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불자가 자신이 사용하는 카드를 아무리 찾아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아내에게 “혹시 내 카드 보지 못했는가?”라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아내가 “아니, 자기 카드는 자기가 챙겨야지,
뭐 날 의심하는거야? 뭐야?”라고 따졌습니다.
이에 남편은 “아니 이 사람아 내가 당신이 사용했다고 언제 이야기 했어?
보지 못했으면 보지 못했다고 이야기 하면 될 것을 역정을 내고 있어! 기분 나쁘게“
그러자 아내가 “아니 누가 역정을 내어! 말끝마다 시비야!” 이쯤 되자
두 사람은 크게 다투고 말았습니다.
그 결과 두 사람 모두 괴로움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자 무엇이 문제일까요?
수행자의 소망은 단지 괴롭지 않은 것입니다.
왜냐하면 괴롭지 않은 것이 행복하기 때문입니다.
괴롭지 않으려면 어떤 현상이나 ‘있는 그대로 알아차려야’ 합니다.
여섯 가지 감각기관이 여섯 가지 감각대상과 접촉할 때
어떤 판단도 하지 말아야 합니다.
만약 내가 어떤 판단을 하면 그 순간 옳다거나 그르다는
선입관이 작용하여 괴로움이 시작됩니다.
위 사례에서 남편은 자신의 카드가 찾아도 보이지 않은 것은 하나의 현상입니다.
이 때 “음, 내 카드가 찾아도 보이지 않네. 기억이 잘 나지 않구나!
잘 찾으면 나오겠지!” 이정도로 알아차림 하면 아무 문제가 생기지 않는 것입니다.
그런데 “혹시 아내가 보았거나 사용한 것은 아닌지”하고
“추측이나 판단”을 한 것은 사실과 다른 것입니다.
그 결과 아내가 화를 내고 다투게 된 것입니다.
최초의 남편 판단이 문제입니다.
그다음 아내가 “카드를 보았는가?” 라는 남편의 질문에
그냥 사실대로 “보지 못했어!”라고 했으면 아무 문제가 없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위 사례에서 “나를 의심하는거야 뭐야!”라고
판단한 것은 시비를 일으켜 괴로움의 원인이 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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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상은 있는 그대로의 법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대부분 있는 그대로의 사실인 법을 보지 않고
나의 견해로 좋아하고 싫어하는 분별을 일으켜 괴로움을 자초합니다.
나의 이런 판단이 괴로움을 일으키는 원인입니다.
이런 판단은 감정을 불러 일으켜서 대상이 가지고 있는
진실을 알 수가 없게 만들어 이중의 어리석음을 겪게 만듭니다.
한마디로 “섣부른 판단은 괴로움을 자초하는 것”입니다.
염불행자는 항상 부처님을 생각하고 부처님을 부르며
‘어떤 대상을 보고 판단하는 자신의 습관’을 알아차림 합니다.
이렇게 자신의 습관을 ‘알아차림’하면
어떤 대상을 보고 판단하는 자신의 습관을 버리게 됩니다.
그러면 괴로움이 생기지 않습니다.
개운선원 정토사 정인합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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