卍 불교 교리 강좌

고요한 마음은 어디에나 있고 어디에서나 깨달음은 나타난다

갓바위 2024. 3. 28. 10:39

 

 

고요한 마음은 어디에나 있고 어디에서나 깨달음은 나타난다

​定 慧

10여 년 전 선운사에 모셔진 백파 선사의 비문을 탁본한 일이 있다.

백파 선사의 정식 비문의 이름은 '화엄종주백파대율사 대기대용지비

華嚴宗主白坡大律師 大機大用之碑', 추사 김정희가 짓고 썼다.

 

백파 선사는 당대 최고의 선사로 조사선 입장에서 '〈선문수경禪門手鏡〉'

이라는 글을 썼는데, 젊은 초의 선사가 '선문사변만어禪門四辨漫語'라는

글로 이를 반박했다. 백파 선사에게서 답이 오지 않자, 이번에는 초의 선사의

지기인 추사가 '망증십오조妄證十五條', 백파 선사가 15가지 망발을 했다는

편지를 보냈다. 추사의 젊은 패기와 치기가 다분히 섞인 내용이었다.

 

훗날 추사가 존경과 추모의 마음을 가득 담아 백파의 비문을 짓고 적으니, 추사

가 만년에 제주도 귀양살이를 겪으며 수행이 깊어지고 추사체가 완성된 뒤였다.

 

그런데 탁본을 하면서 백파의 평생 화두이기도 했던 '대기대용大機大用',

'깨달은 사람만이 누리고 활용한다';는 그러 경지는 어떤 것인지에

대한 궁금증이 일었다. 오랫동안 감감하던 의문은 어느 날

《육조단경》의 〈定慧品〉을 보다가 문득 풀렸다.

 

《육조단경》에서는 정定과 혜慧가 한 몸이라고 이야기하고 있다.

가만히 '정'에 있을 때는 그 안에 '혜'가 깃들어 있고 그 선정의 마음이

대상과 경계를 만나게 되면 지혜가 작용한다. 그 지혜가 작용하는

속에 앉아 있을 때 선정의 마음이 그대로 간직되어 있다는 말이다.

 

이런 마음이라면 앉아 있을 때에는 고요하지만, 움직이면 지혜가 작용하고,

자비가 실천되어지는 것이다. 이러한 사람의 움직임은 대기대용이 되는데,

다른 말로 활발발活發潑의 자유자재自由自在이다.

 

옛 선사들은 한결같이 수행의 결론은 고요한 마음에 간직된

대자비심을 일으켜 더불어 함께 나누는 삶에서 완성된다고 했다.

그래서 무엇을 위해 선 수행을 하는지에 대한 마음가짐이 중요하다.

 

스님들이 가장 애송하는 종색 선사의 《좌선의》에는 좌선하기 전 다섯 가지

중요한 마음가짐을 이야기하고 있다. 대비심을 일으켜, 큰 서원을 세우고,

정교하게 삼매를 닦으면, 중생을 제도하되, 홀로 자기 한 몸만을

위해 해탈을 구해서는 안 된다는 뜻이다.

 

마음이 지극히 고요하고 아무 번뇌가 없을 때 그 마음이 열려 광대해진다.

그것이 자신의 본래 상태를 드러낼 수 있는데 그것이 큰 지혜의 상태이다.

마음이 지혜로 충만해졌을 때 비로소 이것을 깨달음이라 부를 수 있다.

 

고요함을 이루려는 집착에서 벗어날 때 비로소 고요한 마음은

어디에서든 있고, 어디에서든 깨달음 속의 자비는 나타난다.

물흐르고 꽃은 피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