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조, 그 사랑 나누어 드림
"할머니가 돌아가신 것 같아요······." 전화를 타고 들려오는 아들아이
목소리는 떨렸다. 천식을 앓고 계셨지만,
구준히 약을 잘 드셔서 별 탈 없이 사신다고 여겼는데······
그만, 어머니 임종을 모시지 못했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이십 년, "연세가 드셨으니 맘에 드는 자식 집으로 가시죠."
하고 모시려 할 때마다 "내 몸 움직이기 힘들면 어련히 알아서 큰아들 집으로
갈 테니 염려 마라."며 손사레를 치셨던 어머니. 여든여섯 해 삶을
마감하고 모든 인연을 거두어 맏손자 품에 안겨 눈을 감으셨다.
번거로움을 싫어하는 당신 성품에 따라, 가까운 동무 몇 분에게만
부고를 알렸는데······, 많은 분들이 꽃을 보내주시고, 빈소를 찾아 주시고,
장지까지 오셔서 몸과 마음을 나눠 주신 덕분에 장례를 여법하게 치렀다.
다니는 절에 주석하시는 강석 스님게서 손수 가져오신 향과 초를 밝혀
시다림을 해주시고, 이튿날도 어려운 걸음을 해, 발인은 물론 화장장을
거쳐 장지까지 오셔서 어머니 가시는 길을 밝혀주셨다.
또한 재를 올릴 때마다 여러 스님과 불자들이 함게 동참해 마음을
나눠 주신다. 둘레 분들께 참으로 분에 넘치는 은혜를 입고 있다.
고맙고 고마운 일이다. 어떻게 갚아야 할지······.
제겐 당신이 있습니다. / 모자람을 채워 주는 분. /
당신 사랑이 쓰러지는 저를 일으킵니다. / 제게 용기, 위로, 소망을 주는 분. /
제가 전생에 무슨 덕을 쌓았는지, / 제 곁에 당신을 두신 부처님, 고맙습니다. /
저를 사랑하는 이가 이 세상에 존재하는 것 / 그것이 제게 가장 큰 힘입니다.
혼사나 장례처럼 큰일을 치를 때 함께 몸과 마음을 나누는 '부조'는
'상부상조相扶相助'를 줄인 말로 '도울 부扶'는 '돕다 · 떠받치다 ·
곁'이란 뜻이, '도울 조助'는 구원 · 유익하다'는 뜻이 담겨 있다.
부조는 '품앗이'와 같은 말이다. 사전을 찾아보면 품앗이는
'노력+교환'이라고 쓰여 있다. 하지만 품앗이는 '가슴(품)+나눔(앗이)'이다.
품앗이는 혼사나 장례뿐만 아니라, 농사짓거나 집을 지을 때처럼
손이 모자라거나 크고 작은 어려움을 겪을 때 둘레 사람들끼리 서로
품을 나누는 일이다. 곁을 지켜주고 돌봐주는 사랑 나누어 드림이다.
지난날엔 개인끼리 서로 품을 나누는 품앗이뿐만 아니라. 논매기 · 김매기 ·
길쌈을 비롯한 생산을 여럿이 두루 함게 품을 나누는
'두레'라는 아름다은 마을 공동체도 있었다.
우리는 은혜를 입거나 신세를 졌을 때 흔히 "○○님 덕분입니다."
하는 이사를 건넨다. 덕분德分. 덕을 나눈다는 말로 품앗이와
다를 바 없는 사랑 나누어 드림이다.
'음복飮福'도 아름다운 나눔이다. '마실음飮'은 '잔치'를 '복福'은 '복 내리다 ·
돕다'는 뜻을 지닌 말로 제사나 차례 또는 고사에 쓴 음식을
마을 사람들과 두루 나누어 드리는 고운 우리네 풍속이다.
나눔 가운데 '십시일반十匙一飯'도 있다. 밥 열 숟가락을 모아 한 사람
끼니를 마련한다는 말로 여럿이 제 몫을 조금씩 덜어 나눈다는 말이다.
우리 모두가 어렵사리 살던 때, 집집마다 부뚜막에 조그만 항아리를 놔두었다.
우리 어머니들은 그 항아리에다 밥을 짓거나 죽을 쑬 때 곡식을 한 숟가락씩
덜어내 모았다가, 어려운 이웃과 나누거나 스님들이 오시면 시주물로 내어드렸다.
제 먹을 것을 덜어내 다른 이에게 나눔이다.
요즘처럼 차고 넘치는 가운데 하는 나눔이 아니라, 모자라고 모자라는 가운데
서로 아끼는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정감 어린 나누어 드림이다. 이 나눔을
지방에 따라서 '절미節米'라고 부르기도 하고 '좀도리'라고도 불렀다.
품앗이 · 음복· 좀도리는 우리를 어우렁더우렁 어깨동무로 만드는 나누어
드림으로, 우리가 앞으로도 고이 지키고 이어나가야 할 아름다운 풍속이다.
달라이 라마는 이런 말씀을 하셨다.
"공격성을 가진 포유류들은 서로 끌어안을 수 없다.
하지만 사람 몸은 본디 자비롭고 온화한 성품에 맞게 만들어졌다.
사람 손 또한 때리기보다 껴안기 좋도록 만들어졌다.
우리가 공격성을 띤 존재라면 아름다운 손가락이 필요 없다."
우리가 누군가를 돕는다는 생각을 하면, 상대가 나보다 모자란다고
생각하기 쉽다. 도움을 받는 사람도 돕는 사람이 가진 힘을 떠올리면 주눅이 들
게 마련이다. 그러나 상부상조, 서로 힘을 나눠 드나든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내 모자라고 약함이 상대방 약함과 만나 서로 떠받히고 부추켜 함께 나아가게
된다. 내가 네게 들고 네가 내게 드는 드나듦. 나눔은 정情이 듬뿍 담긴
껴안음, 사람다움이다. 우리를 순수한 본디 모습으로 되돌리는 '얼' 살림이다.
"제 어머니 가시는 길, 따뜻한 품을 나눠 꽃비를 내려주신 고운님들 고맙습니다.
여러분 덕분에 큰일을 여법하게 잘 치렀습니다."
숨결 변택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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