卍 ~불교 상식

부휴선사(浮休禪師)

갓바위 2015. 6. 8. 09:38
부휴선사(浮休禪師) 
 (1543∼1615)

조선 중기의 고승. 성은 김씨. 호는 부휴(浮休).
 남원출신. 아버지는 적산(積 山),
 어머니는 이씨이다. 어머니가 신승(神僧)으로
부터 원주(圓珠)를 받는 태 몽을 꾸었으며, 
어릴 때부터 비린내를 좋아하지 않았다. 
20세에 부모의 허락 을 얻어 지리산으로 
들어가서 신명(信明)의 제자가 되었고, 그 뒤 부용
(芙蓉) 의 밑에서 수도하여 심요(心要)를 얻었다. 
그 뒤 덕유산·가야산·속리산·금 강산 등의 
이름있는 사찰에서 더욱 수행정진하다가 
서울로 가서 노수신(盧守 愼)의
 장서를 7년 동안 읽었다. 
그의 필법은 왕희지체를 익혔는데, 사명당
(四 溟堂 )과 함께 당대의 2난(二難)이라 불렸다. 
그 뒤 임진왜란이 일어나 덕유 산 초암에 
은신하고 있던 중 왜적 수십명을 만났다. 
차수(叉手)를 하고 선 그 의 앞에서 왜적이 
칼날을 휘두르는 자세를 취하였으나, 
그가 태연부동하게 있었으므로 왜적들이 
대기(大奇)하여 절한 뒤 물러갔다. 
그 뒤 가야산 해인사 에 머물렀을 때 
명나라 장수 이종성(李宗 )이 찾아와서 
법문을 듣고 며칠 동 안 옆에서 모셨다. 
얼마 뒤 무주구천동으로 자리를 옮겼는데 
하루는 <원각경 (圓覺經)>을 위우고 있을 때
 큰 뱀이 나타나서 계단 아래에 누워 있었다. 
< 원각경>울 다 외운 다음 뱀에게 가서 한발로 
그 꼬리를 밟자 뱀이 머리를 들고 물러났다. 
그날밤 꿈에 한 노인이 절하고는 
"화상의 설법의 힘을 입사 와 이미 고신(苦身)
을 여의었습니다."라고 하였다. 
광해군 때는 두류산에 있 었는데 어떤 미친 
승려가 무고하여 투옥되었다가 무죄가 판명되어, 
광해군이 내전으로 초빙한 다음 설법을 
청하여 듣고 크게 기뻐하였다. 
그리고 가사 한 벌과 푸른 비단장삼 한 벌, 
푸른 비단바지 한 벌, 금강석 염주 하나와 
진완 (珍玩)을 주었다.
 또, 봉인사(奉印寺)에 재(齋)를 설하여
 그를 증명으로 삼았 다. 
1614년에는 조계산에서 방장산 칠불암
(七佛庵)으로 거처를 옮겼으며,
 다 음해 7월 제자 각성(覺性)에게 
부법(付法)하였다. 
그해 11월 1일 목욕을 한 다음 임종게를 
남기고 입적하였다. 나이 72세, 법랍 57세였다.
저서로는 <부휴당대사집>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