卍 불교 교리 강좌

보시한다고 가세가 기울지 않는다.

갓바위 2024. 11. 14. 11:55

 

 

보시한다고 가세가 기울지 않는다.

 

살기가 어려워서 도울 수 없다는 건 핑계

​부처님께서 마가다국에서 유행하실 때의 일이다.

마침 흉년이 들어 세간의 살림살이가 매우 곤궁했다.

 

하지만 부처님을 따르는 대중들은 비구가 1250인이었고,

우바새가 1000명이었으며, 걸식하는 사람이 500명이나 되었다.

부처님은 이 대중들을 데리고 이 마을에서 저 마을로 유행하시다가

어느 날 나라(那羅)라는 마을에 있는 호의암라원(好衣菴羅園)에 이르셨다.

​이 마을의 촌장은 외도 니건(尼)의 제자였는데 흉년에 2000명이

넘는 대중이 찾아오자 걱정이 되었던지 스승 니건을 찾아갔다.

니건은 촌장의 방문을 받고 부처님을 난처하게 할 처방을 일러주었다.

즉 부처님께 찾아가 “항상 모든 집이 복과 이익을 두루 갖추고 더욱 풍요로워

지기를 기원하며, 이와 같은 서원을 세우고 말하는지” 물어보라고 했다.

만약 부처님이 그렇지 않다고 한다면

“그대가 어리석은 범부와 다를 것이 무엇인가?”라고 다그치라 했다.

또 부처님이 그렇게 서원한다고 말하면

“어찌 지금처럼 흉년든 때에 세상을 유행하고 다닙니까?

 

1250비구와 1000명의 우바새와 500명의 걸식인을 데리고 마을에서

마을로 다니는 것은 마치 큰 홍수가 나고 큰 우박이 쏟아지는 것과 같아서

사람들에게 손해를 끼칠 뿐 세상을 유익하게 하는 일이 아닙니다”라고

반문하며 말과 행동이 모순됨을 따지라고 했다.

그렇게 하면 부처님은 말할 수도 없고 말하지 않을 수도 없는

곤경에 빠지게 된다는 것이다. ​니건의 계략은 난처한 질문을 통해

부처님은‘공양 받을 자격(應供)’이 있다는 인식을 무력화시킴으로써

비구들에게 시주하는 것을 피해보자는 속셈이었다.

촌장은 부처님을 찾아가 문안을 올린 다음 니건의 지시대로 물었다.

그러자 부처님은 “여래는 오랜 세월 동안 모든 가정에 복과 이익이

늘어나기를 원하고, 항상 그렇게 되도록 기원한다”고 답했다.

 

촌장은 예정된 대답이 나오자 그런 서원을 세우신 분이

흉년에 수많은 대중을 이끌고 마을을 찾아오는 것은

사람들에게 폐해만 끼칠 뿐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러자 부처님은 “91겁 동안 내려오면서 비구에게 보시한 것 때문에

가산을 탕진하고 망하는 것을 보지 못했다”고 말씀하셨다.

그리고 돈과 재물이 많고 권속들이 많은 큰 부자들은 하나 같이 오랫동안

보시 베풀기를 좋아하고 적정(寂靜)한 곳에 머문 집들이라고 말씀하셨다.

가산이 탕진되는 것은 “왕으로부터 위협을 받거나,

도둑들에게 약탈당하거나, 불에 타거나, 물에 떠내려가거나,

창고가 무너지거나, 빚을 돌려받지 못하거나, 원수에게 빼앗기거나, 못된 자식이

낭비하거나, 무상한 것”과 같은 아홉 가지 이유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이런 인연을 제쳐두고 ‘사문 고오타마는 남의 집을 망친다.’고 말하는 것은

잘못이며, 그 같은 나쁜 말과 소견은 마치 쇠창을 물에 던지는 것과

같아서 몸이 부서지고 죽은 뒤에 지옥에 떨어질 것이라고 하셨다.

 

부처님의 말씀을 듣고 온 몸의 털이 곤두서는 두려움을 느낀

촌장은 자신의 잘못을 사죄하고 물러갔다.

​잡아함 32권에 실린 이 내용은 가뭄과 흉년이 드는 시기에

수많은 대중을 이끌고 유행하셨던 부처님이 어떤 고난을 당했는지 짐작케 한다.

 

그리고 1000명의 우바새와 500명의 걸식인이 함께 했다는 대목은

흉년으로 곤궁해진 사람들이 부처님을 따라 다니며 연명했음을 보여준다.

​그러나 이 경전의 메시지는 지금은 살림이 어려우니까 보시하거나

남을 도울 수 없다는 사람들의 심리를 경책하는 것이다.

 

재산을 모으지 못하거나 가산을 탕진하는 것은 부처님께서

나열하신 이유 때문이지 보시하고, 가난한 이웃을 도와서가 아니다.

우리는 보시를 행해야 할 순간에 자신의 어려움과 처지를 핑계로 삼는다.

그러나 우리를 부끄럽게 하는 것은 나보다 못한 사람들도

남을 돕는데 아무런 모자람도 없다는 사실이다.

부처님의 말씀처럼 보시하는 것 때문에 가산이 탕진되는 일은 없다.

참답게 복락을 누리는 삶은 언제나 삼보를 공양하고

어려운 이웃을 위해 보시하는 삶이기 때문이다.

​서재영 / 불교학자 / 불교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