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밭 ~ 행복한가

진심으로 경청하는 사람

갓바위 2026. 3. 1. 12:28

 

진심으로 경청하는 사람

 

우리가 어떤 것을 제대로 느끼고 싶다면,

결국 시간이라는 재료를 조금씩 나누어 써야 합니다.

 

책 한 권을 읽어 내려갈 때도 첫 장을 넘기며 서서히 마음이 열리기를

기다려야 하고, 영화 한 편을 온전히 보기 위해 두 시간 동안 화면 앞에

머무르는 집중이 필요합니다. 그렇게 시간을 기꺼이 내어주어야 비로소 작품 속에

숨어 있던 낯섦, 설렘, 예기치 않은 감정들이 우리에게 다가옵니다.

 

아무것도 투자하지 않으면 예술 역시 우리에게 아무것도

건네지 않는다는 사실을 어른이 되며 점점 깨닫게 됩니다.

 

요약된 책, 짧게 끊어 편집된 영상, 후렴만 반복되는 음악은 빠르고

간편하지만, 마음의 가장 깊은 곳까지 닿기에는 어딘가 부족합니다.

결국 예술은 ‘시간을 함께 견디는 일’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창작자가 오랜 시간을 들여 만든 세계를, 우리가 천천히 따라

들어가며 받아들이는 과정에서 비로소 의미가 생기니까요.

그래서 저는 이 경험이 삶의 모습과 아주 닮아 있다고 느낍니다.

 

어떤 사람은 이렇게 말하기도 합니다.

 “예술 같은 거 없어도 잘 살지 않나요? 지금 버티는 것도 벅찬데요.”

 그 말 안에도 충분히 타당한 진실이 있습니다.

 

우리는 분명 예술 없이도 하루를 살아낼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 충분한가? 라고 묻는다면 생각이 조금 달라집니다.

 

잠깐의 감동, 누군가의 생각에 귀 기울이는 순간, 설명할 수 없는 울림이

찾아올 때 그런 경험들이 없는 삶이 과연 풍요롭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저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시간을 견뎌내는 경험은 결국 삶을 이해하는 연습이기 때문입니다.

특별할 것 없는 하루를 다시 바라보고, 스쳐 지나가는 감정에

이름을 붙여보고, 타인의 말을 듣고 나의 자리를 조금 넓혀 보는 과정.

이런 사소한 시도들이 모여 결국 우리를 더 인간답게 만들어 줍니다.

우리는 살아가며 수많은 것들을 경험하지 못한 채 지나갑니다.

그래서 더더욱 서로가 필요합니다. 내가 모르는 길을 걸어온 사람,

내가 느껴보지 못한 감정을 겪은 사람, 나와 전혀 다른 방식으로 생각하는

사람이 곁에 있을 때, 우리는 비로소 자기 세계 바깥을 바라볼 수 있습니다.

 

한 사람의 시간과 또 다른 사람의 시간이 만나 이어질 때 관계는 넓어지고

마음은 깊어집니다. 예술도, 사람도 결국 이런 방식으로 우리에게 스며듭니다.

 

그래서 저는 마음으로 경청하는 사람들이 많은 세상에서 살고 싶습니다.

성급하게 판단하지 않고, 상대의 삶을 함부로 단정 짓지 않으며, 복잡한 감정을

있는 그대로 인정할 줄 아는 사람들. 그런 사람들이 있는 공간은 언제나 따뜻

합니다. 말보다 마음이 먼저 흐르고, 논리보다 이해가 천천히 쌓이는 곳이니까요.

 

살다 보면 귀를 닫고 싶을 때가 분명히 있습니다.

누군가의 말이 무겁게 느껴지고, 내 마음마저 정리되지 않아 제대로

표현할 수 없을 때도 있죠. 하지만 이런 순간일수록 더 천천히 듣고,

더 오래 머물러주는 태도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진정한 경청은

귀로 듣는 행위가 아니라 마음 한쪽을 내어주는 행위이기 때문입니다.

 

이 글을 읽는 지금 이 순간만큼은, 잠깐 호흡을 고르고 오늘 하루를

되돌아보셨으면 합니다. 스쳐 지나간 대화 속에서 놓친 표정은 없었는지,

내 마음이 들려주고 싶어 했던 말은 무엇이었는지 살짝 들여다보면 좋겠습니다.

경청은 특별한 기술이 아니라, 잠시 멈추어 서서 마음을 열어두는 태도니까요.

 

부디 우리 모두가 서로의 시간과 감정에 귀 기울여 줄 줄 아는

사람들과 함께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런 세계라면, 삶이 우리에게 주는 무게도 조금은 더 부드러워질 테니까요.

 

행복한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