卍 ~불교 상식

무학대사 자초(無學大師 自超)

갓바위 2015. 6. 12. 09:30
무학대사 자초(無學大師 自超)
 (1327∼1405)
조선초기의 고승. 성은 박씨. 
호는 무학(無學), 당호는 계월헌(溪月軒). 
삼기 (三岐 : 경상남도 합천군 삼가면) 출신. 
인일(仁一)의 아들이다. 1344년(충혜 왕 5) 출가하여 
소지(小止)의 제자가 되었으며, 혜명국사(慧明國師)로
부터 불 법을 배우며 부도암(浮屠庵)에 머물렀다. 
1346년(충목왕 2) <능엄경>을 
보다 가 깨우친 바가 있었다. 
그때부터 진주(鎭州) 길상사(吉祥寺), 묘향산 
금강굴 (金剛窟) 등에 머무르면서 불도를 닦았다. 
1353년(공민왕 2) 원나라 연도(燕 都)로 가서 
인도승 지공(志空)을 만나 도를 인정받았다. 
이듬해 법천사(法泉 寺)에서 나옹(懶翁)을 만났는데, 
나옹은 그가 큰 그릇임을 간파하였다. 
그뒤 무령(霧靈)·오대산 등을 거쳐 서산(西山)의 
영암사(靈巖寺)로 나옹을 찾아갔 으며 
그곳에서 몇 해를 머무르면서 수도하였다. 
1356년 나옹을 하직하고 귀 국하였으며,
 나옹 역시 귀국하여 
천성산 원효암(元曉庵)에 머물렀다. 
1359년 다시 나옹을 찾아가자 나옹은 
법을 전하는 표시로 불자(拂子)를 주었다. 
그뒤 나옹이 신광사(神光寺)로 자리를 옮기자 
찾아갔다가, 그곳 대중 속에 그를 꺼 리는 
사람이 있음을 보고 고달산(高達山)에
 들어가 암자를 짓고 살았다. 
1376 년(우왕 2) 회암사( 輦輹躬를 크게 중창한 
나옹은 그를 불러 수좌(首座)로 삼 고자 하였으나 
굳이 사양하였다. 그해 나옹이 입적하자 전국의 
명산을 유력 (遊歷)하면서 자취를 감추었으며,
 공양왕이 왕사로 삼고자 하였으나
 끝내 응 하지 않았다. 
1392년(태조 1) 겨울, 태조는 그를 왕사로 책봉하고 '
대조계종사 선교도총섭 전불심인 변지무애 
부종수교 홍리보제 도대선사 묘엄존자
(大 曹溪宗師 禪敎都摠攝 傳佛心印 辯智無碍 
扶宗樹敎 弘利普濟 都大禪師 妙嚴尊 者)
'라는 호를 내렸다. 
이때 태조에게, 유교는 인(仁)을 말하고 불교는 
자비를 가르치지만 그 작용이 하나라는 것과, 
백성을 자식처럼 보살필 때 백성의 어 버이가 되고
 나라는 저절로 잘될 수 있음을 설법하였다. 
그리고 죄를 지어 옥에 갇힌 사람들을 용서하여
 새로운 삶을 열어줄 것을 청원하였다.
 태조는 그 청에 따라 죄수를 방면하였고, 
그를 회암사에 머무르게 하였다. 
1393년 왕도(王都)를 옮기려는 태조를 따라 
계룡산과 한양 등을 돌아다니며 지상(地 相)을 보고, 
마침내 한양을 도읍으로 정하는데 찬성하였다. 
1397년 태조의 명으로 회암사 북쪽에 수탑(壽塔)을 
세웠으며, 1398년 용문사(龍門寺)로 들어가서 살았다.
1402년(태종 2) 왕명을 받아 회암사로 옮겼으나, 
이듬해 다시 사 퇴하고
 금강산 진불암(眞佛庵)으로 들어갔다. 
1405년 금강암으로 옮겨 그곳에 서 나이 78세,
 법랍 62세로 입적하였다.
 저서로는 <인공음(印空音)>1권이 
있 었다고하나 전하지 않으며, 
<무학대사어록(無學大師語錄)>
1권도 발견되지 않 고 있다. 
현존하는 분명한 저서로는 
<불조종파지도(佛祖宗派之圖)>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