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은 형상이 없다
보조국사
옛 선사의 말씀에 "마음이 묘한 신통과 작용을 일으키는 것은 마치 일상
생활에서 항상 하고 있는 물을 긷고, 나무를 운반하는 것과 같다."고 하였다.
진리에 들어가는 길은 많지만 그대에게 한 가지 길을
가리켜 <근원의 마음>으로 들어가게 하리라.
"그대는 지금 까마귀 우는소리와 까치 지저귀는 소리를 듣는가?"
"예, 듣습니다."
"그대는 그 소리를 듣고 있는 자신의 마음을 돌이켜 들어보라.
과연 그곳에도 정말 많은 소리가 있는가?"
"저의 마음속에는 어떤 소리도 어떤 분별도 얻을 수가 없습니다."
"참으로 기특하다. 이것이 바로 관세음보살이 진리에 들어간 문이다.
내가 다시 그대에게 묻겠다.
그대가 말하기를 거기에는 일체의 소리와 일체의 분별이 없다고 하였으니,
그렇다면 그것은 허공과 같은 것이 아니겠는가?"
"본래 마음은 공하면서도, 공하지 않아서 환히 밝아 어둡지 않습니다."
"그럼, 어떤 것이 공하지 않은 것의 본체인가?"
"모양과 형상이 없으므로 말로 표현할 수 없습니다."
"이것이 모든 부처님과 조사스님들의 생명이니 다시는 의심하지 말라."
모양이 없는데 크고 작은 대소가 있겠으며, 크고 작음이 없는데
어디 한계가 있겠으며, 한계가 없으므로 안과 밖, 즉 내외가 없고,
안팎이 없으므로 멀고 가까움, 즉 근원도 없으며,
멀고 가까움이 없기 때문에 저것과 이것, 즉 피차의 대상도 없다.
피차가 없으므로 가고 오는 왕래도 없고,
가고 옴이 없으므로 나고 죽는 생사도 없다.
생사가 없으므로 옛날과 지금의 시간관념이 있을 수 없고,
옛날과 지금이 없으므로 어리석음과 깨달음도 없다.
어리석음과 깨달음이 없기 때문에 범부 중생과 성인도 없으며,
범부와 성인이 없으므로 더럽고 깨끗함도 없으며, 더럽고 깨끗함이 없으므로
옳고 그름인 시비도 없고, 시비가 없으므로 모든 이름과 말을 붙일 수도 없다.
모두가 다 본래 없으니 모든 감각기관과 감각의 대상과
명령된 생각 또는 온갖 모양과 이름과 말이 있을 수 없다.
그러니 이것이 어찌 본래부터 비고 고요하며,
본래부터 아무 것도 없는 것이 아니겠는가.
그러나 모든 사물과 세계가 공한 곳에 신령스럽게 아는 영지는 어둡지
않고 밝아서 생명이 없는 무정물과는 달라서 성품이 스스로 신령스럽게 안다.
이것이 바로 그대의 공적하고 신령스럽게 아는 영지의 청정한 마음의 본체이다.
이 청정하고 공적한 마음은 삼세의 모든 부처님의 깨끗하고
밝은 마음이며, 또한 중생의 본바탕인 깨달은 성품이다.
이것을 깨달아 지키는 사람은 한결같은 진리의 자리에 앉아
움직이지 않고 해탈할 것이며, 이것을 모르고 등지는 사람은
오랫동안 육도에 나아가 윤회의 고통을 받을 것이다.
미혹한 어리석음과 깨달음은 다르지만 그 근원은 하나이다.
그러므로 '법이란 중생의 마음이다'라고 한 것이다. 이 공적한 마음은
성인이라고 해서 더하지도 않고 보통 사람이라고 해서 덜하지도 않다.
그러므로 "성인의 지혜에 있어서도 더 빛나지 않고,
보통 사람의 마음에 숨어 있어도 어둡지 않다."라고 한 것이다.
그러면 부처님과 조사가 보통 사람과 무엇이 다르겠는가?
보통 사람과 다른 점은 스스로 자신의 마음을 잘 보호하고 살필 수 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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