卍 스님 좋은 말씀

스님과 산신

갓바위 2022. 4. 26. 10:00

 

원규선사가 숭산 방오의 토굴에서 살 때, 일찍이 산신을 위해 계를 준 적이 있는데,

하루는 어떤 이인이 높은 관과 넓은 옷깃 차림으로 왔는데 따라온 사람이 아주 많고

걸음걸이가 느긋했으며 큰스님을 뵙겠다고 말했습니다.
 
스님이 그의 모습을 보니 매우 특이하기에, 그에게 물었습니다.

"어진이여 잘 오셨습니다. 무슨 일로 여기 오셨는지요?"

그가 말하기를, "스님께서는 어떻게 저를 아십니까?"
 
스님이 말하기를, "나는 부처와 중생을 평등하게 한눈에 봅니다.

그러니 어찌 분별하겠습니까?" 그가 말하기를, "저는 이 산의 산신입니다.

사람을 살리고 죽일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어찌 스님께서는 한눈에 저를 본다고 하십니까?"

스님이 말하기를, "나는 본래 태어나지 않았는데 당신이 어찌 죽일 수 있습니까?" 
 
산신이 머리를 조아리고 말했습니다. "저도 다른 신들에 비하면 총명하고 정직합니다만,

스님께서 광대한 지혜 말씀을 가지고 계실 줄 어찌 알았겠습니까?

바라건대 저에게 바른 계를 주셔서 저를 건져 주십시오."
 
스님은 곧 자리를 펴고 화로를 잡고, 책상을 바로 한 뒤에 말했습니다.

"당신에게 오계를 드리겠으니, 만약 봉지할 수 있으면 바로 '할 수 있다'고 대답하십시오.

할 수 없다면 '아니라오' 하고 말하십시오." 산신이 말했습니다. "삼가 가르침을 받겠습니다.
 
스님이 말하기를, "당신은 불음(사음)할 수 있습니까?"

대답하기를, "아내를 얻는 것도 해당됩니까?"

 

스님이 말하기를, "그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무절제한

욕망이 없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대답하기를, "할 수 있습니다."
 
스님이 말하기를, "당신은 훔치지 않을 수 있습니까?"

대답하기를, "저에게 뭐가 부족하다고 훔쳐 가지겠습니까?"

 

스님이 말하기를, "그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복을 지나치게 누리면서

베풀지 않아 착한 사람에게 화가 미치는 것을 말합니다."
대답하기를, "할 수 있습니다."

 
스님이 말히기를, "당신은 죽이지 않을 수 있습니까?"

대답하기를, "실제로 권한을 행사하면서 어찌 죽이지 않는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스님이 말하기를, "그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지나치게 죽이고, 실수로 죽이고,

의심해서 죽이고, 함부로 죽이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대답하기를, "할 수 있습니다."
 
스님이 말히기를, "당신은 거짓말하지 않을 수 있습니까?

대답하기를, "저는 정직합니다. 어찌 거짓말을 하겠습니까?"

스님이 말하기를, "그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이랬다 저랬다 변덕을 부리는 마음을 말합니다." 대답하기를, "할 수 있습니다

 

." 스님이 말하기를, "당신은 술을 마시고 취해서 쓰러지지 않을 수 있습니까?"

대답하기를,"할 수 있습니다." "이상이 부처님의 계율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산신이 말했습니다. "저는 신통이 부처님에 버금갑니다."
스님이 말하기를, "당신의 신통이 열 가지인데 다섯 가지는 할 수 있어도 다섯 가지는 못합니다.

부처님의 신통도 열 가지인데 일곱 가지는 하실 수 있고 세 가지는 못 하십니다."
 
산신이 숙연히 자리를 피하여 무릎을 꿇고 아뢰어 말하기를,

"그것이 무엇인지 들을 수 있겠습니까?" 하니, 스님이 말하기를,
 
"당신은 상제의 동쪽 하늘에 이르러 서쪽 하늘의 칠요(해와 달과 목화토금수의 각 별)

까지 갈 수 있습니까?" 산신이 대답하기를, "못 갑니다."
 
스님이 말하기를, "당신은 지기(대지를 관장하는 신)로 부터 산하대지를 빼앗아

오악(높은 산)을 녹여 바다를 묶을 수 있습니까?" 대답하기를, "못합니다."

스님이 말하기를, "이것이 5불능이라는 것입니다.
 
부처님은 일체의 상을 비게 하고 만법의 지혜를 이루시지만,

정해진 업을 소멸하지는 못 하십니다.

 

부처님은 온갖 중생의 성품을 아시고 억겁의 일을

꿰뚫어 아시지만, 인연 없는 중생을 제도하지 못하십니다.

 

부처님은 한량없는 중생을 제도하시지만,

중생계를 다 없애지는 못하십니다. 이것이 3불능이라는 것입니다.
 
산신이 말하기를, "스님께서는 꼭 저에게 세간사를 위해

저의 작은 신공을 펼치도록 시켜 주십시오.
 
그리하여 이미 발심한 자, 처음 발심한 자, 아직 발심하지 않은 자, 신심이 없는 자,

신심이 확고한 자 등 다섯 부류의 사람이 저의 신통의 자취를 보고서 부처가 있고 신이 있고,

할 수 있는 자가 있고, 할 수 없는 자가 있고, 자연스러운 자가 있고,

자연스럽지 않은 자가 있다는 것을 알게 해 주십시오"
 
스님이 말하기를, "그러지 마십시오, 그러지 마십시오."

산신이 말하기를, "부처님께서도 신들로 하여금 법을 보호하게 하셨는데,

스님께서는 어찌 부처님의 법을 거역하십니까? 부디 마음대로 할 수 있도록 해 주십시오."
 
 스님은 부득이 이렇게 말했습니다. "동암사의 바람막이는 풀만 우거지고

나무가 없는데, 북쪽 산봉우리에는 나무가 있습니다.

뒤쪽이 바람막이 역할을 못 하니, 당신이 북쪽의 나무들을 동쪽 고갯마루로 옮겨 줄 수 있습니까?"
 
산신이 말하기를, 이미 분부를 받았습니다.

그러나 밤중에는 틀림없이 좀 시끄러울 테니, 스님께서는 놀라지 마십시오."

그리고는 작별 인사를 하고 가는데, 스님이 문밖에서 배웅하면서 보니

 

그를 호위하는 무리가 길게 줄을 이은 것이 왕의 행차 같고, 산 안개가 분주히 피어 올라

그 사이에 뒤섞이는데, 당번을 장식처럼 휘날리며 공중으로 솟아 올라 서서히 사라졌습니다.
 
 그날 저녁 과연 폭풍이 몰아치고 뇌성이 진동하며, 구름발이 내달리고 번개가 치니,

건불이 흔들리고 잠자던 새들이 시끄럽게 우짖었습니다.

스님은 대중에게 말하기를, '겁내지 마라, 겁내지 마라,

산신이 나와 약속한 것이 있느니라." 하였습니다.
 
다음 날 아침 화창하게 날이 개어 보니, 북쪽 바위산의 소나무, 전나무들이

모두 동쪽 고갯마루로 옮겨져 빽빽하게 심어져 있었습니다. 
 
 이것을 볼 때, 산신이 비록 신통이 있으나 오히려 도덕이 있는 사람에 미치지 못함을

알 수 있고, 이것이 바로 덕이 두터우면 귀신이 공경한다는 것입니다.
 
도덕이 없는 사람은 귀신의 부림을 당하게 되고, 그들의 해코지를 받게 됩니다.

도덕이 있으려면 바로 마음을 밝혀 성품을 보아야 합니다.
그러면 자연히 귀신도 감동시킬 수 있게 됩니다. 

 
옛날부터 선사나 대덕 스님들에게는 하늘이 놀라고 땅이 울렸으며,

흰 사슴이 꽃을 물어오고 푸른 원숭이가 과실을 따다 바쳤고, 천마외도와
여러 신선, 귀신들이 모두 와서 귀의했습니다.   

-허운스님-

 
허운스님은 1840년 중국 복건 천주에서 태어났다. 19세 때 복주의

고산 용천사로 출가하여, 다음 해 묘련화상으로부터 구족계를 받았다.
 
44세 때 문수보살을 친견하고, 56세 때 양주 고민사에서 12주 간의 타칠 기간 중

8주 3일째 , 뜨거운 찻물 때문에 떨어뜨린 잔이 깨지는 소리에 의심이 뿌리를 모두 끊었다
 
. 범망경을 널리 강의했던 스님은 종문의 심인을 깊이 깨달아 외세의 침략과

공산 정권의 억압 하에서도 승도를 수호하고, 사찰과 불당의 파괴를 막고,

수십 개소의 가람을 복원하였다.

 

또한 많은 사람들에게 계를 주고 불문에 귀의시켰던 스님은

세수 120세, 승랍 101세로 1959년 길상와 자세로 입적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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