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경(寫經)에 대해서
국어사전에 보면 사경이란, 불교에서
후세에 전하거나 공양하기 위하여 경문을
붓으로 베끼는 일, 또는 그 베낀 경문을 말한다...
라고 정의되어 있습니다.
사경이란 불교 경전을 베껴쓴 것을 말합니다.
불교 성전의 필사는 불교가 수입되던 초기에는
불교를 알기 위한 단순 전사의 차원으로
시작하였으나 사찰이 세워지고
교단이 성립되면서부터는
신앙적인 의미가 부여되었습니다.
묘법연화경(이하 법화경) “보문품” 에 “약왕이여
어디서든지 이 경을 설하거나 읽거나 외거나 쓰거나
이 경전이 있는 곳에는 마땅히 칠보로 탑을
쌓되 지극히 높고 넓고 장엄하게 꾸밀 것이요,
다시 사리를 봉안하지는 말아라.
왜냐하면 이 가운데에는 이미 여래의
전신이 있는 연고이니라” 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경전을 여래의 전신사리와
같은 품격으로 취급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불교 경전은 전신사리로서 불상이나
불탑과 마찬가지로 예배 대상의 위치에
있기 때문에 사경은 부처님 사리를
대하는 자세로 필사하는 신앙 행위입니다.
또한 사경은 우선 마음을 평정하지 않으면
글자가 흐트러지게 되기 때문에 자기를
속일 수 없는 수행 방법입니다.
그러므로 사경은 산란한 마음을 없애고
통일된 정신상태를 유지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이런 자세를 계속하면 사경은
일념의 상태로 몰입하게 되는 첩경이 됩니다.
그리고 사경은 고요한 일념의 상태에 있으나
필사 자체는 움직이는 것이기 때문에
정중동의 자세가 되므로, 참선에서 나타나는
혼침 도거가 일어나지 않는 무념무상의
경지에 도달할 수 있는 수행 방법입니다.
따라서 사경은 그 과정이 수행과 신앙의식의
과정이고 여기에서 생기는 수행력으로
자리이타의 보살도를 실천하므로 선업을
쌓는 공덕이 되는 것입니다.
경을 쓰는 일은 경문 한자 한자에 지극한
마음의 자세를 갖지 않으면 안됩니다.
‘일자삼례’ 곧 한 자를 쓸 때마다 세 번 절하고
썼다는 예가 있듯이 불교 경전을 쓰는 데
얼마나 정성을 기울였는가를 알 수 있습니다.
이런 자세로 쓰면 마음이 한 곳으로 모아져서
순일화 되므로 뜻과 정신이 맑아지게 되고 삼매의
경지에 들어가게 되는 것입니다.그러므로
사경은 그대로 염불이고 참선의 수행이 됩니다.
이런 자세에서는 글씨의 잘 쓰고 못 쓰는 것에
구애될 필요가 없습니다.
중요한 것은 마음 자세입니다.
마음 자세만 제대로 갖추어지면
당장이라도 시작할 수 있는 것입니다.
경전은 부처님 말씀입니다. 부처님 말씀은
진리이므로 사경을 한다는 것은
진리를 쓰는 것입니다.
경전을 선택하여 사경을 시작하는
일은 보석을 찾아내어 캐서 주워담는 일을 시작하는
것입니다.바로 법열을 맛보는 신나는 일이 됩니다.
이렇게 하기 위해서는
조그마한 정성만 가지면 됩니다.
흰 종이에 한자씩 써 내려가면 됩니다.
한자 한자는 개체의 글자이지만 모두 쓰고나면
진리의 말씀입니다.
흰 종이는 자기의 마음입니다.
이 깨끗한 마음에 진리의 말씀을 새겨 나가는
것이 됩니다. 진리는 결국 마음에 있는 것입니다.
자기 마음의 바탕에
진리를 새겨 나가는 작업이 사경입니다.
흰 종이는 극락 세계입니다.
이 극락 세계는 진리로 가득 찬 세계입니다.
그러므로 사경을 하면 자기 마음을
극락 세계로 만드는 것이 됩니다.
사경하고 있는 동안 무아의 경지에서
모든 신경을 붓끝에 집중하도록 해야 합니다.
조용한 마음으로 잡된 생각 모두 잊고
쓰노라면 마음은 저절로 청정하게 됩니다.
사경은 필사 자체의 자세에 있는 것이지 필기 도구나
글씨의 잘 쓰고 못 쓰고에 구애될 필요는 없는 것입니다.
사경은 몸과 마음을 깨끗이 하고 정성을
다하여 자기 수행의 과정으로 하면 됩니다.
사경은 부처님의 말씀을 새기고 익혀
실천하는데 그 궁극적인 목적이 있습니다.
따라서 사경의 과정은
바로 수행의 과정이 됩니다.
사경은 새로운 업을 쌓아가는
과정에서 비롯된 신앙적인 행위입니다.
옛부터 쌓아온 업의 벽이 두터워도 부처님의
참된 삶에 대한 지혜를 알고 실천하면 구업은
얼음이 눈녹듯 녹아버리고
새로운 선업을 쌓게 되는 일인 것입니다.
<법화경> 제 4품인 법사품에 보면 “어떤 사람이
법화경의 한 구절이라도 받아 지니고 읽고 외고
해설하고 베껴 쓰거나 이 경전을 공경하기를
부처님과 같이 하며 갖가지 꽃, 향, 영락, 자루 향,
바르는 향, 사르는 향, 당기, 번기,의복, 풍악으로
공양하거나 합장하고 공경한다면, 약왕이여
이 사람들은 이미 십만억 부처님께 공양하였고,
또 여러 부처님 계신 곳에서 큰 서원을 성취하고
중생을 어여삐 여겨 이 인간 세계에
난 줄을 알아야 하느니라”고 했습니다.
여기에서 사경에 대한 공덕은 (사경뿐만 아니라
읽고 외고 해설하는 일이나 경전을 공경하는 일)
십만억 부처님께 공양한 것과 같은
공덕이 있음을 말하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이러한 사람은 큰 서원 곧 불도를
성취하고 중생을 위하여 이 세상에
온 것이라고 하여 적극적으로
신앙적인 실천을 전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법화경> ‘권발품’에는 법화경을
서사하면 도리천에 태어날 수 있다고 하였습니다.
이처럼 서사가
공덕이 큰 것임을 말하고 있습니다.
사경공덕은 필사자의 입장에서
크게 두 가지로 볼 수 있습니다.
하나는 자신의 신앙행위로 수행과
실천행으로 얻어지는 공덕이고,
다른 하나는 불법을 널리 알리고 경전을
후세에 전하는 유통이란 면에서의 공덕입니다.
경전을 전하는 것은 인쇄술이 발달한 뒤에
의미가 조금 줄어든 느낌도 있지만 전법의
공덕이므로 필사자가 경전을 익히면 자연히 다른
사람에게 전법이 되기때문에 공덕이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참된 불사에는
자리이타의 공덕이 함께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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