卍 불교 교리 강좌

창의력의 원천

갓바위 2024. 2. 4. 10:17

 

 

창의력의 원천

화엄의 법계연기

화엄사상의 핵심을 210자로 요약한 의상 스님의 〈법성게(法性揭〉를 보면

'일중일체다중일 일즉일체다즉일(一中一切多卽一)'이라는 구절이 있다.

 

문자 그대로 번역하면 "하나 속에 모든 것이 있고, 여럿 속에 하나가 있으며,

하나가 곧 모든 것이고 여럿이 그대로 하나다."가 되겠지만 그 참뜻을 되살려

다시 번역하면 "하나 속에 무한이 있고 무한 속에 하나가 있으며, 하나가

곧 무한이고 무한이 그대로 하나다.'가 될 것이다.

 

여기서 말하는 '여럿〔多〕' 역시 '무한(無限)'에 다름 아니다.

자구(字句)를 맞추기 위해서 '다(多)'라는 글자를 썼을 뿐이다.

'일중일체다중일'이라는 앞 구절에서는 하나와 무한이 서로 내포한다는

상입(相入)을 노래하고, '일즉일체다즉일'이라는 뒤 구절에서는

하나와 무한이 그대로 일치한다는상즉(相卽)을 노래한다.

 

하나와 무한은 상즉상입(相卽相入)한다. 하나 속에 무한이 있기도 하지만,

하나가 그대로 무한이기도 하며, 무한 속에 하나가 있으면서 무한이 그대로

하나이기도 하다. 우리가 체험하는 세상만사의 참모습에 대한 긍극적인

통찰이다. '법성게'의 법성은 존재〔法〕의 참 모습〔性〕을 의미한다.

 

이를 법계연기(法界緣起)라고 부른다.

참으로 오묘한 가르침으로 연기의 다양한 면모 가운데 정상을 점한다.

예를 들어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나는 '교수'이기도 하지만,

집에 가면 아이들의 '아빠'이기도 하고, 아내에게는 '남편'이 된다.

 

부모에게는 '아들'이며, 조카에게는 '삼촌'이고, 손자에게는 '할아버지'이지만

지나가던 행인은 그냥 '아저씨'라고 부른다.

아프리카 밀림에 버려져서 만난 사자가 볼 때는 군침을 돌게 하는

'고기 덩어리''이고 우리 집 부엌 바닥의 바퀴벌레가 볼 때는 위협적인

'괴물'이며 ······ 전쟁터에 동원되면 온 몸을 '무기'로 사용한다.

 

이 가운데 그 어떤 것도 나의 본래이름이 아니지만, 상황에 따라 이 모든 것이

내가 되기도 한다. 나는 교수이고, 아빠이고, 남편이고, 아들이고, 삼촌이고,

할아버지이고, 아저씨이고, 고기덩어리이고, 괴물이며, ······ 무기다.

 

나 '하나〔一〕'에 이 '모든 것〔一切〕'이 내재하며 나 '하나'는

이 모든 것이기도 하다. 일중일체(一中一切)이고 일즉일체(一卽一切)다.

'나'뿐만이 아니다. 이 세상의 모든 물건, 모든 사건, 모든 사태는 그 어떤 것이든

무한한 의미를 부여할 수 있고 무한한 용도를 갖는다.

 

책상 위에 놓인 '컵'에 꽃을 꽂으면 '화병'이 되고, 남을 향해 던지면

'무기'가 되며, 적당히 물을 넣어서 박자에 맞추어 두드리면 '악기'로 변신하고,

어린아이의 소변을 받는 '오줌통'으로 쓸 수도 있고, 미술관에 전시하면 '작품'이

되며,······ 엎어서 밀가루반죽에 찍으면 만두피 만드는 '기구'가 되기도 한다.

 

하나의 '컵'에 '화병', '무기', '악기', 오줌통', '작품', ······ '기구'의 가능성이

모두 내재한다. 하나 속에 무한한 용도가 들어있다. 일중일체이고 일즉일체다.

그런데 이 모두 연기(緣起)에 근거한 천(千)의 얼굴들이다.

 

하나의 물건, 하나의 사건, 하나의 사태에 무한한 가능성이 내재하지만,

특정 상황 속에서는 한 가지 의미만 발생한다.

'나'는 원래 '모든 것'이 될 수 있지만, '학생'에 대해서 '교수'일 뿐이고,

'다들'에 대해서 '아빠'일 뿐이다. 특수한 연기다.

 

이런 특수 연기들의 총체인 법계연기의 통찰이 심화될 때 우리는 '하나' 속에

내재하는 무한을 알게 되고, 어떤 상황에서든 무한 속에서 창의적인

'최선의 판단'을 고안할 수 있다. 법계연기는 '묘관찰(妙觀察)의

분별'인 창의적 판단의원천이다.

김성철 교수의 불교하는 사람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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