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담 야설 이야기

도둑질에도 도가 있다

갓바위 2018. 12. 16. 09:22
 도둑질에도 도가 있다

최참봉은 만석꾼 부자다.
논밭에서 추수한 곡식으로 
곳간을 가득 채우는 것보다는 
저잣거리의 많은 가게에서 
집세를 받는 게 더 큰 소득원이다.
월말이 되어 최참봉이 뒷짐을 지고 
장죽을 흔들며 저잣거리로 나가면
임차인들인 가게 주인들은 저마다 
허리 굽혀 최참봉에게 
인사하느라 여념이 없다.
이 가게 저 가게 세를 받아 
전대에 넣은 최참봉은 
마지막으로 주막집에 들렀다. 
그 주막집도 최참봉 소유라 
주모가 버선발로 뛰어나와 
최참봉을 부축해서 
모셔다 안방에 앉혔다. 
푹푹 찌는 날씨라 주모는 
물수건을 내오고 부채질을 하다가 
부엌으로 가 냉콩국수 상을 들고 왔다.
최참봉은 냉콩국수를 두그릇이나 
비우고 주모의 엉덩이를 쓰다듬으며 
냉막걸리를 벌컥벌컥 들이켰다.
술이 얼큰하게 오른 채 주막을 나와 
집으로 향하는데 대근이파 
도둑 둘이 최참봉을 미행했다. 
도둑은 둘 다 보부상 차림에 
초립을 눌러쓰고 멀찌감치서 
최참봉을 따라갔다.
냉콩국수를 과식한데다 
냉막걸리를 급하게 들이킨 탓에 
뱃속이 꼬르륵거리자 
최참봉의 발걸음이 빨라졌다.
부엌데기 언년이가 대문을 
열자마자 최참봉은 허겁지겁 
들어가 뒷간으로 향했다.

최참봉은 전대를 풀어 뒷간 밖 
감나무에 걸어 두고 황급히 
볼일을 보러 들어갔다. 
뒤따르던 도둑 하나가 담 밑에서 
등을 숙이자 나머지 도둑이 
고양이처럼 날렵하게 등을 밟고 
날아올라 담을 넘어 감나무에 
걸어 둔 전대를 낚아채 담 너머로 
던진 후 감나무 가지 하나를 잡고 
다시 휙 날아서 흔적도 없이 도망쳤다.
큰 키에 이목구비가 수려한 대근이파 
두목 대근이는 책을 읽다가 두 졸개 
녀석이 최참봉의 전대를 훔쳐 와 
무용담을 늘어놓는 걸 가만히 
듣고 있다가 불벼락을 내렸다. 
“네 이놈들, 그토록 당부했건만…. 
지금쯤 무고한 여종이 고초를 
당하고 있을 게 뻔하거늘!”
두목의 호통에 두 도둑은 전대를 
들고 다시 최참봉 집을 찾아갔다. 
아니나 다를까 여종이 발가
벗겨진 채 고문을 당하고 있었다.
“어르신께서 약주가 과하셔서 
이 전대를 떨어뜨리고 가신 걸 
우리 대인께서 주워 
전해드리라고 하셨습니다.”
“맞아, 맞아. 내 전대야.” 
최참봉이 반색하는 것을 보며 
도둑들은 태연히 말했다.
“우리 대인께서는 어르신이 
전대를 받았다는 증서를 
받아오라 하셨습니다.”
“그거야 어려울 것 없지.”
하지만 최참봉이 방에 가서 
증서를 써 가지고 나왔을 땐 
두 도둑도 전대도 사라지고 없었다. 
부엌데기 여종의 혐의가 
벗겨졌음은 말할 것도 없다.
- 사랑방야화 -
복 받는날 되시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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