卍 불교 교리 강좌

무한을 담는 하나의 분별

갓바위 2024. 2. 6. 10:53

 

 

무한을 담는 하나의 분별

화엄적 정책

화엄의 법계연기에서 가르치듯이 '하나' 속에 무한이 담겨 있다.

예를 들어, 지금 내 눈 앞의 '화분'은 나에 대해서는 '정지'해있다.

그러나 지구가 쉬지 않고 자전하기에 지구 밖에서 질 좋은 망원경으로 화분을

본다면, 화분은 지구에 올라타서 큰 원을 그리며 '돌아가고' 있을 것이다.

 

또 지구는 자전과 동시에 태양의 주위를 공전하고 있기에 더 멀리서 보면

늘어진 용수철 같은 궤적을 그리면서 '굴러가고' 있을 것이다.

내가 일어나서 화분 앞으로 가면 화분은 나에게 '다가오고' 화분을 지나쳐서

계속 걸어가면 화분은 나에게서 '멀어지며', 내가 주저앉으면 화분은

나의 위로 '올라가고' 내가 일어서면 화분은 나의 아래로 '내려간다.'

 

동일한 하나의 화분이지만 관찰자에 따라서 화분의 움직임이 달라지는 것이다.

상대운동이다. '정지함'과 '돌아감'과 굴러감'과 '다가옴'과 '멀어짐'과

'올라감'과 '내려감'이라는 온갖 운동이 화분에 재재한다.

 

하나가 곧 무한이라는 일즉일체(一卽一切), 또는 하나 속에 무한이

담겨 있다는 일중일체(一中一切)이치의 한 예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우리가 마주 대하는 모든 사물들이나. 우리가 짓는

온갖 행위들은 관점에 따라서 무한한 의미로 해석해낼 수 있다.

 

또 서로 상충되는 듯이 보이는 갖가지 관점들, 서로 충돌하는 갖가지

이해관게를 '하나의 행위'를 통해서 화해시킬 수도 있다.

하나의 절묘한 분별을 통해서 온갖 모순을 녹여낼 수 있다.

일즉일체, 일중일체의 이치가 세상을 지배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보자. 십수 년 전, 남한과 북한이 서로 증오하면서 대립할 때,

남북 간의 육로를 개척한 하나의 정책이 있었다. 그 당시 남과 북은

가끔 도움을 주고받았는데, 그 통로는 해로(海路)에 국한되어 있었다.

 

남한에서 북으로 원조물자를 보내려면, 인천항에서 선적한 후 서쪽으로

직행하여 공해로 나아갔다가 다시 북으로 올라간 후, 선수를 돌려 남포항을

향하여 동으로 직행하는 방식으로 디귿(ㄷ)자로 항해하여 북볔 땅에

도착하였다. 육로로 가면 서울에서 평양까지 반나절도 안 걸리는데,

공해를 이용하여 교류했기에 여러 날이 걸렸다.

 

그때 휴전선을 뚫고 육로를 개척한 '절묘한 하나의 분별'이 있었다.

'소떼'였다. 현대그룹의 정주영 회장이 북한에 제안을 하였다.

서산의 간척지 목장에서 키우던 한우 5백 마리를 북한에 보내겠다는 것이었다.

 

그는 다음과 같이 덧붙였다. "젊은 시절' 소 판 돈'을 갖고서 가출한 후

자수성가하여 큰 기업을 일구었는데, 그 죄책감이 아직도 남아 있다.

이제 갚고 싶다." 그의 고향은 북한의 통천이라고 했다.

 

"소떼를 보내겠다."는 '하나의 분별'이었지만

"빛을 갚겠다."는 말은 '북한의 자존심'을 살려 주었다.

남이든 북이든 과거의 우리 한국인에게 '소'는 농사일을 돕는 큰 일꾼이었고

집안의 든든한 재산이었다. 그런 '소'였기에 북한 관리들의 가슴이 움직였다.

 

'살아 있는 소들'을 싣고서 오래 항해할 수는 없었다.

신속한 수송을 이유로 육로 이용을 제안하였다. '소떼'라는

하나의 분별을 통해서 다양한 문제를 일거에 해결하였다.

 

일중일체의 정책이었다. 장고(長考) 끝에 고안한 하나의 절묘한 분별이었다.

정주영 씨는 말년에 불교에 귀의하였고, 49재를 도선사에서 지냈다.

그가 화엄을 알았을 것 같지는 않지만, 그 방식은 화엄적이었다.

 

한 속에 모든 것을 담는 일중일체의 분별을 고안하기 위해서는 갈등하는

사안들에 대해 숙지해야 한다. 그후에 가부좌 틀고 앉아서 깊은 사색에

들어가면 모든 갈등을 해결하는 하나의 분별이 떠오른다. 바로 화엄적 정책이다.

김성철 교수의 불교하는 사람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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