업보중생의 죄업
참회는 과거의 잘못을 뉘우치고
용서를 구하는 일입니다.
곧 '나'의 참된 행복을 위하여 맺힌 것을 풀고 푼 것을
더욱 원만하게 이끌어가는 묘법이 참회인 것입니다.
일찍이 부처님께서는 여러 경전을 통하여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계가 사바세계라는 것을 거듭거듭 강조하셨습니다.
무엇보다 먼저 우리가 '사바'라는 공간과 '사바'의
시간 속에 살고 있음을 알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사바'란 무엇인가? 인도말인
'사바'는 감인 또는 회잡으로 번역됩니다.
따라서 '사바'를 감인세계로 풀이하면 '
참지 않고서는 살아갈 수 없는 세계'라는 뜻이 되고
회잡세계로 풀이하면 '잡된 인연으로
얽히고 설켜 있는 세계'라는 뜻이 됩니다.
곧 잡된 인연으로 가득한 이 세계에서 사는 중생은
어느 누구 할 것 없이 능히 잘 참으며 얽히고 설킨
매듭을 풀면서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모든 중생은 행복하기를 원합니다.
뜻대로 이루기를 바라고 걸림없이 살기를 바랍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참지 않고서는 살 수 없는 이 세계에
태어났고 잡된 인연에 결박되어 살아가야만 합니다.
무엇 때문에 이렇게 된 것입니까?
부모를 잘못 만나서 입니까?
시대를 잘못 만나서 입니까?
이 물음에 대해 부처님께서는
'업'이라는 한 글자로 답하셨습니다.
'지은 바'대로 받고 있다고 하셨습니다.
지난 세상 너희가 탐욕과 성냄과 어리석음으로
갖가지 업을 지었으니 지금 마음대로 하지 못하는
고통과 과보를 받고 있다는 것입니다.
부모 탓도 시대 탓도 할 것이 없다고 하셨습니다.
오히려 부모가 '나'를 선택한 것이 아니라
스스로가 자신의 업에 맞는 분을 부모로 선택하게
된 것이고 업에 맞는 시대와 국토 속으로
흘러들어간 것뿐이라는 사실을 깨우쳐 주셨습니다.
나아가 지금의 고통을 능히 감수하지 않으면 이 세상을
살기가 더욱 어려워지므로 '기꺼이 받아라'고 하셨습니다.
아울러 '그대 스스로 잡된 인연을 맺어 고통의 수렁에 갇힌
것이므로 그 얽힌 매듭을 풀 자는 오직 그대 자신뿐'임을
부처님께서는 항상 일깨워 주셨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기꺼이 받기를 싫어합니다.
현재의 고통이 업보라는 사실조차도 쉽게 수긍하려 하지 않고
수긍하지 않기 때문에 스스로가 풀려고도 하지 않습니다.
왜 수긍도 하지 않고 풀려고도 하지 않는 것인가?
그 업이 눈에 보이지도 않고 느껴지지도 않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느낄 수 있는 현생의 업보보다,
눈에 보이지 않는 전생의 업이 훨씬 크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불교에서는 전생에 지은 업과 현생에 지은 업이
현생의 과보에 작용하는 비율을 9대 1정도로 보고 있습니다.
마치 빙산의 대부분이 물 속에 가려있듯이,
보이지 않는 전생의 업이 감지할 수 있는
현생의 업보다 훨씬 영향력이 크다고 합니다.
전생의 업장...
인천광역시 부평에는 1921년
신유생 할머니가 계십니다.
이 분의 이름을 밝힐 만한 이야기가 아니므로
여기서는 '부평보살님'이라 칭하겠습니다.
부평보살님은 18세에 시집을 가서
23세에 둘째 아이를 낳았습니다.
23세라면 두 아이와 함께 부부의 정을 나누며
한창 재미있게 살 나이인데,
그때부터 남편이 바람을 피우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그 바람은 밖에서만 끝나는 바람이 아니었습니다.
사귀는 여자를 집으로 데리고 들어와 잘해주기를
상전처럼 하면서 본부인은 식모나 노예처럼 부렸습니다.
그러다가 그 여자가 싫어지면 버리고 또 다른 여자를
데리고 들어와서 희희낙락 하는 것이었습니다.
심지어는 그 여자들과의 사이에서 자식이 태어나면
그 아이들까지도 본부인에게 키우도록 맡겼습니다.
말할 수 없이 속이 상한 부평보살이 가끔씩 항의를 하면
남편은 절대로 큰소리를 치거나 손찌검을 하지 않았습니다.
대신 아이들을 때리고 발길질하고 집어던지기까지 하였습니다.
모성애가 지극했던 부평보살은 자식들에게 해가 돌아가지
않도록 하기 위해 참고 견딜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렇게 지내기를 7년, 서른이 된 부평보살은 자신의
신세를 한탄하다가 무작정 집을 떠났고 발길 닿는 대로
가다가 계룡산 신흥암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공주 갑사의 부속암자인 신흥암은
천진보탑이 있는 유명한 기도도량입니다.
온 산천이 꽁꽁 얼어붙은 음력 섣달, 부평보살은
이 신흥암에서 삼칠일(21)기도를 시작했습니다.
새벽 2시에 일어나 계곡의 얼음을 깨고 목욕을 한 다음
밤 12시까지 기도를 하고 잠깐 눈을 붙인 다음
또 새벽 2시에 일어나 기도했습니다.
그야말로 하루 종일 기도하면서 부처님께 여쭈었습니다.
"대자대비하신 부처님, 저와 그 사람 사이에 무엇이
어떻게 얽혀 그토록 애를 먹이나이까? 부디 가르쳐주옵소서."
그렇게 질문을 하면서 몸을 돌보지 않고
삼칠일 기도를 한 마지막 날 저녁 부평보살은
절을 하다가 엎드린 채 깜빡 눈을 감았습니다.
순간, 어떤 전경이 눈앞에 쫙 펼쳐졌습니다.
그녀는 남자인지 여자인지 알 수 없는
어떤 사람과 싸움을 하고 있었습니다.
처음에는 말로만 다투다가 삿대질을 하기 시작했고,
마침내는 서로가 멱살을 잡고치고 박고 머리카락을 쥐어뜯으며
싸우다가 함께 바닥에 넘어져 엎치락뒤치락 하였습니다.
그때 한 생각이 불끈 치솟았습니다.
'이걸 그냥 죽여 버려야지!' 주위를 살폈더니
마침 칼이 하나 보였고 그 칼을 집어 상대를 찔렀습니다.
그러나 죽지 않자 다시 칼을 뽑아 또 찔렀습니다.
결국 상대는 쓰러졌고 싸움은 끝났습니다.
'죽었구나. 내가 이겼다.'
그렇게 생각하며 칼을 집어던지고 일어서는데,
죽었던 그 사람이 따라 일어나는 것이었습니다.
'아! 내가 저 사람을 죽였으니
이번에는 저 사람이 나를 죽일 것이다.'
문득 이와 같은 생각이 떠오르는 순간
상대편이 빙긋이 웃으며 말했습니다.
"네가 나를 죽였으니 이번에는 내가 너를 죽일 차례다."
그리고 칼을 들고 쫓아왔으므로 피하다가 피하다가
꼼짝달싹도 할 수 없는 모퉁이로 내몰리게 되었습니다.
그 사람은 날이 시퍼렇게 선 칼날을 목에다 대고 말했습니다.
"너는 나를 단 두 번의 칼질로 쉽게 죽였지만,
나는 그렇게 하지 않는다. 오랫동안 바짝바짝
마르는 너의 모습을 즐긴 다음 죽일 것이다."
불과 1~2분 사이, 부평보살은 절하다 엎드린 채
이러한 꿈을 꾸고 깨어났습니다.
그리고 깨달았습니다.
'아, 지금의 내 남편은 남편이 아니구나.
꿈속에서 내가 죽인 사람이 나를 바짝바짝 말려 죽인다고 하더니,
금생에 남편이 되어 나를 말려 죽이려 한 것이구나.'
그날 이후 부평보살은 남편이 하는 일에 한마디의
불평도 반항도 대꾸도 하지 않고 묵묵히 살았습니다.
하지만 남편의 복수는 끝난 것이 아니었습니다.
자유당 시절, 남편은 서울 을지로 3가에 6층짜리 빌딩을
세 채나 가지고 있었지만 정치활동을 하다가 모두 날려버렸고,
그것도 모자라 돈을 빌려 쓰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돈을 빌릴 때는 반드시
부인의 인감을 찍어주는 것이었습니다.
나이 사십이 넘자 남편은 중풍으로 쓰러졌고,
부평보살은 사방을 뛰어다니며 좋다는 약을 구해오고
용하다는 의사를 모셔와서 치료했습니다.
3년이 지나자 남편은 지팡이를 짚고
걸을 수 있게 되었지만 병상에서 일어나자마자
다시 작은 마누라를 찾아가는 것이었습니다.
2년 뒤 남편은 두 번째로 쓰러져 다시는
돌아오지 못할 저세상 사람이 되었으니,
남기고 간 빚은 부인의 몫이 되었습니다.
거기에다 자신이 낳은 자식 둘과 남편이 바람을 피워 얻은
여섯 아이 등 8남매를 기르며 살아야만 했습니다.
이토록 모진 것이 업장입니다.
세상을 살다보면 억울한 생각이 들 때가 있습니다.
'나는 아무런 잘못이 없는데
어찌 남들처럼 행복하게 살지 못하는가?'
'왜 나에게만, 우리 집안에만
이와 같은 불행이 찾아드는 것인가?'
하지만 그것은 지나간 많은 생애동안 내가 쌓은 업 때문에요
매듭 때문이요 빚 때문에 생겨나는 불행입니다.
원인을 알 수 없다고 하여 그냥 원망만 할 일이 아닙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하여 자포자기할 일도 아닙니다.
전생에 맺은 빚과 죄업이 크면 클수록 불행이 큰 법이요,
불행이 크면 클수록 간절히 정성을 다해 참회하면 됩니다.
부평보살님은 다행히도 기도를 하여
전생의 업보를 깨달았습니다.
그 결과 '전생의 빚을 갚는 자세'로 기꺼이 받으며
살았기에 마음고생은 덜 하며 살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안타까운 것은 신흥암의 기도 이후
깊은 참회가 따르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만약 부평보살님이 지난 생의 잘못을 녹이는
참회기도에 몰두하였다면
훨씬 좋은 결과를 볼 수 있었을 것입니다.
지허스님(순천금전산금둔사)


복 받는날 이루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