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몸 받은 지금
누구나 다 부처가 될 수 있는 성품이 있습니다.
그것은 비유를 할 것 같으면 금반지, 금시계, 금목걸이와 같은 것이
처음에는 금광에서부터 나왔습니다. 금광의 금은 중생과 같습니다.
번뇌, 망상, 이 생각, 저 생각, 과거에 지은
팔만 사천 업장이 거기에는 다 섞여 있는 겁니다.
그것을 제련하고 달련해서 99% 금이 되는 것이 부처님입니다.
그러면 우리도 금과 같이 제련 기간을 거치면 금이 될 수 있겠지요.
염불을 하고 참선을 하고 경을 보고 하는 것은 정신이 일치가 안 되기
때문에 하는 것입니다.정신 일치하는 것이 곧 공부입니다.
관세음보살을 부를 때도 일심칭명하고, 화두를 할 때도 일념삼매,
일심삼매, 일행삼매, 한 생각 다른 잡념이 들어오지 않는 것.
그래서 참선하는 사람은 칠일칠야, 일주일 밤낮 한 생각만
연속이 된다고 한다면 대도를 성취할 수 있다고 합니다
. ‘이 뭐꼬’ 한 생각만 있어야지 다른 생각이 들어오면 안 됩니다.
망상이 들어오면 안 되고 졸아도 안 됩니다.
물론 온갖 생각이 다 일어납니다.
간절한 신심과 대 분심과 대 원력과 대 의심이 없으면 화두 일심이 안 되죠.
기도하는 사람들도 법당에 앉아서 관세음보살을 부르면서도 생각은 아들 집에
갔다가 딸 집에 갔다하며 여러 생각이 일어난다면 법당에 있는 것이
아니잖아요. 생각이 딱 없어져서 100% 순금이 되는 상태가 공부입니다.
불교가 어려운 것이 하나도 없어요.
내 마음 닦는 것인데, 이 이상 쉬운 것이 어디에 있습니까.
눈이 보는 것이 아니잖아요.
귀가 듣는 것이 아니잖아요. 입이 말하는 것이 아니잖아요.
우리의 본래 마음자리 이것이 보기도 하고 듣기도 하고 말하기도 하고
생각하기도 하고 행복을 느끼기도 합니다.
내 몸뚱이는 어디에서 나온 것이냐. 이 우주를 조물주가 창조했다고 합니다.
조물주는 어디에서 나왔습니까. 인간의 마음에서 조물주가 나왔습니다.
마음이 떠나면 몸뚱이는 송장이라고 합니다.
마음이 있으니까 몸뚱이는 사람이지요.
죽었다는 것은 마음자리가 여기에서 떠났다는 겁니다.
내 몸뚱이도 마음에서 나왔을 뿐만 아니라
이 세계도 우주도 내 마음이 없으면 몸도 없고 우주도 없는 겁니다.
주관과 객관이 전부 다 마음에서 창조 된 것입니다.
지옥, 아귀, 축생, 인간, 천상, 수라가 전부 마음에서 만들어 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화엄경에서 일체가 다 마음에서 지어졌다고 했던 것입니다.
마음자리, 이것이 우리의 근본 자리입니다. 이 자리를 알아야 됩니다.
인간 몸 받았을 때 정진해야 옛날 당나라 때 구지 선사라는 분이 계셨어요.
어느 날 갓을 쓴 비구니 스님이 나타나서 선사 주위를 세 바퀴 돌고
가는 모습에 의문이 풀리지 않을 때 천룡 화상이 찾아왔습니다.
구지 선사가 비구니의 행동을 흉내 내자 천룡 화상이 내민 손가락을 보고
선사는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그 다음부터 구지 선사의
설법은 누가 법을 묻든지 간에 손가락 법문입니다.
그런데 구지 선사가 외출한 사이, 한 사미가 선사를 찾아오는 납자들에게
“우리 스님은 누가 오든지 손가락을 내미는 것밖에 없습니다”라며
손가락을 내미는 법문을 따라했다는 얘기를 듣고 그 사미를 불렀습니다.
아무개야. 네. 어떤 것이 도냐. 손가락을 내 놓는 겁니다.
그 때 그 손가락을 잡고 싹둑 잘라버렸습니다.
이 사미가 놀라서 울며 도망가는데 구지 선사가 아무개야 하고 불렀습니다.
그러니까 이 아무개가 돌아봅니다.
그 때 구지 선사가 어떤 것이 도냐 하고 물었습니다.
그랬더니 손가락을 내어 놓는데 손가락이 없어진 데서 도를 깨쳤습니다.
그래서 구지 선사는 천룡 화상이 손가락을 내어 놓는 데서 도를 깨쳤고,
이 제자는 손가락이 없는 데서 도를 깨쳤다는 겁니다.
도라고 하는 것이 희한하잖아요.
있는 데도 깨치고 없는 데도 깨치니까요.
그래서 도는 있는 데 속하지도 않고 없는 데 속하지도 않으면서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한 것입니다.
부처님의 교리를 보면 처음에는 삼라만상 전부 있다고 했는데 사람들이
전부 있는 데 집착하거든요.있다고 집착하니까 없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없다고 생각하니까 분명히 생로병사가 있단 말입니다.
그래서 있는 것도 아니고 없는 것도 아니면서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한 것이
바로 중도의 이치입니다. 구지 선사의 깨침이라는 것, 상좌의
깨침이라는 것이 모두 진리와 부합되어서 이뤄지는 겁니다.
그러니까 여러분들이 열심히 노력을 해야 됩니다.
의식주 생활에도 바쁘겠지만 한번 죽게 되면 다시 인간의 몸을 받을 수 있을지
없을 지도 모르거든요. 육도 중생 가운데 인간 몸을 받기가 어렵다고 합니다.
천국이 좋기는 하지만 즐거운 곳에만 있으면 공부할 생각이 일어나지 않습니다.
이것은 잘 사는 사람이 절에 안 가는 것과 같습니다. 인간이라는 것이
고락이 상반이라, 인간의 몸을 받았을 때 공부할 수 있다고 합니다.
인간의 몸을 받더라도 정법을 만나기가 어렵습니다.
불교만큼 과학적인 종교가 없습니다.
유일신 종교는 계속 전쟁을 하고 싸워야 됩니다.
다른 신은 인정할 수 없기 때문에 역사적으로 계속 전쟁을 하는 겁니다.
불교는 모든 것을 포용하는 종교입니다.
인간의 몸을 받고 정법을 만난 여러분, 기도를 하든지 경을 보든지
참선을 하든지 간절한 노력으로 모두 대도를 이룰 수 있기를 바랍니다.
- 원산 스님-
'卍 스님 좋은 말씀' 카테고리의 다른 글
영가도 중생이다 (2) | 2023.12.01 |
---|---|
세 가지 복전 (1) | 2023.11.30 |
작은 행복과 큰 행복 (2) | 2023.11.27 |
마음이 어디에 있나 (1) | 2023.11.26 |
불교와 불살생 (1) | 2023.11.2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