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충남 태안군 이원면에 살고 있는 김 씨 할아버지는 한창 바쁜 농번기에도
농기구를 가지고 논으로 가지 않고 집 뒷산으로 올라간다.
그 할아버지는 성격이 칼칼한 편이나 정력적인 동안童顔으로 아직도 혈색이 좋다.
젋어서는 난봉깨나 피웠을 성싶지마는 어려운 것을 모르고 한평생을 지냈어도
늙어도 버젓이 점잔을 빼고 남에게 굽히려 들지 않는 고집이 있었다.
이러한 김 할아버지가 하루에도 몇 번씩 뒷산에 있는 아내 산소에 가서 정성을 들인다.
그래서 그런지 산소 주변에는 노란 들꽃이 환하게 가득 피어 있었다.
김 할아버지가 산소 주변에 들꽃을 정성스럽게 돌보는 것은
그의 처가 살아생전에 계절마다 바뀌는 이름 모를 들꽃들을 아주 좋아해서라고 했다.
젊은 시절 김 할아버지는 철이 없어 밖으로만 돌아다녔다.
그의 처가 죽던 날도 술집에서 질펀하게 한 잔 하다가
동네 사람들 손에 이끌려와 아내 임종을 맞았다.
그의 아내는 마지막으로 눈을 감으면서,
"아이들이 아직 너무 어리니 좀 더 큰 후에 새장가를 가시오.
그렇지않으면 내가 뱀이 되어 당신을 괴롭히겠소."
라고 눈물을 흘리며 유언을 남긴 뒤 죽었다.
그러자 김 할아버지는 아내 유언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할머니 장례를 치르자마자, 곧바로 섬마을 처녀에게 새장가를 들었다.
그것도 죽은 조강지처와 첫날밤을 지냈던 방에서 또다시 첫날밤을 보내게 되었다.
신랑 신부가 서로 마주 앉아서 잠잘 준비를 하고 새색시 옷고름을 푸는데
이상하게 천장에서 자꾸 바삭바삭 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꼭 이빨가는 소리같았다.
그래서 하던 동작을 멈추고 서까레 쪽에 호롱불을 갖다대고 보았더니,
아니 글쎄, 몸뚱이는 까맣고 눈이 빨간 뱀 한마리가 혀를 낼름거리며 쳐다보고 있지 않은가.
이를 본 순간, 새색시는 놀라서 비명을 지르고 기절을 해버렸고 김 할아버지는
그때서야 죽은 아내가 한 유언이 생각이 나, 온몸이 섬쩍지근하여
얼른 마당으로 뛰어나가 작대기로 뱀을 잡아 죽인 뒤 짚불 위에 태워버렸다.
이렇게 첫날밤의 소동이 있은 뒤 새색시가 있는 곳이면 어디든 항상 뱀이 나타났다.
밥을 하는 부엌에서 솥뚜껑을 열면 그 속에 뱀이 몸뚱아리를 칭칭 감고 있기도 하고,
개울가에 가서 빨래를 하면 어디서 나왔는지 모르게
어김없이 물가에 나와 꿈툴거리고 있더라는 것이다.
심지어 속옷을 갈아입으려고 서랍장을 열면 그곳까지 어떻게 들어갔는지
모르게 그 안에 들어가서 똬리를 틀고 있어 놀라게 한다는 것이다.
뱀이 나올 때마다 동네 사람들과 집안 식구들이 많이 죽였지만
아무 소용없이 줄기차게 나타났다는 것이다.
도대체, 뱀이 얼마나 심하게 나오던지 밥 먹을 때도 나오고
화장실에 가도 나오고 특히 밤에 잠자리를 하려면 더욱 심해 도저히
잠자리를 할 수가 없어서 새색시가 그만 살지를 못하고 무서워서 도망 가고 말았다.
참으로 신기한 것은 새색시가 집을 나간 뒤부터는
그렇게 많던 뱀이 한 마리도 나타나지 않더라는 것이다.
이러한 일이 있고 난 뒤부터 김 할아버지는 조강지처한테
잘못했음을 크게 뉘우치고 지금까지 혼자 살고 있다고 한다,
또한, 김 할아버지는 할머니에 대한 참회하는 마음으로 멀리 떨어져 있던
산소도 집 뒷산 양지바른 곳으로 바로 이장하고 계절이 바뀔 때마다
아내가 좋아했던 들꽃을 다른 시장까지 가서 구해다가 심고 가꾼다고 한다.
물론 다른 곳으로 이사도 못가고 한평생을 옛날 집 그대로 살면서 말이다.
지금도 할아버지가 하루라도 산소를 찾아가지 않으면 할머니가 꼭 꿈에 나타난다고 하면서,
"아, 글쎄 우리 내외는 아직도 같이 살고 있다니까유." 라고 말한다는 것이다.
살아 있는 사람의 길과 죽은 사람의 길은 분명히 다르다.
할아버지뿐만이 아닌 할머니도 자신이 가야 할 길을 가지 못하는 것은
크나큰 고통이며 악업을 짓는 일이다.
진정 참회하고 할머니를 위하는 길을
해원상생과 선도수생을 위해 간절히 천도를 해주어야 한다.
천도재薦度齋는 열반인의 명복을 빌고 불보살께 제사를 올려
영가로 하여금 진급하고 선도에 태어나도록 기원하는 의식이다.
흔히 49재라고도 한다.
그러나 업장이 두터운 경우에는 몇 번을 올리는 경우도 있다.
할아버지가 해야 할 일은 할머니 묘지를 찾는 일이 아니라
할머니를 위해 천도축원을 올리는 것이 바른 길 이리라.
-인연산책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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