卍 불교 교리 강좌

윤회의 탈출구는 색계에 있다

갓바위 2024. 2. 8. 11:44

 

 

윤회의 탈출구는 색계에 있다

부처님 가르침에 의하면 모든 생명체는 욕계(欲界) ·

색계(色界) · 무색계(無色界)의 세 곳에서 살아간다고 한다.

 

이를 삼계(三界)라고 부른다. 삼계를 육도(六道)와 비교하면 지옥 · 축생 ·

아귀 · 인간 · 아수라의 오도(五道), 그리고 천상 가운데

남녀의 성(Sex)이 있는 육욕천은 욕계에 속한다.

 

욕계를 법어로 까마로까(Kama-loka)라고 하는데,

까마란 성욕(性慾)을 포함한 동물적인 욕망을 의미한다.

욕계 중생은 몸과 정신과 성을 갖고 있고, 색계 중생은 몸과 정신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무색계에는 '정신적인 삼매경'만 있을 뿐이다.

 

인간과 축생은 욕계에 사는 중생으로 그 몸이 고기로 이루어져 있다.

욕계에서는 내가 남의 고기를 먹든지, 남이 내 고기를 먹는다.

또 교미를 통해서 2세를 생산한다. 식욕과 성욕이 '고기 몸'의 핵심이다.

 

식욕과 성욕은 우리 몸의 중앙에 달린 입과 성기를 통해서 충족된다.

동물적인 삶이다. 이런 '고기 몸'을 '나'라고 생각하는 것을 '욕계의

유신견(有身見),이라고 한다. 유신견이란 '몸이 있다는 생각'을 의미한다.

 

식욕과 성욕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할 경우 내생에 다시 욕계에 태어난다.

먹고 먹히며, 뺏고 뺏기며, 죽이고 죽는 '고기 몸의 비극'을 다시 되풀이해야 한다.

 

부처님의 가르침을 한 마디로 요약하면 '동물적 삶에서 벗어나는 것',

즉 윤회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불교에서는 삼계 가운데 색계를 가장 중시한다.

 

윤회의 탈출구가 색계에 있기 때문이다. 정(定)과 혜(慧)가 균등해야 연기와

공성을 올바로 통찰할 수 있어서 탐, 진, 치, 만, 의와 같은 번뇌의 뿌리가

뽑히는데, 정과 혜를 균등히 닦을 수 있는 곳이 바로 색계다.

 

정은 삼매, 혜는 지혜이다, 욕계에서는 삼매보다 분별의 힘이 강하여 세상을

올바로 통찰하지 못하고, 무색계의 경지에 오르면 지혜보다 삼매의 힘히

강하여 세상을 제대로 통찰할 수 없으며, 그 중간 지점인 색계에서만

삼매와 지혜의 힘이 균등하다고 한다.

 

풀어서 말하면 '곰곰이 생각'할 수 있는 곳은 삼계 가운데 색계뿐이란 것이다.

곰곰이〔止〕 생각하는〔觀〕것을 함께 묶어서 지관쌍운(止觀雙運)이라고 부른다

 

지 수행의 결과가 정(定)이고, 관 수행의 목표는 혜(慧)다. 엄밀히 말하면

'지관'은 수행의 '방법'이고 '정혜'는 그런 수행의 '결과'다.

지관 수행을 한 마디로 선(禪)이라고 부른다. 선을 '정려(靜慮)'라고 쓰기도 한다.

 

정(靜)은 지(止)에 해당하고 려(慮)는 관(觀)을 의미한다. '

고요히〔靜〕 생각하는 것〔慮〕'이 선이다. 그리고 이런 선의 세계가 바로 색계다.

색계는 '초선(初禪), 제2선, 제3선, 제4선'의 네 단계로 구분된다.

 

이런 선의 경지를 체득할 경우 비로소 지관쌍운을 통해 세상의 진상을

올바로 통찰할 수 있다. 세상의 진상은 연기(緣起)와 공(空)이다. 진정한

선을 닦기 위해서는 수행자의 마음이 욕계에서 벗어나 색계로 진입해야 한다.

 

'욕계의 유신견', 즉 '고기 몸에 대한 집착'에서 벗어나 있어야 한다.

그 방법은 지계행이다. 계행이 완성될 때 욕계를 벗어나고 색계에 오른다.

그 후 평안한 마음으로 나와 세상, 삶과 죽음을 통찰하여 연기와 공성을

발견함으로써 '모든 것이 허구'임을 깨달을 때 모든 번뇌가 사라진다.

 

지관쌍운, 정혜쌍수를 통해 공성을 자각하여 삼독의 뿌리가 뽑히는 것이다.

이때 '나의 고기 몸'에 대해 정나미가 떨어지게 만드는 '주정관(不淨觀)'이나

'고기몸을 갖고서 약육강식의 욕계에서 먹고 먹히면서 살아가야 하는

다른 존재들'에 대해 연민하는 '자비관(慈悲觀)'

역시 수행자의 마음이 색계의 경지에 오르도록 돕는다.

 

싯다르타 태자는 12세 어린 나이에 농경제에 참석했다가, 농부의 쟁기질로

꿈틀거리는 벌레, 쏜살같이 내려와서 그 벌레를 입에 물고 공중으로 날아가는

작은 새, 그 작은 새를 덥석 잡아채는 큰 새의 모습을 보고서

비감에 젖어 염부수 아래 앉아 명상에 잠긴다.

 

그때 태자의 마음은 삼계 가운데 색계(色界)의 첫 단계인 초선(初禪)의

경지에 올랐다고 한다. 그 후 29세에 출가하여 6년간 온갖 수행을

체험하다가 그 모두를 버리고 보리수 아래에 앉은 싯다르타 태자는

어린 시절 농경제의 기억을 되살려 선(禪) 수행에 들어간다.

 

선은 지(止)와 관(觀)을 함께 닦는 정려(靜慮)의 수행으로 '곰곰이〔止,靜〕

생각하는 것〔觀,慮〕'에 다름 아니다. 몸과 마음과 세상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들을 "있는 그대로〔止實〕' 보는 것이다.

 

농경제에 참석했던 싯다르타 태자가 알게 된 것은 '먹고 먹히는'

약육강식의 법칙이 지배하는 생명의 세계였다. '고기 몸'의 비극이었다.

이를 회상할 때 태자의 마음이 색계 초선의 경지에 오른 이유는, 먹거나

먹혀야 하는 '욕계의 고기 몸'에 대해서 정나미가 떨어지는 마음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런 '고기 몸'을 갖고서 살아가야 하는 욕계의

가련한 중생들에 대한 자비의 마음이 절실했기 때문이었다.

 

후대의 불교이론가들은 전자를 부정관(不淨觀), 후자를 자비관(慈悲觀)이라고

부른다. 초기불전에서는 자(慈) · 비(悲) · 희(喜) · 사(捨)의 사무량심을

사범주(四梵住)라고도 부르는데, 색계인 범천(梵)의 세계에 올라서

머물게(住) 하는 네 가지(四) 마음자세라는 뜻이다.

 

고기 몸을 갖는 '욕계의 모든 존재들'이 행복하기 바라고〔慈〕, 고통이 없기를

바라는〔悲〕 마음이 지극할 때, 수행자는 색계 초선의 경지에 오른다.

 

욕계 중생에게는 남여, 암수의 '성(Sex)'이 있으나 색계의 천신에게는 성(性)이

없으며, 욕계중생은 '덩어리밥〔段食〕'만을 먹어야 하지만 색계의 천신은

'감각〔觸食〕, 생각〔思食〕, 인식〔識食〕'만을 먹고 산다고 한다.

 

스님들께서 이성(異性)을 멀리하고, 음식을 절제하며, 엄중하게 계를

지키면서 사시는 것은 그 마음이 색계의 차원으로 올라가야 하기 때문이다.

윤회의 탈출구는 욕계를 벗어난 색계에 있다. 색계의 경지가 되어야

진정한 지관쌍운· 정혜쌍수가 가능하며, 연기(緣起)와

공(共)을 통찰하여 번뇌의 뿌리를 뽑을 수 있다.

 

또 초기불전에서 사과(四果)의 성인을 구별할 때에도 그 기준은

'욕계의 탈출' 여부에 있다. 예류과(預流果)의 경우 '극칠반(極七返)'이라고

하는데, 그 의미는 "윤회하면서 기껏해야〔極〕 일곱〔七〕 생만 욕계로 되돌아온다

〔返〕."는 뜻이다.그 이후에는 반드시 색계 이상의 경지로 오르는 불퇴전의 경지다.

 

일래과(一來果)는 '내생에 한 번〔一〕만 욕계로 오고〔來〕, 그 이후에는

색계 이상으로 오르는 성자'를 의미한다. 불환과(不還課)는 '죽은 후 다시는

욕계로 돌아오지〔還〕 않고〔不〕, 색계 이상으로 오르는 성자'를 의미한다.

 

그리고 아라한은 '모든 번뇌를 끊었기게 다시 태어나지 않는 성자'다.

그 마음이 윤회에서 완전히 벗어난 것이다. 삼계를 탈출한 것이다.

 

보리수 아래 앉은 싯다르타 태자는 농경제의 기억을 되살려 삶과 죽음,

생명과 세계의 정체에 대해 '곰곰이 생각하는' 선 수행에 들었고 색계

제4선의 경지에서 깨달음이 열렸다고 한다. 제4선이란 호흡이 잦아들고,

전생이 모두 회상되는 경지다. 숙명통이다.

 

이어서 다른 생명체의 전생과 내생을 짐작하는 천안통이 열리고,

새벽이 되어 모든 번뇌가 사라진 누진통이 열리면서 부처님이 되셨다.

이 역시 색계의 차원에서 일어난 일이다.

 

김성철 교수의 불교하는 사람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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