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담 야설 이야기

살부지수(殺父之讐:아버지를 죽인 원수)

갓바위 2018. 9. 22. 10:40
살부지수 아버지를 죽인 원수

어릴 적부터 앞뒷집에서 살며 
친형제처럼 살아온 정초시와 
오첨지는 그날도 동네 한복판 
느티나무 아래 평상에 앉아 
막걸리 한되를 걸고 
장기판을 벌였다.
“장이야 장 받아라 장.” 
오첨지가 졸을 옆으로 빼자마자 
정초시가 상을 성큼 
움직여 장을 부른 것이다. 
훈수꾼 하나가 탄식하며 “
초가 피할 길이 없네.”
“한수만 물리자구.” 오첨지가 
졸을 잡아 들자 정초시가 “
일수불퇴”를 외치며 졸을 
뺏으려고 오첨지 손을 움켜잡았다.
“물리자”, “못 물러줘” 오첨지와 
정초시는 졸을 잡고 이를 악물고 
서로 잡아당겼다. 
훈수꾼들은 낄낄거리며 두사람의 
줄다리기를 구경하는데 어어어~ 
오첨지 손이 미끄러지며 뒤로 
나자빠져 평상 아래로 굴러 떨어지며 
돌부리에 머리가 박혀 
선혈을 펑펑 쏟으며 혀를 뺐다.
의원을 불러온다, 
청심환을 가져온다, 
부산을 떨었지만 오첨지는 
불귀의 객이 되고 말았다.

앞집에서는 곡소리가 끊어지지 
않는데 뒷집에서는 방구들이 
꺼져라 한숨뿐이다. 
뒷집 정초시는 드러누워 식음을 
전폐하고 앞집 오초시네 
초상집 곡소리를 들으며 
머리를 쥐어뜯는다. 날벼락을 
맞은 오첨지네 상가에서는 집안 
어른들이 모여 별별 얘기들이 오갔다.
“원수를 못 갚으면
 귀신이 구천을 헤매는데….” 
“정초시 그놈은 어디 있는겨?”
늦게 본 정초시의 말썽꾸러기 
열두살 외아들이 방에 들어와 
한숨만 쉬고 있는 정초시에게 “
아부지, 이리 좀 나오시오.” 
그는 마루 기둥에 동아줄로 
아버지를 묶어놓고 앞집 상가 
빈소로 가서 맏상주 소매를 
끌어당기며 “형, 나 잠깐만 봅시다.” 
굴건제복을 입은 오첨지의 
맏아들은 정초시 아들에게 
이끌려 뒷집으로 갔다.
정초시 아들은 날이
 시퍼런 도끼를 꺼내 와 
“우리 아부지는 형의 아부지를 죽인 
살부지수(殺父之讐:아버지를 죽인 원수) 
아니우. 아들 된 도리로 
아부지 원수는 갚아야지요.” 
오첨지 맏상주가 어리둥절해 있는데 
정초시 아들의 얘기는 계속된다. 
“형이 우리 아부지를 죽이고 나면 
언젠가 나는 형을 죽여야 됩니다. 
나의 살부지수니까. 다음에 어느 
날인가 형의 아들 면이는 나를 죽이고”
맏상주는 입을 굳게 다물고 
“알았다 도끼를 다오”라며 
받아들자마자 기둥에 묶여 있는 
정초시를 향해 도끼를 휘둘렀다.
“쾅!” 모두가 눈을 떴을 때 도끼는 
기둥에 꽂혔고 정초시를 묶었던 
동아줄은 산산이 잘라져 
정초시 발밑에 떨어졌다. 

“아저씨는 선친과 형제처럼 지내
셨는데 이러고 계시면 어쩝니까. 
빈소를 지켜주셔야지요.” 
오첨지 맏상주가 정초시 팔짱을 
끼고 앞집 빈소로 향하자 정초시는 
그저 닭똥 같은 눈물만 흘렸다. 
- 사랑방야화 -
복 받는날 되시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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