卍 불교 교리 강좌

자기의 행위는 자기가 책임진다

갓바위 2023. 10. 15. 09:23

 

자기의 행위는 자기가 책임진다

업이 다 나쁜 것은 아니며 좋은 업, 선업善業도 있습니다.

우리가 쓴 열매(苦果)를 맛보고 싶다거나 단 열매(樂果)를

맛보고 싶다면 어떤 업을 심었나를 보면 결정되는 것입니다.

 

인과업보의 사상은 일반적으로 인도의 철학사상계에 널리 퍼져 있는

틀별한 가르침이며, 또한 불교 사상사에 빛나는 위대한 가르침입니다.

그것은 업의 작용이 우리의 인생을 광명의 앞날로 열 수 있고,

우리에게 무한한 희망을 주기 때문입이다.

 

혹 어떤 사람은 "앞에서 업은 모여져 고통스러운 장애가 된다고 말씀하지

않았습니까. 그런데 이번에는 어째서 업은 밝은 빛이고 희망이라고 말하십니까.

서로 모순되지 않습니까?" 하고 반문할 수도 있겠지만, 만약 여러분께서 진정으

로 업의 작용과 가르침을 통찰할 수만 있다면 이 말을 의심하지 않을 것입니다.

 

업의 진정한 뜻은 '자기의 행위는 자기가 책임진다'입니다. 인류 사상사에

철학자들이나 종교가들로서도 해결하지 못한 어려운 문제가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우주와 인생의 기원에 대한 본체本體로의 문제로 원소설元素說,

우연율偶然律, 존우설尊祐說등 각가지의 학설이 나와 있습니다.

 

예를 들면 서방의 기독교, 천주교는 세계의 형성을 하나남의 창조로 돌리며,

인도의 바라문교에서도 천지창조설을 주장하여 그 근원을 찾으려 시도하여

모든 일체를 신의 힘으로 주관한다는 타율론他律論을 세웠습니다.

 

불교는 인류의 운명을 진정으로 주재하고 결정하는 것은 자기 자신이지 다른

것이 아님을 강조합니다. 하나님도 인과 업보를 벗어나게 할 수는 없습니다.

불교에서는 업보業報는 자기의 힘으로 창조하는 것이지

신의 힘으로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고 말합니다.

 

인생이 행복한가 고통스러운가, 앞날이 어두운가 환한가는 신이 우리에게

내려주는 것이 아닙니다. 자신이 얼마나 노력했나로 결정됩니다.

좋은 과보는 우리가 좋은 일을 하고 좋은 인연을 심어서 얻는 것입니다.

나쁜 과보 또한 우리 자신이 나쯘 일을 하고 나쁜 인연을 심어 초래된 것입니다.

 

착한 일을 행하거나 악한 일을 행하는 것 모두가 자기 자신이 저지르는

것이지 다른 이들이 우리를 조종할 수 없습니다. 이러므로 불교는 자유의식을 존중

하며 자기가 지은 것은 자신이 받음을 중히 여기는 자율론自律論의 종교입니다.

후스(胡適,1891~1962) 선생은 "어떻게 거둬들일 것인가,

먼저 그렇게 재배해야 한다"고 하였습니다.

업은 마치 씨앗과도 같아서 우리가 어떠하게 거둬들이고 싶으면,

반드시 그러한 씨앗을 심어 키워야 합니다.

 

우리가 어떠한 업을 지어내면 그 과보를 받게 됩니다.

업의 과보는 기회가 균등하며 조금의 틀림도 없는 것입니다. 업보는

당신의 지위가 높고 권세가 크다 해서 면제되거나 받지 않는 것이 아닙니다.

 

"법률 앞에 만인은 평등하다"는 말이 있습니다. 업보 앞에서는 모두가

평등하고 신분, 성별, 귀천, 빈부를 막론하고 업보를 받게 됩니다.

업보는 설사 부부지간, 부모와 자식, 스승과 제자, 친구라 할지라도

누구도 대신할 수 없습니다. 모두 자기가 받아들여야 합니다.

 

업보는 우리 행위의 결과를 분명하게 기록하는데

그 정확도가 오늘날의 전자계산기, 컴퓨터로도 비교될 수 없습니다.

가령 사람들 모두 인과 업보의 관념이 있다면 도덕의식이 틀림없이 높아질 수

있어 사회의 범죄 행위가 자연히 감소되니 복되고 즐거운 사회가 건립됩니다.

 

그리하여 업보로 말하면 오늘날 사회의 얼룩진 인심을 정화시키고 도덕과

윤리의 수준을 끌어올리는 방면에 있어서 아주 중요한 일을 해낼 수 있습니다.

 

어떤 사람이 혹시 "자기의 업을 자신이 받는다고 말씀하셨는데

그렇지만 어떤 사람은 나쁜 일을 많이 했는데 하늘은 그를 벌하시지 않고

도리어 그가 부귀영화를 누리도록 하는가 하면, 어떤 사람은 좋은 일만

하는데도 불보살님이 그를 보살펴주지 않아 그 곤란을 당하게 하는데, 이러한

경우에는 인과응보란 도대체 어디에 있습니까? 하고 반문할 수도 있겠습니다.

 

사실 이것이 바로 인과 업보입니다. 왜일까요? 인과 업보는 마치 식물을

심어 기르는 것과 같아 어떤 식물은 일 년이면 나뭇가지가 무성해집니다.

어떤 것은 이 년이 되어야 새싹을 틔우기 시작하고 심지어 일부

다년생인 것들은 몇 년이 되어도 한 점의 푸른기를 볼 수 없습니다.

 

또한 곡물을 심는 것과도 비교할 수 있습니다.

어떤 것은 봄에 심어서 가을에 알알이 영글은 과실을 거둬들릴 수 있으며,

어떤 것은 금년에 씨앗을 뿌려 내년이 되어야 거둬들일 수 있습니다.

심지어 몇 년을 잘 보살펴 길러야만 열매를 맺기도 합니다.

 

업보도 마찬가지로 어떤 것은 금생에 바로 보報를 받기도 하고 어떤 것은

내생來生에, 심지어 여러 생을 거친 이후에 비로소 업보를 받기도 합니다. 업보는

단지 빠르고 늦음의 다름이 있을 분이지 인과응보의 존재를 부정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불교에서는 "선善에는 선보善報가 있고, 악惡에는 악보惡報가 있다,

보가 없다 근심 마라. 단지 그때가 안 됐을 뿐이다"라고 말합니다.

인과응보는 절대로 공정한 것이고 단지 시간상으로 빠르고 늦음이 있을

뿐으로 이것이 바로 삼세인과三世因果의 도리입니다.

보통중생 보통부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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