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동 슬픔 ~찡한글

부부 도장

갓바위 2025. 11. 20. 21:41

 

 

부부 도장

 

그 흔한 자식 하나 낳지 못하는 불임부부로 아내와 15년을 살아내면서

포기는 하는 게 아니라 되는 거라는 말을 책에서 읽은 기억을 따라

부부로서 살아갈 의미를 잃어가는 나에게 더 좋은 핑곗거리는

못다 한 공부를 하겠다며 별거를 선택하는 거였다

 

겉으로 보이는 건 정상적인 관계로 남겨둔 채.... 나뭇잎들도 추워서

벌벌 떨고 있는 겨울의 아침 잠시 멀어짐이 이별이 되어가고 있던

어느 날 숨 가쁘게 걸려온 전화를 받고 난 병원으로 달려가고 있었다

 

당신을 만난 행운이 행복이 될 수 없었다는걸 되뇌이면서...

“선생님... 아내의 기억이 돌아올까요?“

“일단 환자 본인에게 잊혀진 기억을 강제로 끄집어내게 하는 건

영원히 기억을 못 돌아오게 할 수도 있어요 그러니...“

 

“그 말씀은 제가 남편이란 걸 밝히지 말라는 말씀이신 거죠?”

사랑하는 사람이 하루빨리 기억을 찾아내 주길 바라는 것이

오히려 독이 된다는 말에 난 자신을 철저하게 가린 이방인이 되어

아내에게 다가가고 있었다

 

“ 글 쓰시고 계셨네요?”

"기억을 더 잃어버리기 전에 기억나는 대로 이름을 써보는 겁니다“

“차성민..” “차성민이 누구예요?“ “모르겠어요. 그냥 손이 그렇게 움직여졌어요”

아내의 입에서 되뇌어져 허공으로 뱉어진 이름 하나에 내 눈가엔

까닭을 찾은 눈물방울 하나가 몽글고 있었다

 

유일하게 기억하는 이름 하나를 끄집어낸 자신에게 환한 미소를 보내고 있던

아내는 더는 아무것도 기억나지 않는 듯 펜을 내려놓은 뒤 종이만 뚫어지게

바라보고 있을 때 난 그 종이위에 또 다른 이름 하나를 쓰고 있었다

 

이선혜..... “이 이름도 제가 기억해야 할 사람인가요?”

본인의 이름조차 기억하지 못하는 아내가 유일하게 떠올린 이름 하나...

그렇다 돌아보면 좋은 사람이었다고... 아니.. 말이 떨어지기도 전에

원하는 걸 가져다 주는 아내였다고 기억해주고 싶어서일까

 

입에서 나오는 대로 말했던 지난 날들을 떠올리며

난 가슴으로 말하지 못한 걸 후회하고 있었다

결국 아내의 기억이 돌아오면 각자의 자리로 돌아가야 한다는 걸

 

알고 있는 난 지금의 아내에게 필요한 건 시간이란 걸 알아가며 뭔가

잡힐 듯 잡히지 않는 기억의 뿌리를 찾아 해와 달을 건너다니던 어느 날 오후

“ 저기 저 보라색 꽃 이름 기억나세요?‘ ” “...............“

 

우리가 예전에 주말마다 산책할 때 늘 함께 바라보던 그 꽃이 준 기억을

잃어버린 아내에게 그 옛날 자주 했던 말들을 꺼내놓고 있었다

“저기 저 해수화란 꽃은 꽃이 필 수 있게 저 잎들이 햇살과 바람을

알아서 막아준대요 꽃이 시들고 난 뒤에도 늘 그렇게 지켜주면서요“

 

"그렇군요....“ “저 해수화처럼 우리 인간도 시들어 이 세상을 떠나고 난 뒤

누군가의 그리움으로 남는다는 건 행복한 일 아닐까요?“

나는 서로의 갈등을 이혼이라는 걸로 단제하려고만 했지 지속적인 남편의

역할을 통해 용서하는 방법을 외면했던 자신에게 모진 채찍질을 하고 있었다

 

“제게도 이혼한 아내가 있었어요” “ 아내분은 좋은 사람이었나요?“

“네 무척 좋은 사람이었죠” 제 설움으로 피고 지는 꽃들을 보며

가슴속 깊이 새겨놓은 이름 하나에 남은 기억을 떠올리려 애쓰는

아내에게 난 미리 준비한 물건 하나를 내보이고 있었다 “부부 도장“

 

우리 둘 하나 되자고 맹세하던 날 이 도장에 새겨진 글자들처럼

결혼 안에서 행복을 찾자며 첫 시작을 알려주던 그 도장을 신기한 듯

두 손으로 감싸지고 있는 아내를 보며 먼 훗날 우리 사랑이 희미해질

때마다 이 도장으로 서로의 가슴에 새롭게 새겨 넣자며

맹세하던 그 순간을 떠올리며 난 말을 이어가고 있었다

 

“ 그때 제가 아내에게 한 말이 있었어요" '............."

“사랑에 상처가 나면 이별이 되고 아물면 그리움이 된다고..."

“두 분은 사이가 좋은 부부였나 봐요..?”

 

“결혼이 이 도장처럼 마음에 하나하나 사랑을 새겨넣는 거라면

이혼은 그 새겨놓은 마음을 하나하나 포장하는 거래요“

“뭘로?“ “아픔으로.. 그리움으로... 외로움으로“

 

3월의 끝자락 부부라는 내 마음의 조각하나를 서로의 가슴에 새겨넣으며

아내에겐 들리진 않지만 내 가슴엔 다시 시작이라는 단어를 떠올리고 있었다

인연은 붙잡아야 운명이 된다며...

 

펴냄/노자규의 골목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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