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사외도(六師外道)에 대하여
우리가 경전을 읽다다거나
불교를 공부하다 보면 가끔
만나는 것이 육사외도
(六師外道)에 대한 언급입니다.
고대 인도는 바라문교 근본
경전인 '베다(Veda)'라는 권위있는
경전으로 이끌어 갔습니다.
그런데 부처님 당시에는 이러한
'베다'의 권위에 도전하여 자유
사상가들이 일어났는데 이들을 '
사문(沙門)'이라고 합니다.
사문이란 범어로 스라마나
(śramanā)라고 하는데
식심(息心)ㆍ근식(勤息)ㆍ공로
(功勞) 등으로 번역됩니다.
이들은 머리를 깎고 악을 끊어
몸과 마음을 고요하게 해서
선(善)을 행하는 출가
수행자들입니다.
이들은 모두 전통적인 베다의
권위에 도전하여 개혁한다는
의미를 가진 자유로운
사상가입니다.
불교(佛敎)도 이 사문들
중의 하나입니다.
나중에 이러한 사문집단들은
점차 소멸되어 갔고 불교만이
빛을 더하였기에 사문이라 하면
불교수행자로 대표되기에
이르렀습니다.
아무튼 이러한 자유사상가들의
견해를 가진 자들이 불전(佛典)
에서는 62종으로 분류했는데,
그 중에서도 가장 권위있고
유력한 사상가는 불교(佛敎)와
육사외도 (六師外道)입니다.
육사외도는 모두 다 베다의 권위를
부인하고 바라문교에 반항하였습니다.
그들은 신흥 도시의 왕후ㆍ귀족ㆍ
부호들의 정치적 경제적 원조 하에
활약하였습니다.
그러나 부처님에 의하여 그들의
사상은 여지없이 비판되었습니다.
1. 푸라나 캇사파(Purana Kassapa)
부란나가섭(富蘭那迦葉)
이 사람은 노예출신이기도 한
푸나나 캇사파는 부처님과
신통력을 겨루어 진 경험도 있는
도덕부정론자(道德否定論者)입니다.
독단적인 윤리적 회의론자이며,
선악(善惡)은 사회적 관습에 의한
임시적인 것이며, 사람이 선행을
하든 악행을 하든 거기에 필연적
(必然的)인 응보(應報)는
없다고 주장하였습니다.
그의 사상은 선악(善惡)의
구별은 절대적인 것이 아니라
인간이 멋대로 정의한 것이며
실제로 선악(善惡)이란 없는
것이라고 주장했습니다.
그래서 살생이나 도둑질이나
사음 등의 악행(惡行)을 저질러도
그것이 인간들이 임의로 정의한
개념이기 때문에 실제로
악행(惡行)을 범한 것은
아니라고 주장했습니다.
반대로 보시와 방생 같은 선행
(善行)을 행한다 해도 역시
그것은 인간의 관념이 낳은 것이지
절대적인 선행(善行)이 아니라고
주장했습니다.
이와 같은 그의 견해는 자연히
업(業)이란 없는 것이며 업에 대한
응보(應報)도 없는 것이라는
결론에 이르게 됩니다.
그래서 불교를 비롯해서 정통적인
종교에서 인정한 업보(業報)
사상을 전면적으로 부정했습니다.
그렇다면 인간의 길흉화복은
어떻게 결정될까요?
푸라나는 그것이 인과(因果)나
운명에 의해서가 아니라 단순히
우연에 의해서 좌우된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래서 이 사람을 도덕부정론자
((道德否定論者)라 합니다.
2. 아지타 케사캄발리
(Ajita Kesakambali)
아기다시사흠바라(阿耆多翅欽婆羅)
이 사람을 단멸론적 유물론자
(斷滅論的 唯物論者),
순세파(順世派), 순세외도
(順世外道)라고도 합니다.
이 사람은 불교와 같이 물질적
구성의 최소 단위를 지ㆍ수ㆍ화ㆍ
풍(地水火風) 사대(四大)로 보고
이 사대만이 참된 실재이며
독립 상주(常住)하는
것으로 보았습니다.
사람의 일생은 지(地)ㆍ수(水)ㆍ
화(火)ㆍ풍(風) 사대(四大)의
결합과 흩어짐에 불과하며, 죽어서
화장하면 사대는 모두 본래로
무(無)로 돌아가고 영적인 것은
아무 것도 남는 것이 없기 때문에
윤회(輪廻)라는 것도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한 단멸론자
(斷滅論者)이며, 선악(善惡)에
대한 과보도 없기 때문에
이 현세(現世)의 삶이 최초이자
최후이므로 죽기 전에 잘 먹고
잘 노는 현실적 쾌락(快樂) 밖에는
인생의 목적이 없다고 주장한
쾌락주의자이자 유물론자입니다.
이러한 철학 사조를 인도철학에서
는 순세파(順世派)라고 합니다.
그는 제사ㆍ기도ㆍ교육ㆍ종교ㆍ
도덕 등 일체의 엄숙주의(嚴肅主義)
를 반대하고, 지ㆍ수ㆍ화ㆍ풍의 네
요소만이 실재한다는 유물론을
주장하며 도덕적 행위를
무력한 것으로 보았습니다.
3. 파쿠다 캇차야나
(Pakudha Kaccayana)
파부타가전연(婆浮陀迦旃延)
이 사람은 기계적 불멸론
(機械的 不滅論). 상주론자
(常住論者)입니다.
아지타의 사대설(四大說)에
의히면 고락의 감정이나 인간의
생명현상은 죽음과
함께 사라집니다.
그렇다면 고락의 감정이나 인간의
생명현상을 이루는 요소는 없다는
것이 되기 때문에, 없는 것은
생길 수 없다고 보고 4대에 고(苦)ㆍ
락(樂)ㆍ생명(生命) 3요소를
더하여 7요소를 세웠습니다.
이 세상은 절대부동 불변하는
7요소 즉 지(地)ㆍ수(水)ㆍ화(火)ㆍ
풍(風)ㆍ고(苦)ㆍ락(樂)ㆍ생명(生命)
의 집합과 흩어짐이요, 죽은 뒤에는
7요소 자체는 불변불멸(不變不滅)
이기 때문에 인생의 결정적
단멸은 없다고 주장합니다.
예를 들어 살인이란 문제를 놓고
볼 때 그는 죽이는 자도 없고,
살해되는 자도 없다는 주장을
폅니다. 즉 칼로 인간의 목을
자른다 하더라도 이것은
인간을 죽이는 것이 아니라
단지 일곱 가지 요소 사이로
칼이 지나 갈 뿐이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일곱 개의 요소는 상주
(常住)하는 것이며 생명도
영원히 상주하는 하나의
요소이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4. 막칼리 고살라 (Makkhali Gosala)
말가리구사리자 (末伽梨拘賖梨子)
말가리구사리 (末伽梨拘舍利)
극단적운명론자(極斷的運命論者).
결정론자(決定論者). 숙명론자
(宿命論者)라고 하며, 사명외도
(邪命外道)라고 불립니다.
아지비카(Ajivika)라는 교단의
교조이기도 한 막칼리는 육사외도
가운데 자이나교와 유사한 교설을
펼쳤는데 교세에 있어서도
자이나교의 니간타 나타풋타
다음가는 유력한 종교지도자
이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그의 교설은 후에 자이나
교에 흡수 통합되기도 했습니다.
모든 생물은 지(地)ㆍ수(水)ㆍ화(火)ㆍ
풍(風)ㆍ허공(虛空)ㆍ득(得)ㆍ실(失)ㆍ
고(苦)ㆍ락(樂)ㆍ생(生)ㆍ사(死)ㆍ
영혼(靈魂)의 12요소로 되어 있으며
우리들의 행동이나 운명은 모두
자연법칙에 의하여 이미 숙명적
(宿命的)으로 결정되었기 때문에
우리들의 몸이나 마음의 힘으로는
바꿀 수 없고 이미 결정된 윤회전생
(輪廻轉生)을 무수히 반복하다가
보면 미침내는 해탈하는 날이
온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는 인간이 도덕적 향상이나
타락에는 인(因)도 연(緣)도
없다고 하며 우연론(偶然論),
숙명론(宿命論)을 주장했습니다.
막칼리는 일체의 구성요소로서
12원소설을 주장하고, 그 12개의
원소 가운데는 영혼도 포함되는데
인간의 영혼도 하나의 원소로
파악했던 극단적인 유물론자입니다
또 막칼리는 인간 운명에 대해서
극단적인 결정론을 주장합니다.
생사(生死) 윤회(輪廻)하는 것은
불교의 경우에는 모두 인과(因果)
업보(業報)에 의한 것으로 보지만
막칼리 고살라는 아무런 원인도
없고 또 어떤 결과도 초래하지
않는다고 하는 무인무연
(無因無緣)론을 펼칩니다.
인간의 의지작용으로 이룰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는 것이며,
모든 것은 이미 결정되어
있다는 결정론자였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수행을 통해서
해탈(解脫)한다는 것도
불가능하다고 보았습니다.
모든 인간은 8백 40만 겁을
윤회하는 동안 고(苦)가 저절로
없어져서 스스로 해탈
한다는 주장을 폈습니다.
이처럼 막칼리는 인간이
자기 운명을 개척한다는 것은
전혀 불가능한 것으로 파악했습니다.
그래서 막칼리 고살라는 의지(意志)의
작용을 부정한 최초의
사상가로 손꼽히고 있습니다.
5. 산자야 벨라티풋타
(Sanjaya Belatthiputta)
산사야비라지자 (刪闍耶毘羅胝子)
회의론자(懷疑論者). 불가지론자
(不可知論者). 기분파(氣分派)입니다.
그는 어떠한 질문에 대하여서도
명확한 답변을 회피(回避)하는
불가지론자(不可知論者)입니다.
형이상학 문제에 대하여서는
일체의 판단을 중지하던가 혹은
그때 그때의 경우에 따라 제각기
제대로의 소신 대로 말하면
그것이 곧 진리하고주장합니다.
그는 철저하게 감각적인 경험
(經驗)만으로 판단합니다.
당시의 사문(沙門)들은 감각적이고
현실적인 경험에 의지하여 업보
(業報)와 내세(來世)를 부정하고
있는데, 그런 내세가 있는지
없는지 아느냐는 것입니다.
그는 이렇게 철저하게 감각적이고
현실적인 경험에만 의존하기
때문에 진리 그 자체가 있다는 것을
의심하는회의론에 빠져 있습니다.
그래서 산자야는 인도철학사에서
최초의 회의론자로꼽히고 있습니다.
산자야 문하에는 사리자(舍利子)와
목련(目連)이라는 뛰어난 제자가
있었는데 어느 날 길에서 부처님의
제자 마하남을 만났는데 그의 단정한
모습에 반하고,깊은 법에 대한
질문을 한 후 감동을 받아 곧바로
자신들이 이끄는 250명의
제자와 함께 귀의하게 되는데
이 소식은 산자야에게는
엄청난 충격이었습니다.
이 소식을 들은 산자야는
피를 토하고 죽었다고 합니다.
사리자와 목련은 불교에 입문한 후
사리불은 지혜제일, 목련은
신통제일로 명성이 자자했고
부처님의 신망이 두터운 제자였습니다.
6. 니간타 나타푸타
(Nigantha Nathaputta)
니건타야제자(尼乾陀若提子)
니건자(尼犍子)
극단적(極端的)인 고행(苦行)과
불살생(不殺生)을 주장하는
윤리적 엄숙주의자
(倫理的 嚴肅主義者)입니다.
니간타는 본명이 바르다마나인
왕족출신으로, 혼란한 사회를
구원할 생각으로 출가하여,
스스로 진리를 깨달은 후
마하비라(Mahavira 大勇)라
불리는 자이나교의 교주입니다.
심신의 속박으로부터 벗어나는 것을
목적으로 고행하는 일파를 '
니간다파'라고 불렀습니다.
마하비라는 이 니간다파에 들어가
고행하며 깨쳤으므로 지나
(Jina 勝者)가 되었다고 하여
그의 교단을 '자이나'라고
부르게 되었습니다.
자이나교와 불교는 교리 용어,
교조의 연대, 출신계급, 생존연대와
지역 등 공통 된 것이 많습니다.
고행을 엄격히 준수하고, 살생을
엄금하며, 무소유(無所有)의
계행(戒行) 때문에 나체수행
(裸體修行) 하는 공의파
(空衣派)도 있습니다.
후대에는 환경에 따른 문제로 흰옷은
입어도 된다는 백의파(白衣파)가
생기기도 했습니다.
그는 전생(前生)의 업(業)에 의해
현생(現生)에 받을 업이 결정되었기
때문에 현생에서 받을 괴로움을
받아버리고, 새로운 업을 짓지
않으면 생사(生死)의 윤회(輪廻)에서
저절로 해탈(解脫)되기 때문에
고행(苦行)을 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니간타 나타풋타는 깨달음을 얻은 뒤 '
위대한 영웅'이라는 뜻의 마하비라
(Ma havira)로 불려졌으며 자이나교의
교주로서 자이나교를 크게 발전시켰습니다.
니간타 나타풋타는 산자야의 회의론을
극복하기 위해 상대주의(相對主義)
적 인식론(認識論)을 수립하고 여기에
입각해서 이원적(二元的) 우주론을
제시했습니다. 자이나교에서는
영혼(Jiva, 命)은 물질(Pudgala)의
업(業)에 속박되어서 현실과 같은
비참한 상태에 빠졌다고 파악합니다.
그러므로 순결한 영혼인 지바를
끈적끈적한 물질로부터 해방시켜야
하는데 그 방법을
고행이라고 보았습니다.
그래서 자이나교에서는
극심한 고행이 행해졌습니다.
심지어 고행을 하다가 죽게되면
성자로까지 추앙받았다고 합니다.
이들의 종교생활은 불살생(不殺生),
불도(不盜), 불음(不淫)과 같은
철저한 계율을 지키는 한편 철저한
무소유(無所有)의 삶을 실천했습니다.
그들은 살생을 엄격히 금했기 때문에
농사마저 짓지 않았습니다.
농사를 짓다보면 작은 곤충들을
죽이기도하기 때문에 이들은
주로 상업에 종사했습니다.
이들은 오계에 철저하기때문에 신의가
두터워 인도의 상권을 주름잡고 있으며
지금도 자이나 교도들이 인도
상권을 잡고 있다고 합니다.
아무튼 자이나교는 불교와 함께 크게
발달하였고 지금도 존재하고 있습니다.
이상 육사외도에 대하여 알아 보았
습니다. 참고가 되었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