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곡화상(白谷和尙)
(1617∼1680)
조선 후기의 고승. 성은 김씨.
자는 신수(愼守). 호는 백곡(白谷). 12세에
의현 (義賢)에게 글을 배우다가 불경을 읽고
그 깊은 이치에 감동하여 출가를 결 심하였고,
15세에 승려가 된 뒤 다시 신익성(申翊聖)으로부터
경사(經史) 및 제자(諸子)와 시문(詩文)을 배웠다.
그 뒤 지리산 쌍계사(雙磎寺)의 각성(覺 性)을
찾아가 23년 동안 수선(修禪)과
내전(內典)을 익혀 그의 법을 이어받았다.
1674년(현종 15) 김좌명(金佐明)의 주청으로
팔도선교십육종도총섭(八道 禪敎十六宗都摠攝)이
되었으나 곧 사퇴하고 속리산·청룡산(靑龍山)
·성주산 (聖住山)·계룡산 등지에서 산림법회
(山林法會)를 열어 후학들을 지도하였으 며,
가장 오래 머물렀던 사찰은 대둔사(大芚寺)의
안심암(安心庵)이었다. 한 편 현종의
척불정책(斥佛政策)에 대하여 전국 승려를 대표하여
<간폐석교소 (諫廢釋敎疏).를 올렸고,
1680년 금산사(金山寺)에서
대법회를 열고 그해 7월 에 입적하였다.
그는 한참 위축되어 있던 조선시대의
승단을 대변하여 호불 간쟁(護佛諫諍)에
앞장섰던 고승이다. <간폐석교소>를 통하여
불교를 존박하 는 근거가 승단의 재력과 인력의
소모를 내세울 뿐, 이론적인 타당성을 제시 하지
못하는 점을 논파하였 裏 특히 중국의
대유(大儒)들이 오히려 불교 이 론을 깊이 통달한
점을 열거하여 폐불의 부당성을 항변하였다.
더나아가서 유교적 요소로서 불교를 이해하려는
원융적(圓融的) 태도를 보여, 유교의
성 명설(性命說)·인의설(仁義說)을 그대로
불법을 설명하는 방편으로 삼았다.
역대 승가에서 보기
드문 대문장가로 평가받고 있다.
저술로는 <백곡집> 2 권과,
<임성당대사행장(任性堂大師行狀)>
1권이 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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