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담 야설 이야기

귀암계곡 호랑이

갓바위 2018. 9. 29. 07:29
귀암계곡 호랑이

절벽이 병풍 둘러 하늘이 
손바닥만하게 뚫어진 귀암계곡 
30리를 빠져나가려면 초입에 
자리 잡은 주막집에서 여럿이 
모여 무리를 지어 떠나야 했다. 
어떤 길손은 무리를 만들기 
위해 며칠씩 주막에서 
기다리기도 했다.
가끔씩 산적들이 길을 막기도 하고 
호랑이가 대낮에 나타나기도 
하기 때문이다. 입춘이 지난 
어느 날 주막집에서 열두사람이 
모여 아침상을 물리고 눈발이 
흩날리는 귀암계곡으로 들어섰다.
절벽에 붙어서 얼음판을 건너며 
열두명의 길손들은 말없이 걸음을 
옮기는데 눈발이 점점 굵어
지는 게 걱정거리가 되었다.
아니나 다를까 먹장 하늘에서 
폭설이 퍼붓고 지난번 왔던 눈이 
채 녹지도 않은 터라 이내 
허리춤까지 눈에 파묻혀 길손들은
 거북이걸음이 되었다.
이리저리 눈을 헤치며 나가다가 
그들은 심마니들과 사냥꾼들이 
만들어놓은 대피막을 발견, 
죽은 목숨 살아난 듯이 
안도의 한숨을 토했다.
엉성하게 눈비만 피할 수 있는 
대피막 속에 들어가 모닥불을 
지피고 빙 둘러앉자 바깥은 
이내 어둠살이 깔렸다.
그때, 어흥~ 호랑이의 울음이 
산천을 찢더니 집채만한 놈이 
대피막을 어슬렁어슬렁
 돌기 시작했다. 보부상, 
소금장수, 도편수, 탁발승… 
산전수전 다 겪었다는 
남정네들이 설설 오줌을 쌌다.

대피막을 흔드는 호랑이의 포효가 
그칠 줄 모르자 보부상이 떨리는 
목소리로 “하, 하, 한사람만 
희, 희, 희생양이 되어줘야겠어.”
열한명의 시선이 보따리 하나를 
안고 구석에 쪼그리고 앉아 있던 
열세살 어린 소년에게 쏠렸다. 
새파랗게 질린 소년은 울음을 
터뜨리며 “살려주세요. 홀로된 
어머님을 제가 모셔야 해요. 
살려주세요 제발.” 탁발승은 
눈을 내리깔고 나무아미타불만 
외고 있었다. 사립문이 열리고 어린 
소년이 나뒹굴어 내팽개쳐졌다. 
혼절했던 소년이 눈을 떴을 때 그는
 따뜻한 호랑이 품에 안겨 있었다.
동향을 한 바위굴 속으로 
아침햇살이 쏟아져 들어왔다. 
그는 호랑이가 무섭지 않았다. 
옆에 삐쩍 마른 암컷 호랑이가 
입을 크게 벌렸다.
소년은 팔을 뻗어 호랑이 
목구멍에 박혀 있는 뾰족한 
산돼지 송곳니를 뽑았다. 
산돼지 송곳니 때문에 먹지 못해 
수척한 암컷 호랑이는 수놈이 
잡아놓은 사슴을 걸신들린 
듯이 뜯어먹기 시작했다. 
그날 밤, 소년은 호랑이 등에 
업혀서 집으로 돌아갔다.
다음날 이른 아침, 소년의 어머니가 
소리쳐 소년이 나가보니 마당에 
커다란 곰이 쓰러져 있었다. 
사흘이 멀다 하고 사슴·멧돼지·
노루가 마당에 널브러졌다. 
웅담·사향에 고기는 고기대로 팔아 
홀어머니와 소년은 부자가 되었다.
늦은 봄, 눈이 녹자 눈사태로 
매몰되었던 대피막에서 
탁발승을 포함한 
열한구의 시체가 나왔다.
- 사랑방야화 -
복 받는날 되시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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