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구니의 왕생(尼僧往生)
연지대사 왕생집 4권
대명(大明) 비구니
수(隋) 대명 비구니는 방에 들어가
예념(禮念)할 때마다
먼저 깨끗한 옷으로 갈아입고
입에 침향(沈香)을 머금었다.
문제(文帝)의 왕후가 매우 가까이 하였다.
죽는 날, 침향이 방에 가득하더니, 잠시 후에
광명이 구름과 같이 일며 은은히 서쪽을 향해
사라지는 것을 온 대중이 보았다.
찬(贊)
어떤 비구는 <법화경>을 독송하여 후에
영이(靈異)한 과보를 감응했고,
또 어떤 스님은 <지장경>을 독송하여
수특(殊特)한 예우를 받았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아무도 괴이쩍게 여기지 않는다.
그러나 요즘 염불하는 자로서 과연 몇
사람이나 명(明)과 같이 하는 자가 있는가?
누구라도 이렇게만 염불한다면 천이면 천 사람,
만이면 만 사람, 누구라도 왕생하지 못할 자가 없다.
정진(淨眞) 비구니
당(唐) 정진 비구니는 장안 적선사(積善寺)에
살면서 누더기를 걸치고 걸식하며
<금강경> 10만 번을 독송하며
일심으로 염불하였다.
어느날 제자에게 “다섯 달 동안에 열 번이나
부처님을 보았고 두 번 보련화(寶蓮花)
속에서 동자가 뛰노는 것을 보았다.
나는 이미 상품(上品)을 얻었다.” 하고는,
가부좌하고 죽었다.
상서로운 광명이 암자에 가득하였다.
오성(悟性) 비구니
당(唐) 오성 비구니는 여산에서
염불하며 지극히 왕생을 발원하였다.
어느날 홀연히 공중에서 들려오는 음악
소리를 듣고 곁에 사람들에게 “나는 이제
중품(中品)에 왕생하게 되었다.
함께 염불정진하던 이들이 모두 연꽃 속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는 것을 보았다.
너희들도 노력하라.” 하고는 갔다.
찬(贊)
상품과 중품의 지위를 두 비구니가 능히
스스로 결정할 수 있었던 것은 무엇 때문인가?
첫째는 안으로 스스로 실행했던 얕고
깊은 정도를 살펴보았기 때문이요,
둘째는 밖으로 감응의 낮고 못하고를
살펴보았기 때문으로, 괜한 말이 아니다.
능봉(能奉) 비구니
송(宋) 능봉 비구니는 전당 사람으로,
정업만을 전수하였다.
어느날 부처님의 광명이 몸에 비치고
공중에서 따뜻한 말로 위로하는 소리를
꿈 꾸고, 제자들에게 “나의 왕생할 때가
이르렀다.” 하더니, 잠시 후 봉(奉)이
큰 소리로 염불하는 소리를 듣고 급히 달려
가보니, 합장하고 서쪽을 향하여 앉아서 갔다.
기이한 향기가 온 방에 가득하고
음악소리가 서쪽으로 사라지고 있었다.
법장(法藏) 비구니
송(宋) 법장 비구니는 금릉(金陵) 사람으로
일심으로 염불에 뜻을 두었던 이다.
밤에 불보살이 찾아오시고 광명이
절을 비치는 것을 보고는 갑자기 죽었다.
총론(總論)
부처님께서는 이모가 출가하려 하시자 정법이
이로 말미암아 감손하게 될 것이라고 한탄하셨다.
그러나 만약 여인으로서 출가한 자가 모두 위의 다섯
비구니만큼만 한다면 정법이 더욱 창성할 것이다.
그러나 세태란 어쩔 수 없는 것이어서,
부처님의 예언이 지나친 것은 아니었다.
아! 진정으로 출가한 남자도 요 근래에는
그다지 찾아보기 어렵거든,
하물며 여인이겠는가.
나는 유감을 금치 못하는 바이다.
출처/연지대사 왕생집
나무 아미타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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