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담 야설 이야기

황참봉집 콩 한홉

갓바위 2018. 12. 29. 06:47
 콩 한홉

천석꾼 부자 황참봉은 틈만 나면 
지난여름 홍수 때 개울에 빠져 익사한 
셋째아들 묘지에서 시름에 젖는다. 
셋째는 자식들 중에서 가장 품성 좋고 
똑똑해 초시에 합격하고 과거 
준비를 하던 아끼던 아들이었다.
맏아들은 장사한다고 
논밭을 팔아 평양으로 가더니 
기생과 살림을 차리고 
하인을 보내 돈만 가져갔다. 
그 많던 돈을 기생 치마 속으로 
다 처박아 넣고 계속 장사 밑천이 
모자란다고 거짓말을 해대는 것이다.
둘째놈은 과거 보겠다고 책을 끼고 
있지만 낮에는 책을 베개 삼아 
잠만 자고 밤이 되면 저잣거리 
껄렁패들과 어울려 기방 출입으로 
새벽닭이 울어서야 몰래 들어왔다. 
세간 날 때 떼어 준 옥답을 
야금야금 팔아 치우는 것이다.

첫째며느리는 남편이 평양 가서 
하는 짓을 뻔히 알고 있는 터라 
자신은 사치스럽게 돈을 펑펑 써댄다. 
통영 자개농을 들여놓고 허구한 날 
비단을 사들여 치마저고리 해 입고 
방물장수만 만나면 금비녀다 
옥노리개를 산다. 둘째며느리도 
첫째에게 질세라 돈 쓰는 데는 
한치도 물러서지 않는다.
 다만 청상과부가 된 셋째며느리는 
상복을 입은 채 두살배기 
유복자에게 온 정성을 쏟는다.
고을 사람들은 황참봉네 집안도 
기울어져 주저앉을 날이 멀지 
않았다고 수군대기 시작했다. 
황참봉은 잠이 오지 않는다. 
아버지와 함께 피땀 흘려 모아 놓은 
재산, 3대를 지키지 못한단 말인가. 
두아들에게 준 전답은 대부분 
남의 손에 넘어 갔지만 아직도 
황참봉 손엔 오백섬지기 옥답이 있다. 
그러나 문제는 첫째와 둘째는 
저 모양들이고 셋째는 황천으로 갔고 
황참봉 자신은 하루가 다르게 
늙어 간다는 것이다. 어느 봄날, 
황참봉은 세며느리를 불렀다.
“금 열돈씩을 주려나?” 큰며느리가
 들뜨고 “형님, 너무 크게 바라지 마세요.

나는 비단 두세필쯤 받으면 족합니다” 
둘째며느리가 답했다. 
며느리들이 본가 사랑방으로 들어가 
시아버지 앞에 다소곳이 앉았다.
 “너희들에게 줄 것은 이것이다.” 
한지에 싼 어른 주먹만한 것을 
받아 들고 세며느리는 사랑방을 
나왔다. “에게게 이게 뭐야?” 
한지를 풀자 한홉쯤 되는 
콩이 쏟아져 나왔다.
봄이 가고 여름이 가고 가을이 왔다. 
황참봉은 맏며느리를 불렀다.
“지난봄에 내가 콩 한홉을 네게 줬지?”
“네.” “어떻게 했느냐?”
“이튿날 아버님 진짓상에 
콩자반이 올라갔잖아요. 
아버님께서 주신 콩으로 제 딴에는 
정성 들여 만들었습니다.”
황참봉은 개울 건너 
둘째네 집으로 갔다. 
둘째아들은 밤새도록 기방에서 술을 
마셨는지 안방에서 잠을 자고 있고, 
툇마루에서 방물장수와 
앉아 있던 둘째며느리가 뽀르르 
나와 시아버지를 맞았다.
“지난봄에 콩 한홉을 네가 받았지?”
“네, 아버님.” “어떻게 했느냐?”
“쥐가 먹을세라 저기 걸어 뒀습니다.”
둘째며느리는 자랑스러운 듯이 
말했고, 콩은 처마 밑에 
대롱대롱 매달려 있었다.

셋째 집에 갔다. 유복자를 업고 
상복을 입은 채 셋째며느리는 
마당에서 콩 타작을 하고 있었다.
“지난봄에 콩 한홉을 받았지?”
“네, 아버님. 밭둑에 그 콩을 심어 
지금 털고 있습니다. 
한말 두어되는 나오지 싶습니다.”
황참봉은 본가로 돌아오며 혼잣말을 했다. 
“우리 집안이 망할 수야 있나!” 
황참봉은 가지고 있던 
남은 땅문서를 몽땅 셋째의 
유복자 손자에게 넘겨줬다. 
- 사랑방야화 -
복 받는날 되시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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