卍 불교 교리 강좌

너와 나, 집, 가족, 나라, 지구, 우주가 비로소 한 몸이다

갓바위 2024. 4. 20. 20:38

 

 

너와 나, 집, 가족, 나라, 지구, 우주가 비로소 한 몸이다

同 體 大 悲

시흥의 자동차 부품 가게에 큰 불이 나 옆집 세 채도 함께 전소되는

사건이 있었다. 주인은 평소 휘발성이 있는 작업은 손으로

직접 했는데 그날따라 무심코 전기드릴을 쓰다가 불꽃이 튀어 불이 났다.

 

불은 손쓸 겨를 없이 번졌고 옆집까지 피해를 입었다.

가게 주인은 지난 IMF 때 하던 일을 접고 어렵게

중고타이어 가게를 열어 18년이 지난 지금까지 운영해왔다.

 

일요일도 쉬지 않고 열심히 일했다. 최근에는 한쪽 팔이 아파 병원에 갔더니

치료하지 않고 사용하면 불구가 된다는 경고를 듣고도 얼음찜질을 해가며서

쉴 줄을 몰랐다. 화재의 상처는 컸다. 한 달이 지났지만 그는 여전히

후회스럽고 원통하고 분해서 밤에 자다가도 몇 번씩이나 벌떡벌떡 일어났다.

 

보다 못한 딸들이 아버지를 모시고 미황사 템플스테이를 왔다.

그는 절에서도 며칠 잠을 이루지 못했다. 나는 그와 마주 앉았다.

그의 말을 기다렸다. 그의 억울함과 속상함을 한참 들어주고 나서 말했다.

 

"우리는 과거 찰나의 순간으로 돌아갈 수 없습니다. 지금 당신은

자꾸만 그때를 떠올리며 마음의 불을 지르고 있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당신이

현재 마음을 바로보고 이제 그만 어루만져 주세요. 그리고 주위를 둘러보세요,

 

당신을 기다리는 가족이 있습니다.

이 먼 곳까지 함께 내려온 자녀들을 보세요.

더 늦지 않게 가족과 함께 삶을 가꾸시기를 바랍니다."

면담이 끝나던 날 밤 그는 아주 오랜만에 푹 잤다고 했다.

 

기억나는 또 한 분이 있다. 그분은 건강하게 직장에 잘 다니다가

건강검진에서 위암 선고를 받았다. 하루하루 수술 날짜를 초조하게

기다리던 그분도 딸의 손에 이끌려 절을 찾아왔다. 불안과 두려움이

가득한 얼굴로 앉아 있는 어머니의 손을 딸이 꼭 붙잡고 놓지 않았다

 

불행한 현재를 받아들이기는 쉽지 않다. 그러나 함게 하파하고 걱정하는 가족

이라는 조금 '큰 몸'이 있으니 불행을 극복하는 힘은 더 커지지 않겠는가.학교에

서의 대립과 화재의 원인을 되새김질하고 불안해하는 마음은 감정에서 온다.

 

에리히 프롬은 인간의 근본적 욕망인 식욕이자 성욕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말한다. 오히려 관계에서의 고독감, 창조적 열망 속에서의 무력감, 의미

체계에서의 허무함이라는 세 가지 감정이 삶을 어렵게 만든다고 한다.

 

그런데 현대인들은 이 감정들을 극복하는 데 부정적이 방법을 쓰는 경향이

있다. 약자를 괴롭히면서 무력감에서 벗어나거나, 술 또는 마약으로 허무감을

극복하거나, 특정 집단에 소속되어 다른 사람을 배척하면서 고독감을 해소

하기도 한다. 이 부정적인 형태로 인간은 결국 불행해지고 만다. 프롬은

이 세 가지를 극복하기 위한 유일한 답은 바로 '사랑'에 있다고 일러준다.

 

수행적 측면에서 볼 때 이러한 어려움은 결국 상대적이고 소극적인 '나'라는

생각 속에서 생겨나는 문제들이다. 한 번은 수행을 통한 무아적 선

수행의 체험이 있어야 비로소 뛰어넘을 수 있다.

모든 개별의 것들과 전체가 미황사이다.

 

대웅전이, 보물로 지정된 응진당이, 스님들이, 신도들이, 산이, 나무가,

오늘 밝은 햇살이, 부는 바람이 각각의 미황사이고 이것들이

함께 어우러져서 미황사가 되는 것이다.

너와 나, 집, 가족, 나라, 지구, 우주가 비로소 한 몸이다.

 

청허당淸虛堂 휴정 스님이 지은 책으로, 말 그대로 선가에서 거울로

삼을 수 있는 지침서인 《선가귀감禪家龜鑑》에서 한 구절 옮긴다.

가난한 이가 와서 달라고 하면 분수대로 나누어주라.

한 몸처럼 두루 가엾이 여기면 이것이 참 보시이며,

나와 남이 둘 아닌 것이 한 몸이다.

빈손으로 왔다가 가는 것이 우리들의 살람살이 아닌가.

물흐르고 꽃은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