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담 야설 이야기

청상과부 고명딸

갓바위 2018. 9. 18. 10:16
청상과부 고명딸

별당 기와지붕에 내려앉은 달빛은 
교교한데 풀벌레 울음소리에 묻혀 
가느다랗게 흘러나오는 딸애의 
흐느낌에 윤대감의 가슴은 찢어진다.
권참판 댁에 시집보낸 딸이 
일년도 안돼 청상과부가 되어 
친정으로 돌아와 별당에 틀어박혀
두문불출하는 걸 애간장을 녹이며 
지켜보기 벌써 5년이 되었다. 
꽃피고 새우는 봄날이면 자수를 
놓으며 시름을 달래던 딸애가 
방문을 열고 처마 아래 만개한 
모란꽃을 보다가 범나비 암수가 
어울려 춤추는 걸 보고는 
신세한탄 끝에 눈물을 쏟는다.
여름밤엔 소쩍새 울음소리에 
한을 쏟으며 섧게 섧게 울었다. 
18세에 시집갔으니 딸애 
나이도 벌써 스물셋이 되었다.
어느 날 밤, 윤대감은 맏아들인 
윤초시와 집 안팎의 살림을 도맡아 
처리하는 젊은 집사와 술잔을 나눴다.
25년 전, 아기 울음소리에 대문을 열자 
누군가 강보에 싼 아기를 두고 갔길래 
주워 길렀더니 허우대 좋고 영특하고 
경우가 밝아 열다섯살부터 
집사를 시켰던 것이다. 
셋은 비감한 한숨만 내뿜을 뿐 
말없이 술만 마셨다.
이튿날 밤, 비는 부슬부슬 오는데 
윤대감 댁에 애끓는 
곡소리가 흘러나왔다.

밤은 깊어 삼경인데 윤대감 댁 대문이 
열리고 말이 끄는 수레가 가마니로 
덮은 관을 싣고 덜커덩 덜커덩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날이 새자 윤대감의 청상과부 
고명딸이 목을 매어 자살했다는 
소문이 파다하게 퍼졌다.
그날 이후 윤대감 댁에서 딸 울음
소리는 더 이상 들리지 않았다.
10년이란 세월이 흘렀다. 
윤대감의 맏아들은 별감이 되어 
함경도 관아를 돌다가 
한달 만에 집으로 돌아왔다. 
밤이 깊도록 윤대감 
사랑방엔 불이 꺼지지 않았다. “
그래, 아이가 셋이라 했나?” 
“네, 2남1녀였는데 까놓은 
알밤처럼 잘생겼습니다. 
아홉살 맏이는 눈 모양이 
아버님을 빼 꽂았드라구요.” 
“그래?! 허허허.” 윤대감은 계속 
술잔을 비우며 웃으면서도 눈물을 
쏟아냈다. “벌써 사서삼경을 
읽더라구요.” “그래, 허허허. 
살림살이는?” “논이 쉰마지기가 넘어 
머슴을 둘이나 데리고 있습니다.”
 “네 누이동생 얼굴은 좋더냐?” “
아버님 뵙고 싶어 한번 눈물 흘렸지 
제가 있는 3일 동안 계속 
웃음을 잃지 않았습니다.”
10년 전 비 오던 날 밤, 윤대감 댁 
대문을 나선 말 수레 관 속에 
윤대감 딸이 돈 꾸러미를 안고 
누워있었고 말고삐를 잡은 사람은 
스물다섯살, 집사 청년이었다. 
그들은 멀리멀리 함경도까지 
가서 터를 잡았던 것이다.
- 사랑방야화 -
복 받는날 되시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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