卍 불교 교리 강좌

정보통신문명으로 도래한

갓바위 2024. 2. 9. 10:09

 

 

정보통신문명으로 도래한

화엄의 세계

"동해물과 백두산이 마르로 닳도록,

하느님이 보우하사 우리나라 만세." 애국가의 첫 구절이다.

여기서 말하는 하느님은 제석천이다.

 

제석천은 도리천의 천주인 석제환인(釋帝桓因)의 다른 이름이고,

석제환인은 '신(deva)들의 주인(sakra)이신 인드라'를 의미하는 범어

'샤끄라-제와남-인드라(Sakra Devanam Indra)'의 음사어다.

 

도리천에는 동· 남 · 서 ·북의 4방에 각각 여덟 곳의 하늘나라〔天〕이 있고,

중앙에는 인드라 신이 사는 천궁이 있다고 한다. 4방의 32천궁과 중앙의 1천궁을

합하여 총 33천궁으로 이루어져 있기에 '33천', 또는 '도리천'이라고 부른다.

 

'도리'란 33을 뜻하는 범어 '뜨라야스-뜨링샤'의 앞부분인 '뜨라야'를

음사한 말이다. 33신들 가운데 주인인 석제환은 도리천 중앙의 천궁에

거주하며, 줄여서 환인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단군신화에서

'환인→환웅→단군'으로 내려오는 가계의 시조다. 우리나라의 하느님이다.

 

화엄학에 의하면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은 사바세계와 극락정토가 오버랩 되어

있는 곳이라고 한다. 일반 범부의 눈에 보이는 기세간(器世間)과 깨달은

불보살에게 보이는 지정각세간(智正覺世間)이 중첩되어 있다는 말이다.

 

기세간은 물리적인 세계이고, 지정각세간은 화장장엄(華藏莊嚴)의 세계를

의미한다. 깨닫기 전에는 이곳이 사바세계인줄만 알았는데, 깨닫고 나니까

바로 이곳이 극락이라는 것이다.우리는 비로자나 법신 부처님의 털구멍 속에 산다.

 

어디든 정토이고 누구나 부처님이다. 화엄학에서는 열 가지 조망으로

화장장엄세계의 모습을 묘사하는 데 그 가운데 하나가 인다라망경계문

(因陀羅網境界門)이다. 위에서 소개한 제석천의 궁전에는 '인다라망'이라는

입체그물이 있는데, 촘촘히 짜인 그물의 매듭마다 '표면이 거울처럼

반짝이는구슬'이 달여있다. 인다라망경계문이란, 우리가 사는 세계가

'인다라망과 같은 모습을 하고 있다는 통찰이다'

 

어느 한 구슬을 보더라도 그 표면에는 다를 모든 구슬의 모습이 비친다.

구슬 표면에 검은 점을 찍으면 다른 모든 구슬의 모습이 비친다.

구슬 표면에 검은 점을 찍으면 다른 모든 구슬에 검은 점이 나타난다.

어느 구슬을 들더라도 사방, 팔방의 모든 구슬이 비친다.

 

그 구슬이 먼지처럼 작아져도 이는 마찬가지다.

우리 눈에 뚫린 점처럼 작은 동공에 온 세상의 모습이 빨려 들어 오듯이,

먼지 한 톨 크기의 공간이 온 우주의 모습을 머금는다.

일미진중함시방(一微塵中含十方)이다.

 

그렇게 온 우주을 머금은 '빈 점(vacant spot)'들이 온 공간에 꽉 차 있다.

일체진중역여시(一切塵中亦如是)다. 그 어느 곳이라고 하더라도 완벽하다.

부족한 것이 없기에 어디에 있는 누구나 평등하다. 인다라망경계문의 통찰이다.

 

그런데 컴퓨터와 인터넷, 휴대폰과 같은 정보통신기기가 개발되면서

사바세계 역시 인다라망처럼 변해가고 있다 컴퓨터 앞에 앉아서

전 인류와 교류한다. 휴대폰을 통해서 온 사람과 통화한다.

전 세계의 모든 정보가 전 인류에게 전해진다.

 

누구나 모든 것을 알 수 있고, 모든 것을 할 수 있다. 누구나 부처님이다.

평등의 세상이다. 이 세상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들이, 언제나 모두에게 전해진다.

모든 것이 드러난다. 후미진 곳이 사라진다. 정보통신기기가 만들어낸

가상의 공간에서는 장애인과 비장애인을 구별하지 않는다.

 

빈부의 차이도 없다. 외모의 우열도 사라진다 학벌, 나이, 성별, 가문,

권력, 금력의 서열이 모두 무너진다. 누구나 주인공이 되는 평등의 공간이다.

 

정보통신기기가 보급되면서 인류문명이 급선회하였다.

제1의 물결은 농업혁명, 제2의 물결은 산업혁명, 제3의 물결은 정보화혁명을

의미한다. 컴퓨터 앞에 앉아서 인터넷을 켜면 누구나 주인공이 되고,

어디든 세상의 중심이 되며, 모든 사람이 평등하다.

 

모두가 부처님이고, 어디든 불국정토인 화장장엄세계가 열리는 듯하다.

누구나 천수천안(千手千眼)의 관세음보살이 된다.

모니터의 천안으로 온 세상을 살피고 천수의 자판을 두드려서 모든 일에 개입한다.

 

최제우, 강일순, 박중빈등 구한말의 민족종교 지도자들이 꿈꾸었던

후천개벽의 이념이 실현되고 있는 듯하다.

정보통신기기로 인해서 정신문명의 시대가 열리고 있다. 정보통신기기가

물리적인 일반기계들과 다른 점은 무한한 '의미'를 방출한다는 데 있다.

 

반기계들은 대개 하나의 용도만 갖는다. '망치'는 못을 박는 것이고,

'다리미'는 옷을 다리는 것이다. 그러나 정보통신기기의 용도는 무한하다.

영화를 보고, 메일을 보내고, 토론을 하고, 게임을 하고, 그림을 그리고,

음악을 듣고, 문서를 읽고,······ 작은 화면에서 무한한 '의미'를 만들어낸다.

 

'의미'는 정신의 소재가 된다. 물질과 정신을 구분할 때, 물질은 국소적이지만

정신은 보편적이다. 물건은 남에게 주면 내 것이 없어지지만, 생각은 남에게

알려주어도 내 것이 줄지 않느다. "발 없는 말이 천 리 간다."고 하듯이

'정신적인 것'은 무한히 퍼진다. 마치 빛이 그렇듯이 정신은 편재한다.

 

정신의 보편성, 편재성은 자비심의 원천이다.

남의 고통은 물질인 몸이 아니라 마음으로 전달되기 때문이다.

사람이 짐승과 다른 점은 "남이 보는 앞에서 악한 짓을 못한다."는 점이다.

 

정보통신기기로 인해서 정의로운 사회가 만들어지는 이유가 이에 있다.

모든 곳에서 일어나는 일이 모든 사람에게 알려지기 때문이다.

누가 어떤 일을 하더라도 결국은 모두 남들에게 드러나기에 은밀하게

행해지던 악이 서서히 자취를 감춘다. 물질의 세계에서는 강한 것이

약한 것을 제압하지만, 정신의 세계에서는 선한 것이 악한 것을 이긴다.

 

불세출의 학승이면서 주역과 음양오행 이론 등 외전에도 밝았던

탄허스님(呑虛, 1913~1983)께서는 앞으로는 '금력이나 무력과 같은

동물적 힘'이 아니라 '윤리와 도덕을 갖춘 사람'이 존경받고 통치하는

세상이 된다고 예측하면서, 무기의 역사를 '목(木) · 화(火) · 토(土) ·

금(金)· 수(水)' 오행(五行)의 상극(相克)관계로 풀이한 바 있다.

 

목극토(木克土)이기에 몽둥이(木)가 맨주먹(人土)을 이기고,

금극목(金克木)이기에 창이나 칼〔金〕이 몽둥이를 이기며,

화극금(火克金)이기에 총이나 대포〔火〕가 창과 칼을 이기고,

수극화(水克禾)이기에 수소탄이나 원자탄〔水〕이 총과 대포를 이긴다.

 

수소탄이나 원자탄은 수소원자〔H〕의 차원에서 작용하기에 '수'에

해당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토극화(土克火)이기에 '사람의

힘'〔土〕'이 수소탄과 원자탄〔水〕을 이긴다.

 

'의미'로 세상을 해석하는 동아시아의 음양오행설에 근거한 것이지만 하지만

그럴 듯한 풀이다. 강대국의 수소탄과 원자탄으로 인해서 지구상에 역설적인

평화가 유지되는 이 시대에 그런 무력을 제압하는 것은

제3의 무력이 아니라 '사람의 힘'이라는 것이다.

 

여기서 말하는 사람의 힘은 컴퓨터 앞에 앉아서 불의에 항거하면

댓글을 다는 '이름 없는 네티즌의 손가락'일 수도 있고, 소설네트워크로

연락을 주고받으면서 구호를 외치는 '시민운동가들이 맨주먹'일 수도 있을 것이다.

정보통신문명으로 인해서 우리 사회는 누구나 부처님이고

어느 곳이든 불국정토인 호장장엄세계를 닮아 간다.

 

김성철 교수의 불교하는 사람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