숭산 큰스님께 한 제자가 여쭈었다.
"업에 대해 사람들이 이야기하는 걸 종종 듣게 됩니다. 그게 공덕을 뜻하나요?
스님들께 시주하고 사찰과 불탑을 건립하며, 염불 등의 수행을 통해 공덕을 쌓을 수
있다고 하는데 공덕은 무엇이고 또 업은 무엇입니까?"
큰스님께서 대답해 주셨다.
"오래 전 중국 양나라 시절, 한 황제가 국사를 궁궐로 초대해 물었어.
'짐은 왕이오. 왕으로 태어나기 전 짐의 업은 어떠했소?'
국사가 황제의 마음을 들여다보더니 말문을 열어,
'폐하께서는 전생에 가난한 부모님을 두셨습니다. 집안 형편이 군색했던지라
매일 산에서 땔감을 해다가 마을에 내다 팔았고, 그렇게 마련한 돈으로 병들고
연로하신 부모님을 봉양했지요. 하루도 거르지 않으셨어요.
폐하께서는 산과 숲 속에서만 머무르셔서 마음이 매우 맑으셨어요.
폐하께서 다니시던 길 중턱에 동굴이 하나 있었는데, 그 동굴 앞에는 석불이 있었습니다.
석불을 지나칠 때마다 폐하께서는 걸음을 멈추고 불상에 절을 올리셨습니다
. 땔감이 많아 무거운 날에도 예외 없이 지게를 내려놓고
공손히 절을 올리고 나서야 가던 길을 재촉하셨지요.
하루는 땔나무를 하여 산에서 내려오는 중 푹우가 쏟아지기 시작했어요.
동굴이 있는 지점에 다다랐을 때 폐하께서는 불상이 차가운 비 속에 젖고 있는
모습을 보시게 되었습니다. 이에 안타가워하며 '부처님을 어떻게 모셔야 할까?'
하고 고민하셨습니다. 그러고 나서 불상이 젖지 않도록 쓰고 계시던 커다란
모자를 벗어 불상에 씌워 드렸어요. 그 다음 날, 폐하께서는 눈이나, 비, 바람
등으로부터 불상을 보호할 수 있게 조그만 오두막을 지으셨습니다.
이를 통해 폐하께서는 엄청난 공덕을 지으셨어요. 남을 돕고자 하는 마음을
여실히 보여주는 행동이었기 때문이지요. 몇 년 후 폐하께서는 서거하셨고
이번 생에 이렇게 중국 황제로 태어나셨습니다. 그렇게 때문에
이런 마음을 지니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국사가 이렇게 말했어.
국사의 말이 끝나고 나니 황제가 빙그레 웃었어. 아주 기뻤던 거지.
황제 옆에 황후가 앉아서 이 이야기를 듣고 있었어. 황제의 복의 어디서 비롯되었는지를 듣다 보니
시샘이 났던 거야. 자신도 어떤 공덕으로 높은 지위에 오르게 되었는지 궁금하기도 하고
그래서 황후가 국사에게 물었어. '국사님, 제 전생의 업은 어떠하였습니까?'
국사가 잠시 주저하더니 '말씀 드릴 수 없습니다.' 이랬거든. '왜입니까?' 알고 싶습니다!'
'전생이 무척 해괴하여 말씀 드릴 수 없습니다.'
'아니 되옵니다. 전생에 대해 알고 싶으니 말씀해 주세요!'
'말씀 드릴 수 없습니다.' 그래도 황후는 뜻을 굽히지 않았어.
'
어떤 내용이라도 괜찮습니다.' 잠깐 고민하더니 국사가 이렇게 말했지.
'좋습니다. 말씀드리겠습니다. 허나 언짢으시더라도 화를 내시면 안됩니다.'
황후가 '네,하지만 빠짐없이 말씀하셔야 합니다.'하고 말했어.
'전생에 황후께서는 율원앞마당에 사는 벌레였습니다.
이 벌레는 가끔씩 땅 위로 머리를 내밀어 절에서 들리는 염불과 법고와 범종 소리를 들었어요.
그 절에는 도선 율사라고하는 명망 높은 스님이 계셨습니다.
평생 동안 스님은 악행이라고는 단 한 번도 짓지 않았고 늘 바른 행을 실천했어요.
어느 날, 도선 스님이 큰 낫으로 절 앞마당의 풀을 베고 있었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법고가 울리기 시작했고, 벌레는 법고 소리를 들으려고 고개를 내밀었지요.
그 순간 도선 스님이 들고 있던 낫이 획 하고 지나가면서 벌레의 머리를 베었습니다.
이를 본 스님을 살생을 했다는 사실에 자신에게 화가 났습니다.
스님은 바로 절을 한 후 나무아미타불을 일곱 전 독송했어요.
그 공덕으로 벌레는 황후가 되었습니다.'
'
내가 벌레였다니요? 말도 안 됩니다! 거짓말이예요!'
'못 믿으시겠다면 스스로 알아보시는 게 어떠신지요?' 국사가 말했어.
'어떻게 알 수 있나요?' '열심히 참선을 하시면 전생의 업을 직접 보실 수 있게 됩니다.'
황후는 화가 잔뜩 나서 국사가 틀렸다는 걸 증명하고 굴욕을 씻기 위해 참선을 하겠다고
마음을 먹었어. 그래서 매일 일찍 일어나 빠지지 않고 참선을 했어. 아주 어려운 수행이었지.
어느 날 아침, 황후의 마음이 확 열려 업이 뚜렷하게 보이는 거야.
국사의 이야기가 거짓이 아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지. 황후가 속으로 생각했거든.
'난 전생에 벌레였어. 매일 범종과 법고 소리를 듣고 스님들의 염불에 귀를 기울였어.
그래, 어느 날 도선 율사께서 낫으로 나를 베었고 나를 위해 나무아미타불을 일곱번
독송하셨지. 아주 작은 공덕이었지만 그 덕에 내가 이생에서 황후가 된 거야.'
이렇게 보듯 인과법은 한 치도 어긋나지 않아. 이 자리에 있는 대중은 모두 전생에 열심히 수행한 거야.
그래서 오늘 여기에 있는 거라고. 조건이나, 정해진 상황이나, 문제에 집착하지 않고 꾸준히 정진하면
모두가 깨달아 대보살이 되고, 중생을 고통에서 구제할 수 있게 돼.
이것이 바로 공덕의 본성인데, 때로는 이를 업이라고 불러. 개에게는 개의 업이 있고,
고양이에게는 고양이의 업이 있어.뱀은 뱀의 업을, 사람은 사람의 업을 가지고 있어.
동물은 자기의 업만을 알아. 자기의 할 일만 안다고. 다른 종이 뭐하는 지에는 관심이 없어.
개는 '멍멍' 하고 짖지 '야옹 야옹' 하고 짖지 않아.
개는 고양이처럼 행동하지 않고 고양이도 개처럼 행동하지 않아.
그러나 인간은 생각을 하기 때문에 많은 업을 짓고 살아. 어떤 업은 굉장히 복잡해.
이렇게 업에 끌려 다니니 자기 할 일이 뭔지도 모르고 돈이나 명예나 권력을 얻겠다고
서로 싸우고 죽이고 하지. 먹으려고 혹은 재미 삼아 동물을 죽이고 환경을 오염시켜.
인간은 '내' 가 없는 자리, 참된 본성으로 돌아가야 해. '내' 가 없는 자리는 우주와
내가 둘이 아닌 자리야. 이게 바로 세계 평화야. 업에는 올바른 업, 악업, 선업 이렇게 세 가지가 있어.
올바른 업은 보살의 업이야 . 선업은 좋은 습관이야. 악업은 나쁜 습관이야. 업은 마음의 작용,
마음의 방향이라고. 업의 본성을 깨달으면 업이 녹아. 그렇게 되면
자신의 업을 다른 사람을 돕는데 쓸수 있게 돼." 제자는 고개 숙여 감사의 인사를 드렸다.
-현각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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