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담 야설 이야기

고려장 에미의 마음

갓바위 2018. 12. 19. 09:11
 고려장 에미의 마음

화전 밭뙈기를 일궈 보릿고개에도 
다섯식구가 부황 나지 않고 
거뜬히 넘는 것은 오직 착한 
가장 이서방의 부지런함 덕택이다. 
마누라와 슬하에 알밤 같은 아들딸을 
두고 노모를 모시고 화목하게 살아가던 
이 집안에 먹구름이 끼어들기 
시작한 것은 연로한 노모 때문이다.
시집와서 두해 만에 신랑을 
저승으로 보내고 유복자로 얻은 
외아들이 바로 지금의 이서방이다.
젊은 시절 매파들이 들락날락하며 
홀아비의 재취로 들어가라 
부잣집 둘째로 나앉아라, 
별의별 청혼이 들어왔건만 그녀는 
한귀로 듣고 다른 귀로 흘러 버렸다.
봄·여름·가을엔 들판으로 쏘다니느라 
저녁 수저만 놓으면 곯아떨어졌지만 
동지섣달 잠 안 오는 기나긴 밤,
서방 생각이 나면 바늘로 허벅지를 
찌르며 자학으로 밤을 새웠다.
춘하추동은 쉼 없이 바뀌어 금이야 
옥이야 키운 아들이 장가를 가서 
며느리가 들어와 아들딸을 낳자 
할머니가 되었다. 
젊은 날엔 논밭 매느라,
 늙어서는 손자·손녀 업고 다니느라 
허리가 굽더니 어느 날부터인가 
거동이 불편해졌다.
대소변 가리기도 힘들어져 할머니 
옆에서 자던 손자·손녀도 냄새가 
난다며 안방으로 가 버렸다. 
부부싸움이 부쩍 잦아졌다.
“이제부터 나는 어머님 수발 못 들겠소.”
며느리의 앙탈이 이어졌다. 
이서방이 노모 방에 들어와 똥을 싼 
고쟁이를 벗기고 쇠죽솥에 
물을 데워 목욕을 시켰다.
똥 묻은 어머님 옷은 당신이 빨구려.”
며느리의 악다구니는 끝이 없었다. 
이렇게 3년이 흘렀다. 
부부간에도 등을 맞대고 자다가 
이서방은 아예 제 어미 방에서 잤다. 
하룻밤에도 요강을 몇번씩 바꿔야 했다. 
어느 날 밤, 며느리가 
이서방에게 차갑게 대꾸했다.
고려장은 나라에서도 눈감아 준답니다.
착한 이서방이 생전 처음 
마누라에게 손찌검을 했다. 
밤새 울던 마누라가 희뿌옇게 동이 
틀 때 아이들을 데리고 집을 나가 
버렸다. 친정으로 도망간 
마누라는 돌아올 줄 몰랐다.

어느 날 주막에서 술을 잔뜩 퍼마신 
이서방이 밤늦게 집으로 와 
노모를 둘러업었다. 
뼈만 앙상한 노모는 
나락 한말 무게도 되지 않았다. 
이서방은 산속으로 들어갔다. 
길도 없는 칠흑 같은 숲 속으로 
무작정 올라갔다.
부엉이 소리만 들리는 
적막강산에 등에 업힌 노모가 
북북 무엇이인가를 찢고 
있었지만 돌아볼 겨를이 없었다. 
가시넝쿨에 걸리고 바위에 부딪히며 
이서방은 밤새도록 산속으로 들어갔다. 
삼경이 지났을 때 바위 아래에 노모를 
내려놓았다. 입고 있던 치마가 없어졌다.
“엄니, 치마는 왜 벗어 버렸소?”
노모는 말없이 바위 아래 비스듬히 누웠다.
 이서방은 입었던 조끼를 벗어 노모에게 
덮어 주고 뒤도 돌아보지 않고 내려왔다.
백걸음도 내려오지 않아 이서방은 
띄엄띄엄 나뭇가지에 걸려 있는 
흰 천 자락을 잡고 대성통곡을 했다. 
아들은 제 어미를 고려장시키려고 
업고 가는데, 제 어미는 아들이 
밤중에 돌아갈 때 길을 잃을까 봐 
업힌 채 치마를 찢어 천 조각을 
나뭇가지에 매달아 두었던 것이다.
 이서방은 한걸음에 달려 
올라가 노모를 다시 업었다.
“아범아, 
나를 두고 너 혼자 내려가거라.”
“엄니, 제가 잘못했소.”
이서방의 울음소리가 
산천을 울렸다. 
- 사랑방야화 -
복 받는날 되시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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