卍 불교 교리 강좌

친미, 용미, 반미, 숭미 그리고 친일

갓바위 2024. 3. 3. 09:22

 

 

친미, 용미, 반미, 숭미 그리고 친일

'친미', '용미', '반미', '숭미'. '미' 자 돌림의 어느 자매들 이름 같이 들릴지

몰라도 그게 아니다. 세계 각국이 미국을 대하는 네 가지 태도이다.

와스프(WASP: WhireAnglo-Saxon Protestant)들이 설치는 자랑스러운

서자(庶子) 미국에 대해 흐믓한 눈길을 보내는 노쇠한

아버지 영국의 태도는 한결같이 친미적이다.

 

제2차 세계대전에서 패망한 이후 악극〈노오(能)〉의 눈웃음치는 가면으로

속내를 가린 채 미국의 장단에 맞추어 춤을 우면서 점점 그 활개를

넓혀 가는 일본의 용미(用美)는 그 기교가 가히 수준급이다.

 

제1차 세계대전 때 줄을 잘못 선 죄로 오스만터키의 이슬람 제국이 해체된 이후

서구인들에 의해 유린되어 온 중동사람들은 처절할 만치 반미적(反美的)이다.

그러면 우리는 어떠한가? 6.25 동란 이후 미국의 원조물자가 쏟아져 들어왔다.

 

1960년대 초 한국의 젊은 인재들이 대거 미국에 초청되어 단기교육을 받은 후

우리 사회의 핵심부에 배치되었다. TV가 보급되자 미국에서 싼값에 제공해

주는 각종 영상물들을 통해 '선하고 정의롭고 행복한 미국'이라는 이미지가

우리에게 심어졌다. 해외 유학자의 90% 이상이 미국산이다.

 

영어 발음이 잘 될 것이라는 기대로 혀 밑의 인대를 수술해 잘라낸다.

그리고 급기야, 국적 속지주의를 택하고 있는 미국에서 출산하기 위해 작년 한해

오천여 명의 한국 임산부가 미국 행 비행기를 탓다고 한다.

어느 결에 우리 국민 가운데 많은 사람들이 친미를 넘어서

승미주의자(崇美主義者)가 되고 말았다.

 

국가 간에 친선을 유지하는 것은 중요하다. 그러나 상호

평등한 관계에 토대를 두어야 그런 친선관계는 오래 유지될 수 있다.

한 쪽에서는 어떤 정치적 목적을 갖고 다른 한 쪽에 대해 호의를 베풀 때,

상대방이 그것을 간파하지 못하면 뜻하지 않게 화를 당할 수 있다.

 

정치적 목적에 따라 호의는 언제든지 악으로 변할 수 있기 때문이다.

미국에게 우리 국민들이 자각하기 시작한 것은 최근의 일이다.

소련과 미국이 이념적으로 대립하던 과거 냉전 시대에 우리는 국가 간의

관계에도 정의와 도덕이 존재하는 줄 알았다. 그러나 그것은 착각이었다.

 

수천 년에 걸친 인류의 역사에서 국제관계는 예왜 없이

약육강식의 정극의 법칙이 지배할 뿐이었다. 이제 미국은 자국을

정상으로 하는 일극(一極)체제에 의해 국제질서를 재편하려 하고 있다.

 

대량살상무기를 명분으로 내세워 이라크를 침략하였지만,

결국은 "침략하고 싶어서 침략했다"는 사실를 공포해 버린다

이런 미국의 처신은, '늑대가 온갖 핑계를 대며 어린양에게 시비를 걸다가

말문이 막히자 속마음을 드러내며 그 어린양을 잡아먹어 버렸다."는

톨스토이의 우화를 생각나게 한다.

 

냉전의 양극체제에서 힘의 한 축을 담당했던 소련이 몰락한 지금

점점 오만 방자해지는 미국을 견제할 도리가 없다.

그러나 강자의 교만은 그 말기증상이라는 역사의 교훈이 우리에게 위안을 준다.

이제 우리는 미국의 몰락 이후를 생각해 보아야 한다.

 

모 대학 총장을 지냈던 저명 인사가, 십 수년 전 TV의 대담프로에

출현한 적이 있다 자신이 일제강점기에 군수를 지내며 징병과 징용에 앞장섰던

친일파였다는 전력을 정직하게 고백했전 일로 초청되었다. 사회자가 물었다.

 

"그때 징병과 징용을 종용하는 것이 잘못된 행동인 줄 전혀 모르셨나요?'

그는 그 당시 자신은 전혀 죄책감을 느끼지 못했고 해방된 후에야 자신의

행동이 잘못이었음을 자각하였다고 대댭한 후 다음과 같이 말을 이었다.

 

"지금 미국에 대해 호의적인 사람들이 역사가 흘러 세상이 변한 후,

친일파가 지금 비판받듯이 비판받는다고 가정해 봅시다.

그 사람들의 심정도 나와 같을 겁니다."

김성철 교수의 불교하는 사람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