卍 불교 교리 강좌

삶은 죽음 전의 현란한 꿈이다

갓바위 2024. 4. 19. 19:41

 

 

삶은 죽음 전의 현란한 꿈이다

생각이 혼란한 상태가 되면 상황 판단이 제대로 되지 않아 미래를 향해

나갈 길을 잃는다. 현대인들은 오직 자기만 잘살겠다며 앞만 보고 질주한다.

그러다 보니 이웃이 밥을 굶든지 먹는지 고독사를 했는지도 모른다.

 

그저 자기 일만 챙기면서 생존을 위해 앞만 보고 달려간다.

남을 위해 양보하고 희생할 줄 모르는 참으로 부끄러운 삶을 살고 있다.

 

수행자들은 끓어앉아 합장하고 상상력을 동원하여 자신이 죽은 순간,

아미타불이 여러 비구와 대중(眷屬)을 거느리고 내영(來迎)하시는 모습과

극락세계의 큰 연꽃 위에 앉아 있는 자신의 모습을 바라보면서

 

고, 공, 무상, 무아의 설법을 듣는 것까지도 관하며, 곧 죽을 몸이니

날마다 깨끗하게 잘 죽는 연습을 함으로써 욕심을 내던지고 살아간다.

고수는 눈 똑바로 뜨고 단칼에 베어버리지만 바보는 눈감고

마구칼을 휘두르다 오히려 상대방 칼에 맞아 죽는다.

 

어리석은 마음은 집착과 질투와 탐욕을 낳게 되어 자기가 가진 것을

절대 잃지 않으려 집착하게 된다. 우리는 그런 마음을 쉽게 내버려야 한다.

두려운 마음은 분노를 일으켜서 고통의 어둠 속을 향해 뛰어간다.

 

생사는 마음대로 되는 것이 아니다.

살고 싶다 하여 살 수도 없고, 죽고 싶다 하여 죽어지지도 않는다.

삶이란 죽음 전의 현란한 꿈이다. 꿈을 깨고 나면 허망한 것이다.

 

우리는 너를 통해 내가 깨닫고, 나를 통해 너도 깨닫는 연기적 관계이다.

선인과 악인은 그 사람이 습득한 행위의 일부이기에 절대적인 선인도

절대적인 악인도 없다. 그래서 선인과 악인 모두를 받아들이며 살아가야 한다.

 

나의 주변이 잘살면 나도 잘살 수 있고, 나의 주변이 곤란해지면 나도 곤란

해지는 것이다. 고운 양심으로 성실하게 일하여 더 많이 벌어서 행복하게

살아가자. 밤낮없이 열심히 일하면 적제나마 소득이 있지만, 빈둥거리며

게으름을 피우면 아무 소득도 없게 된다.

 

사람은 먹어야 살 수 있고, 돈을 벌어야 먹거리를 구할 수 있기에

돈이 밥이고, 생명이다. 사람이 음식을 먹으면 첫째, 아름다워지고,

둘째, 수명 장수하며, 셋째, 행복해지고, 넷째, 에너지가 넘치게 된다.

 

그래서 남에게 음식을 베풀면 이 4가지 공덕을 단번에 쌓게 된다.

음식을 베푼 본인도 아름다워지고, 장수하며, 행복과 육신의 힘이 솟게 된다.

얻어먹기만 한 사람은 모습도 추하고, 단명하며, 불행하고, 체력도 저하되어간다.

 

음식 앞에 파리 본 두꺼비처럼 혀를 널름거리며 달려들지 말고,

깁밥 한 줄이라도 사서 나누어 먹는 사람이 되어보자.

또한 어렵고 힘든 일이라 하여 짜증을 내거나 투덜대지 말자.

 

천하 미인도 얼굴 찡그리면 복이 나가고, 추녀라도 웃으면 만복이 굴러들어온다.

추울 때는 추위와 하나 되고, 더울 때는 더위와 하나가 되자.

여름이면 똑같이 더운데 '여름이 싫다'며 짜증을 내면 더 더워지게 된다.

추위와 더위까지도 하나가 되어 살아가자.

 

우리는 실수와 좌절을 통해 배워가는 학생들로서 고통의 삶을 통하여 성장해

가고 있다. 남을 괴롭히고 잘못을 저지른 범죄자들은 지금 하급 단계의 학습

과정을 밟고 있는 학생들이다. 그러므로 그들고 모두 용서하고 포용해줘야 한다.

 

그들의 마음속에도 밝은 지혜와 무한한 자비의 근원은 빛나고 살아있는 것이다.

깻묵에도 씨가 있듯이 사람마다 자기 속은 다 있다.

현재의 죄업이나 잘못된 행위만 보지 말고, 그들 내면에

감춰져 있는 밝은 면까지도 들여다볼 줄 아는 사람이 되어보자.

 

인간은 경험과 의지와 생각과 분별이란 재료에 의지하여 타고 있는 불꽃이다.

가장 큰 고통 속에 가장 큰 희망이 들어 있다. 욕심을 버리고 노력의 결과를

기다리며 잡다한 생각을 멈춰보자. 생각과 분별이 딱 끊어진

상태에서 집착 없는 텅 빈 시선으로 깊은 명상에 잠겨보라.

 

그것은 멍 때리는 것과는 차원이 다르다.

고운 모래를 얻으려면 고운 체를 준비하자.

우리는 서로 떨어지지도 섞여 있지도 않은 불상리(不相離) 불상잡(不相雜)이다.

사라진 번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