卍 ~ 어둠속 등불

부녀의 왕생(婦女往生類)

갓바위 2015. 7. 8. 10:07
부녀의 왕생(婦女往生類) 
연지대사 왕생집 5권
수(隋) 황후 

수문제(隋文帝)의 황후는 성이 독고(獨孤)씨로써,
 비록 왕궁에 살았으나 여자의 몸이 된 것을 
매우 싫어하였다. 어느날 아미타불을
 부르다 8월 갑자(甲子)에 죽었다. 
그 때 영안궁(永安宮) 북쪽에서 갖가지 음악이
 진동하고 기이한 향기가 흘러나왔는데, 
그것은 공중으로부터 흘러오는 것이었다. 
임금이 사제사나(闍提斯那)에게 "
이것이 무슨 상서인가?" 하고 물으니, 사나는 
"정토에 부처님이 계시는데, 호를 아미타불이라고 
하십니다. 황후는 지은 업이 고결하여 
저 나라에 올라갔습니다. 
그래서 이러한 상서가 나타났을 뿐입니다.
" 하고 대답하였다. 
찬(贊) 

궁중의 귀총(貴寵)을 버리고 정토를 바래 
왕생한 이로서, 예전에는 위제(韋提)가 
있었고, 지금은 이 분을 보겠다. 

* 사제사나(闍提斯那): 
원용願勇이라고 번역. 사견외도邪見外道. 
* 위제(韋提): 승묘신(勝妙身)으로 번역. 
마갈타국의 빈비사라왕의 황후이며, 아사세왕의 어머니. 
이 위제(희) 부인의 청(請)으로 부처님께서
 <불설관무량수경>을 설하시게 되었다. 
요(姚) 노파 

당(唐)의 요 노파는 범행(范行)이라는 
노파가 권하여 염불하게 되었다. 
임종에 불보살이 와서 맞이하자 부처님에게 "
아직 범행 노파에게 고별하지 못했습니다. 
부처님 잠깐만 공중에서 기다려 주십시오." 하고 
아뢰었다. 범(范)이 오자 노파는 서서 죽었다.
찬(贊) 

갈 길이 다달아 범(范)에게 고별한 것은 근본을 
등지지 않은 것이요, 부처님이 공중에서 서서 
기다리신 것은 늘 중생의 뜻을 따르신 것이다. 
우뚝 서서 간 것도 기이한 일이다. 
온정문(溫靜文)의 처 

당(唐) 온정문의 처는 병주(幷州) 사람이다.
오랫동안 병석에서 누워지내자 정문이 권하여 
염불하게 하였다. 1년 만에 홀연히 정토를 보고, 
그의 남편에게 "저는 이미 부처님을 친견했습니다. 
다음달에는 가게 될 것입니다." 하고, 부모님에게는 
"지금 부처님을 따라 왕생하나이다. 
부디 일심으로 염불하여 후일 서방에서 
만나뵙게 되기를 바라나이다." 하고는 갔다.
호장(胡長) 노파

  송(宋)의 이(李)씨 
호장 노파는 상우(上虞) 사람이다.
  남편이 죽은 후 밤낮으로 큰 소리로 염불하고 
<미타경>을 독송한 지 무려 10여 년이나 되었다.
  하루는 어떤 스님이 비단 보자기로 닾어주면서 "
할머니는 15일 자시(子時)에 왕생할 것입니다." 하였다.
  "스님께서는 누구십니까?" 하고 물으니, "
할머니가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노파는 친지들과 고별하고, 때가 되자 
기이한 광명 속에 단정히 앉아서  갔다.
  7일 만에 화장하니, 치아는 백옥과 같고 혀는 
홍련과 같고 누동자는 포도와 같으면서
 모두 정밀하고 단단하여 깨뜨릴 수 없었다.
 사리는 헬 수 없을 정도였다.
  다음날 화장한 곳에 꽃 한 송이가 피었는데, 
마치 흰 양귀비와 같았다.
찬(贊)

몸의 여러 기관은 부서지지 않았고 사리는 셀 수 없을
 정도였다 하니, 세상에서 흔히 여자는 불결한 몸을 
가졌다는 말이 천부당만부당 하지 않은가.
정씨(鄭氏) 

송(宋)의 정씨는 전당사람이다.  날마다 
<관음경>을 독송하고 염불을 끊이지 않았다. 
  나중에 병 중에서 목욕을 하고는 서쪽을 향해 
앉아 가족들에게 "경쇠 소리가 들리느냐?
정토의 여러 성인들이 장차(且) 오시려 한다."
 하더니, 얼마 후에 합장하고 매우 기뻐하며 
"불보살님이 오셨다. 관음보살님은 손에 
금대를 들고 계시고, 여래께서는 나를 이끌어 
자리에 오르게 하신다." 하고는, 즉시 죽었다.
진씨(陳氏) 노파 

송(宋) 진씨 노파는 전당사람이다. 
영지(靈芝) 율사에게서 보살계를 받고 
일심으로 염불하면서, 
하루에 천 배의 절을 하였다. 
  어떤 때는 경상(經床) 위에 
사리가 흩어진 적도 있었다. 
임종에 부처님이 와서 맞이하는 것을 보고, 
곁에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다, 
채 반 시각도 안 되어서 단정하고 
의젓하게(凝然) 움직이지 않았다. 
황씨(黃氏) 

송(宋) 황씨는 사명(四明) 사람이다. 
일찍 남편을 잃고 친정에 돌아와 정업
(淨業)을 정성들여 수행하였다. 
임종에 부처님이 와서 맞이하는 것을 보고 인
(印)을 맺고는 천천히 걷다 우뚝 서서 죽었다. 
가족들이 땅에 재를 뿌리고 왕생한 곳을 
시험했더니 연화 한 송이가 재 속에서 피어났다. 
찬(贊) 

재를 뿌렸다는 이야기는 알 수 없는 일이지만, 
그가 부처님이 오셔서 맞이하는 것을 보았고, 
인(印)을 맺고 서서 갔다는 사실로써 연품(蓮品)
에 올랐다는 사실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왕씨(王氏) 부인 

송(宋) 형왕(荊王)의 부인 왕씨는 
정업을 전수하여 밤낮을 잊을 지경이었다. 
곁에서 모시는 자들이 그를 본받지 않는 이가 
없었으나, 오직 한 첩만이 게을러 부인이
 나무라자 마침내 크게 깨닫고 정진하더니, 
갑자기 병 없이 죽었다. 
  다른 첩의 꿈에 나타나 "부인의 가르침을 
입어 이미 안양에 왕생하였소." 하고
 말하였으나 부인은 믿지 않았다. 
얼마 후 부인의 꿈에 그 첩과 함께 보배의
 연못을 여행하게 되었다. 어떤 꽃을 보니 
하늘 옷이 휘날리고 있었는데 양걸(楊傑)이라고 
적혀 있었다. 어떤 꽃에는 조복(朝服)을 입고 
앉아 있었는데 마우(馬圩)라고 적혀 있었다. 
  다시 금대를 바라보니 광명이 휘황하였다. 
첩이 이곳을 가리키며 "부인께서 
태어날 곳입니다." 하였다. 
꿈에서 깨어나서는 더욱 정진에 힘썼다. 
81세 나던 생일날, 새벽에 촛불을 들고 향을 
피운 채 관음각(觀音閣)을 바라보며 서 있더니, 
친지들이 막 차림새를 갖춰 헌수(獻壽)하려 
하자 이미 서서 죽었다. 
찬(贊) 
여기까지 여인으로 서서 죽은 자가 세 사람이나 있었다. 
금대가 휘황하였다는 것은 상품(上品)임을 알 수 있다. 
  누가 규각(閨閣: 부녀자의 거실. 곧 여인을 
뜻함)에는 그런 사람이 없다 하던가! 
풍씨(馮氏) 부인 

송(宋) 광평군(廣平郡)의 풍씨 부인은
 어려서부터 병치레가 잦았다. 
자수 심(慈受深) 선사로부터 재계염불(齋戒念佛) 
하라는 가르침을 받고는 깊이 믿고 힘써 행하여
 10년 동안을 게을리 하지 않았다. 
어느날 갑자기 세상을 싫어하여 사람들이 
괴이쩍게 여기니 "청정한 세계에서
 잘못되어 이곳에 왔다. 
사바의 인연이 다하면 서방으로 돌아갈 것이다. 
무엇이 괴이할게 있겠는가." 하였다. 
임종에 기절했다가 다시 소생하여 가족들에게 "
나는 이미 정토로 돌아갔다. 
부처님의 세계를 보니 화엄이나 <십육관경>
에서 말씀하신 것과 조금도 다르지 않았다."
 하고는 영원히 갔다. 3일 후에 시체를 들어 옮기니
 생시와 같았고, 기이한 향기가 진동하였다.
왕씨(王氏)의 딸 

송(宋) 길안(吉安)의 왕씨 딸은 미타․금강․관음 등
 여러 가지 경전을 독송하면서 염불로 안심입명
(安心立命)을 찾았다. 어머니가 죽었는데 이미 
염습을 했는데도 더러운 피가 흘러나왔다. 
딸이 "만약 제가 효성스러웠다면 더러운 냄새가 
나지 마소서." 하고 발원하니, 이내 피가 멎었다. 
아버지가 후실(後室)을 
들이자 함께 정업을 닦았다. 
나중에 병이 들어 스님에게 정토관법(淨土觀法)
을 설해 줄 것을 간청하고는, 갑자기 옷을 갈아입고 
편안히 누워 관음이 손을 들고 있던 
깃발을 잡고는 고요히 움직이지 않았다.
어머니가 땅에 재를 뿌리고 태어난 곳을 
시험했더니, 재 속에서 연꽃 몇 송이가 피어났다
주씨(周氏) 

송(宋) 주씨 묘총(妙聰)은 
주원경(周元卿)의 딸이다. 
그의 어머니가 화대(花臺)에 왕생한 상서를
 감응하고는, 자신이 새 옷을 갈아입고 
부처님의 누각 위에서 예를 드리고 염불하는 것을
 보고는, 식구들에게 "부지런히 정업을 닦으셔요. 
서방에서 기다리겠습니다." 하고는, 
오른쪽으로 누워 서쪽을 향해 죽었다.

출처/연지대사 왕생집 
나무 아미타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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