卍 불교 교리 강좌

물은 꽃밭을 지나던 순간을 기억하지 않는다

갓바위 2024. 4. 15. 21:27

 

 

물은 꽃밭을 지나던 순간을 기억하지 않는다

水 流 花 開

연어처럼 바다에서 강으로 수많은 실개천을 거슬러

올라가 강의 시원始原을 찾아다니느느 사람이 있다.

초등학교 교사와 사화과부도 만드는 일을 하다가 우연히 우리나라

 

강의 길이나 시작이 잘못되었다는 사실을 알고는 강에 천착하여 전국 18개의

강을 실측하고 원천을 찾아 국토지리원의 지도를 바꾼 이형석 선생이다.

오래전부터 교분이 있어서 그에게 강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어느 날 그가 한강의 새로운 시원을 찾았다고 자랑하며 말했다.

 

"《조선왕조실록》중 〈세종신록〉의 지리지地理志 보면 한강의

시원으로 오대산 우통수와 금강연을 언급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봄과 가을에 조선시대 관리가 그곳에 와서 시원제까지 올렸다는데,

한강의 원천이 틀렸습니다. 제가 직접 강줄기를

따라가 보니 태백의 금대산 고목샘이 맞습니다."

 

강의 시작점, 시원의 물은 수심 한가운데 중심을 따라 흐른다고 한다. 그래서 옛

호사가들은 배를 타고 강 중심부에서 철 두레박을 내려보내 물을 담아 올렸다.

이 물은 가장무거운 물이어서 한 번 담기면 다른 물과 섞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한강에 배 뛰우고 강 중심수를 길어다가 차를 달였는데,

이는 강원도 깊은 골짜기 샘물로 차를 달여 마시는 셈이 되는 것이다.

봄 산중에 사람들이 찾아오면 말 주변이 없는 나는 묵묵히 샘물을 길어

싱그러운 작설차 한 잔 달이고, '수류화개水流花開, 물흐로

꽃 피듯이'라는 글귀를 적어주는 소박한 대접을 한다.

 

'물이 흐른다'는 말은 지금 활발발 살아서 새로운 것들을 환희롭게 만나라는

뜻이다. 강물은 지난날 아름다운 꽃밭을 지나왔을 때도 있었고, 노루와 달콤한

입맞춤을 하기도 했을 터이다. 폭포에서 떨어지는 공포도 있었을 테고, 웅덩이에

갇혀서 빙글빙글 제자리걸음 하며 답답했던 적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물은 지나온 것들을 생각하지 않는다.

만약 물이 과거 지나왔던 아름다운 꽃밭만 생각한다면

현재 만나는 것들에 대한 불만스러운 마음으로 흘러갈 것이다.

 

물은 다가올 것들을 미리 생각하지 않는다.

'폭포를 만나면 어떡하지?' 하며서 공포스러운 마음으로 흘러가지 않는다.

깊은 웅덩이를 만날 것이라는 두려움을 안고 주저하며 흐르지 않는다.

 

물은 늘 새롭게 흐른다. 아름다운꽃과 새들을 만나고,

신나게 미끄럼도 타고 날카로운 돌무더기도 부드럽게 감싸며 흐른다.

그렇게 모였다. 흩어지기를 반복하며 흐를 뿐이다.

 

또 물은 바다로 간다는 기대를 하지 않는다.

그래서 물에게는 온갖 가능성이 있다.

논밭으로 흘러든 물은 기름진 양식이 되기도 하고, 여름날 햇볕을 받아

 

수증기로 증발하여 다시 산으로 올라거거나 또는 빗방울로

더 빨리 바다에 도착하기도 한다. 가능성을 열어둔다면

무엇을 만나도 어떤 상황에서도 기쁠 것이며 좋은 기회가 된다.

물흐르고 꽃은피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