卍 불교 교리 강좌

무심에 이르는 순간 부처가 된다​

갓바위 2024. 4. 19. 19:36

 

 

무심에 이르는 순간 부처가 된다​

茶 半 香 初

나의 삶도 강물처럼 바라보아야 한다.

나, 자녀, 타인, 세상을 바라보는 것도 그렇다. 기대를 버리고 온갖 가능성을

열어두어야 한다. 그러면 세상과 만나는 매 순간이 환희롭고 행복할 것이다.

 

얼마 전 한 노인이 고등학교 1학년을 다니다 자퇴한 손자를 데리고 왔다.

손자가 우울증으로 정신과 치료를 받는 중에 어떤 분의 소개로

무작정 찾아왔다고 했다. 할아버지는 하나밖에 없는 금쪽같은

손자가 건강해져서 제 갈 길을 걷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었다.

 

아이는 태어나면서부터 애지중지 키워졌다.

유치원, 초등학교, 중학교 때까지 부족함 하나 없이 자랐다.

아이의 말투 하나, 행동 하나까지 온 가족이 관심을 보이며 애정을 쏟았다.

 

스스로 무언가를 하려고 하면 먼저 어른들이 준비를 해주었다.

그런데 고등학생이 되자 소년이 폭발하고 말았다.

어른들의 관심 어린 말 한마디에도 소리를 지르고 뛰쳐나갔다.

 

제 삶을 제 마음대로 할 수 없는 무력감, 애정으로 포장된 지나친 관심은

소년의 모두 의지를 꺽어놓았다. 그래서 자기 나름대로 저항을 한 것이다.

그것은 곧 소년의 마음 안에는 아직 스스로 극복하고

이겨내 보겠다는 가능성이 남아 잇음을 뜻했다.

 

누군가 내 인생을 만들어주려 하거나 간섭한다면 그것은 부자유스러운 일이다.

어쩌면 반발하는 게 당연하다. 우리는 새로운 만남에 신기해하고

스스로 이루어내는 것에 흥미를 갖는 존재이다.

 

나는 노인에게 그 점을 알려 주었다.

아이 스스로 삶을 돌보도록 지켜보라고 그려면 스스로 뚫고 일어설

것이라고, 무엇보다 아이에게 필요한 것은 믿음과 기다림이었다.

 

나무가 꽃을 피우려면 추운 겨울을 이겨내야 한다.

푸른 이파리들 남김없이 땅에 떨어뜨리고, 뿌리는 깊게,

껍질은 두껍게 하고 당당히 서서 추위를 맞서야 한다.

 

그렇게 살아남아 따뜻한 봄기운이 돌면 작은 실뿌리까지 부지런히

움직여 땅의 기운을 저 먼 가지 끝까지 올려 보내는 정성을 쏟아야 한다.

무언가 이루려고 한다면 과거의 연기적 관계성과 현재의 연기적

관계성을 최대한으로 활용해야 한다. 통찰의 지혜가 필요하다.

 

수류화개水流花開라는 글귀를 좋아하여 집 이름을

'수류화개실'이라고 쓰신 법정 스님의 글도 있다.

"언젠가 한 젊은 청년이 뜰에 선 채 불쑥 수류화개실이 어디냐고 물었다.

 

아마 내 글을 읽고 궁금했던 모양이다.

나도 불쑥, 네가 서 있는 바로 그 자리라고 일러주었다. 사람은 언제

어디서 어떻게 살든 그 속에서 물이 흐르고 꽃을 피워낼 수 있어야 한다

 

저 꽃도 나무도 강도 봄 또한 그러할진대 사람이라면 응당 그러해햐 하지

않겠는가." 물을 적적寂寂하게 흐르고 꽃은 성성惺惺하게 피듯이,

번뇌는 적적하고 화두는 성성하게 한다면 좋겠다.

 

그리하여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무심無心의 경지에 이르는 순간

우리는 부처가 된다. 추사가 초의 스님에게 보낸 명품 서첩들이 많다.

그중에서 다인茶人들이 곁에 두고 애송하는 유명한 구절이 산곡 황정견의

대련(對聯, 시문 등에서 의미는 틀리나 동일한 형식으로 나란히 있는 문구)이다.

 

고요히 앉은 곳

차 마시고 향사르네

묘한 작용이 일 때

물 흐르고 꽃이 피네

靜座處

茶半香初

妙用時

水流花開

물흐르고 꽃은피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