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이명주ㅣ薏苡明珠
○ 율무를 빛나는 구슬로 보다, 억울한 수뢰 혐의
○ 薏(율무 의) 苡(질경이 이) 明(밝을 명) 珠(구슬 주)
수레에 싣고 온 율무를 뇌물로 받은 明珠(명주)라고 옭아매는 바람에 억울한
누명을 썼다. 터무니없는 수뢰의 참소를 받거나, 반대로 근거 없이 남을 비방
할 때 사용되는 말이다. 薏(의)는 ‘억’으로도 읽혀 薏苡明珠(억이명주)라고도 쓴다.
억울한 누명을 쓰고 그 동안 쌓은 명예가 땅에 떨어진 사람은 後漢(후한)의
명장이었던 馬援(마원, 기원전14~기원후49)이다. 光武帝(광무제)를 도와
북방 이민족을 평정하고, 남쪽의 베트남 북부 交趾(교지)의 난을 진압하는데
큰 공을 세웠다. 흉노를 정벌할 때 말가죽으로 자기의 시체를 싼다는
馬革裹屍(마혁과시, 裹는 쌀 과)의 결의를 보인 것으로도 유명하다.
마원이 교지를 정벌하러 갔을 때 땅은 비록 황폐했지만 율무라는 식물이 생산
되고 있었다.그 열매를 먹으면 몸이 건강해지고 풍토병을 예방할 수 있다고 했다.
마원은 교지에 있을 때 부하와 함께 자주 복용했고, 임무를 마치고
철군할 때 종자로 삼기 위해 한 수레 가득 싣고 돌아왔다.
그것이 무엇인지 알 리 없는 사람들은 싣고 온 것이 남방의 진주나 코뿔소 뿔일 것
(以爲前所載還 皆明珠文犀/이위전소재환 개명주문서)이라며 매우부러워했다.
犀는 무소 서. 조정에서도 뒷말이 있었으나 공을 세우고 돌아온 마원에게
더 이상 캐물을 수 없었다. 몇 년 후 마원이 변방 정벌 중 전장에서 숨지자
황제의 사위인 梁松(양송)이 옛날 수레 한 가득 보물을 싣고 온 적이 있다고
상소하는 바람에 작위가 모두 몰수되었다. 마원의 부인이 눈물로 억울함을
호소하는 바람에 진상을 알게 된 황제는 명예를 회복시켜 주고 장례를
후하게 치르게 했다. ‘後漢書(후한서)’ 마원전에 나오는 이야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