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래 강변(죽은 아이가 저승에서 부모의 공양을 위해서 돌을 쌓아 탑을 만든다는
삼도내의 모래 강변, 쌓는 족족 아귀들은 이것을 부수며, 지장보살이 구해준다고 한다.
그래서 모래 강변이라 번역하였다)도 후의 불교 유산물이다. 이 모래밭은 지옥의 입구에 있는 것이다.
그리고 거기에는 죽은 자의 공양을 위해 조약돌로 탑을 쌓는다고 한다.
길가의 요소요소에는 그를 위한 사당 또는 조약돌 무더기가 놓여 있다. 나그네가 하나씩 쌓는다고 한다.
티벳의 어느 고개의 작은 돌무덤 또는 돌탑도 같은 의미를 갖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우리들의 모래 강변도 생자의 세계와 사자의 세계를 나타낸 교통의 요소인 것이다.
따라서 모래 강변은 어린 아이가 옥졸들에게 들볶이는 곳으로서 유명하다.
어린 아이가 무슨 죄를 범했겠느냐고 하고 의아스럽게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 이유로서 어린 아이는 어머니에 대해 그 태내에 있을 때부터 갖가지 고통과 노고를 주었던 것이다.
그런데도 그 은혜를 갚지 않고 죽었으며, 따라서 그 죽음으로 인해 부모에게 격심한 슬픔을 안겨 준 까닭이다.
그것은 죄가 될 수 없다고 번론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당연히 어린 아이의 양친이 먼저 그렇게 말할 것이다. '
은혜 같은 것은 갚지 않아도 좋아. 내가 슬퍼하고 있는 것은 네가 나쁘기 때문은 아니다'라고.
그러나 그것은 차치하고라도, 불교에서는 가령 어린 아이라 하더라도 깨닫지 못하는
한 미망한 존재임에는 변함이 없다. 왜냐하면 역시 육도에 윤회하고
지옥의 괴로움을 받지 않으면 안되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이러한 중생의 슬픔, 괴로움을 살펴 몇 억겁이라는
오랜 시간을 수행에 몰두하여 육도로 온 분이 지장보살이다.
육도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염불이 있고 아미타불이 있지 않느냐고.
실제, 아미타불이 이미 있는데 지장보살이 다시 나타난 것은 사족처럼 생각되기도 한다.
그러나 달리 생각해 보면 지장보살에게는 지장보살이 될 존재적인 이유가 있다.
즉 염불도 할 줄 모르고, 혹은 또 이를 알지 못하여 육도에 윤회하고 있는
중생을 위해 지장보살은 필요한 것이라고.
지장보살은 스스로 이 염부제에 와 육도 중생들 사이를 순회하여 준다.
육도 중에서도 특히 지옥의 세계, 그것도 유난히 어린아이가 괴로워하는 모래 강변에 와서 돌봐주는 것이다.
그리고 어린이들의 손을 잡고는 흡사 스님들이 절 마당에서 아이들과 공치기라도
하듯이 상냥하게 이야기하며 놀아주는 것이다. 이야말로 지옥 속의 부처님인 보살님이다.
-동봉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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