卍 ~불교 상식

불교용어 해설

갓바위 2008. 11. 14. 11:30




 

중생(衆生)

중생이란 말은, 원래 산스크리트어의 사트바(sattva)에서 온 말이다.

이 사트바란 말은  중국에서 중생 또는 유정(有情)이라 번역했다.

중생이란 말의 의미는 ‘여럿이 함께 산다’ ‘많은 생을 윤회한다’는 뜻으로서
생명이 있어 움직이는 모든 생명체를 일컫는 말이다.

그러므로, 인간을 비롯하여 이 세상의 모든 생명체는
모두 이 중생이라는 말 속에 포함된다.

또 ‘유정’이라 번역할 경우 그 의미는 ‘정(情)이 있는 것’이다.

이 세상의 모든 생명체는 하나 같이 사랑하기도 하고 미워하기도 하고
애증의 감정을 가지고 있다.

그러므로, 유정이라 번역할 경우에는 주로 사트바의 내적인 뜻을 강조한 것이다.

그러나, 중생이라 번역할 경우에는 사트바의 외적인 뜻의 강조로서 생명체와 생명체의
일반적 연관관계에 역점을 둔 것이다.

부처님의 법문은 인간 뿐만 아니라, 생명체를 가진 모든 것들을 상대로 했기 때문에
불교에서는 모든 사람들이 아니라, 일체 중생이라 쓰는 것이다.

모든 생명의 존엄성을 깊이 투시하는 불교의 특징이 여기 이 중생이라는
낱말에서도 여실히 나타나고 있다.


윤회

범어 삼사라(samsara)에서 나온 말로서, 업에 따라서, 죽었다가 나고 났다가 죽어
몇 번이고 이렇게 반복함을 의미한다.

세상의 물질이나 힘은 어느 것이고 아주 없어져 버리는 것이 하나도 없다.

오로지 우주질서, 즉 인과(因果)의 법칙에 따라 상의 상관하면서 변하여 갈 뿐이다.

마치 물이 수증기가 되고 구름이 되고 비로 내렸다가 다시 물로 수증기가 되듯이,
모든 것은 고정 불변함이 없이 인연따라 돌아다니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의 업식(業識)도 육체가 분해될 때에 육체에 따라 아주 없어지는 것이 아니다.

모든 중생들은 온갖 생각이 일어났다 꺼졌다 하므로쉴새 없이
애증과 희로애락속에 오르내린다.

그러다가 육신이 죽으면 생전에 지은 업력(業力)에 따라 육도(六道) 즉, 천상. 인간. 수라.
지옥. 아귀. 축생으로 수레바퀴 돌듯 돌아다니게 된다.

또한 죽은 후 뿐만 아니라, 갈등과 모순 속에 살고 있는 현재의 삶 자체가 윤회인 것이다.

그러나 자기 성품을 깨쳐 일어났다 꺼졌다 하는 갈등과 무지가 없게 되면
윤회는 끊어지고 해탈한다.
 

보살( Boddhisattva)

불교의 이상적인 인간상을 말하는 것으로 각유정(覺有情)이라 한역된다.

각유정이란 ‘깨달은 중생’을 뜻한다.

‘깨달은 중생’이라는 이 말에는 두 가지 의미가 담겨져 있다.


그 두가지 의미란 무엇인가

첫째, 상승의 의미로서 ‘깨달음’ 즉, 부처님이 되기 위하여 부단히 정진한다는 것이다.

 둘째는 하강의 의미로서, 중생들을 제도하기 위하여 깨달음을 얻은 그 자신이
중생화한다는 뜻이다.

다시 말하자면 울고 웃고 괴로와 하는 이 삶 속으로 들어와 중생들과 함께
고락을 같이 하면서 때로는 친구가 되기도 하고, 애인이 되기도 하면서
우리로 하여금 저 영원의 세계, 깨달음의 세계로 상승하게 한다는 것이다.

어떤 의미에서 보살은 불교의 근본 사상을 나타내는 말이다.

불교의 가르침은 중간자의 구현이다.

중간자란 영원(부처의 세계)과 순간(중생의 세계)을 연결하는 중간에 있는 자라는 뜻으로서
순간을 끌어서 영원의 세계로 가게하는 교량 역할을 하는 것이다. 이 중간자가 바로 보살이다.

여신도들을 보살이라 부르는데 이는 보사(保寺 ; 설을 보호하는 사람)라는 말을
잘못 쓰고 있는 것이다.

그것은 보살님과 보사님이 발음상 유사하기 때문에 일어나는 혼동이다.

‘보살’의 의미는 ‘성자’의 의미와 통한다.

‘성자’의 의미가 막연하고 포괄적이라면 ‘보살’의 의미는 좀더 구체적이며 실질적이다.

‘성자’의 의미가 막연하고 포괄적이라면 ‘보살’의 의미는 좀 더 구체적이며 실질적이다

.’성자’라는 말 속에는 영원으로, 영원으로의 상승작용만 있을 뿐이다.

그러나 ‘보살’이라는 말 속에는 영원과 순간을 동시에 보는 상승력과 하강력의
의미가 다 포함되어 있다.

업(業)

갈마(褐磨)라 음역하면 범어 Karma에서 나온 말이다.

그 의미는 행위나 지음을 말한다.

행동으로 지은 것만이 아니라 말로나 생각으로 짓는 온갖 움직임(動作)을 업이라 하는데
이것을 신구의(身口意) 삼업(三業)이라 한다.

개인은 이 업으로 말미암아 나고 늙고 병들고 죽는 (生老病死)것이며, 여러 중생이 함께 짓는
공업(共業)으로 해서 사회와 국가와 세계가 건설되고 유지되며 쇠퇴하거나 파멸되기도 한다.

그러므로 부처님은 처음에는 나쁜 업(惡業)을 짖지 말고 착한 업(善業)만 지으라고 가르치다가,
필경에는 악(惡)과 선(善)에서도 다 뛰어나야 한다고 했다.

죄와 복에 다같이 얽매이지 말고, 생인의 가르침(진리)에까지라도 집착해서는 안되다고 한 것이다.

보통 ‘업’하면 대개가 악업만 생각하는데, 업 즉, 행위에는 10가지 좋은 업(十善業)과
10가지 나쁜 업(十惡業)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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