취코자 하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진실어는 일종의 주문인 것이다. 세속의 대중을 교화하기 위한 자타카(본생담)와 같은 불교의 설화 문학에서는 그러한 진실어의 효능을 설하는 예가 흔히 발견된다. 예를 들어 어떤 가난한 여인이 자기의 가슴을 베어서 아이에게 먹이는 것을 본 남편은 '' 이렇듯 경탄할 만한 행위는 아직까지 듣지도 보지도 못했다''라는 진실어를 외침으로써 그녀의 가슴이 원래대로 회복되길 기원했는데 그의 기원은 진실어의 힘으로 성취되었다고 한다 또 남편으로부터 정조를 의심 받는 아내가 '' 이 진실이 나를 지켜 주기를 그리고 나의 남편을 지켜 주기를 내게는 남편보다 더 사랑스러운 사람이 없으니, 이 진실을 말함으로써 남편의 병이 나을 수 있기를.''이라고 말했더니 남편의 의심은 풀렸다고 한다. 위와 같은 진실어는 진실 자체에 간직되어 있는 힘, 또는 소리나 언어에 내재하여 있는 신비한 힘에 대한 믿음에 기인하는 소박한 주문으로서 칼반적인 종교 감정을 이용하는 주술에 속한다 이런 주문이 불교에서도 대중 교화를 위해 수용되었다. 그러나 불교에서의 주문은 세속의 주술적 차원에 머물지 않고 수행의 보조 수단, 깨달음의 성취 수단, 중생 구제의 서원(誓厦頁) 등으로 승화되어가면서 단순한 주술의 영역을 넘어 선다. 이렇게 세속의 주술적 차원을 초월한 주문을 불교에서는 진언(眞言) 또는 다라니(陀羅尼)라고 한다. 따라서 ''술가가 술법을 부리는데에 외는 글귀''라는 사전적인 의미로 불교의 주문을 이해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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