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생의 왕생
연지대사 왕생집 7권
용(龍)
<보살처태경(菩薩處胎經)>에 이런 말씀이 있다.
용 한 마리가 있었는데 금시조(金翅鳥)에게 말하기를
“나는 용의 몸을 받았으나 이제가지
살생한 적이 없이 물결 속을 희롱하고 다녔다.
그러므로 목숨이 다한 후에는 반드시 아미타불의
국토에 태어날 것이다” 하였다.
찬(贊)
자비한 마음으로 살생하지 않는 것이 정업의
정인(正因)이다. 용이 부처님의 말씀을 따랐으니
왕생은 진정 의심할 수 없는 일이다.
앵무새(鸚鵡)
당(唐) 정원(貞元. 785-805) 중에 하동에 배(裵)시
성을 가진 자가 앵무새 한 마리를 길렀는데,
늘 염불하면서 오후에는 먹이도 먹지 않았다.
임종에 열 번 염불하고 숨이 넘어갔는데
불에 태워 사리 10여 낱을 얻었다.
눈이 부실 정도로 투명하고 맑았다.
혜관(慧觀)스님이란 분이 벽돌을 구워 탑을
세우고 이 신비한 일을 널리 알렸다.
성도(成都)의 윤 위고(尹韋皐)가
이 사실을 기록하였다. ‘
공상(空相)을 무념에서 깨달아 진골(眞骨)을
죽음에서 남겼네.’ 하는 구절이다.
구욕새(鴝鵒) 1
송(宋) 황암(黃岩) 정등사(正等寺)의 관(觀) 공이 구욕새를
길렀는데, 말을 할 줄 알아 늘 염불을 끊이지 않았다.
하루는 서서 죽길래 흙을 파고 묻었더니
그 자리에서 붉은 연꽃 한 송이가 피어났다.
기이하게 여겨 파 보니 혀 끝에서 돋아난 것이었다.
영지율사(靈芝律師)가 이 사실을 찬탄한 적이 있다.
‘새장에 갇혀 서서 죽은 것도 예사롭지 않거니와,
죽은 후 붉은 연꽃도 너무나 신기하다’라는 구절이다.
* 구욕새(鴝鵒): 흔히 ‘팔가(八哥)새’라 한다. 때까치
비슷하게 생긴 새로 사람의 말을 할 줄 안다.
구욕새(鴝鵒) 2
담주(潭州)에 어떤 자가 구욕새를
길렀는데 이 새가 염불할 줄을 알았다.
죽은 후에 관에 넣어 장사지냈는데,
홀연히 연꽃 한 송이가 그 입에서 나와 피었다.
어떤 이가 이렇게 노래한 것이 있다.
신비한 새 한 마리 있었네. 이름은 팔가(八哥)였네
스님 입을 따라 미타를 염할 줄 알아
죽은 후 평지에 묻으니 연화가 피었네
사람으로 그럴 줄 모르면 아! 어찌해
有一靈禽號八哥 유일령금호팔가
解隨僧口念彌陀 해수승구념미타
死埋平地蓮花發 사매평지련화발
人不回心爭奈何 인부회심쟁나하
찬(贊)
앵무나 구욕한테 사람이 염불을
가르치는 경우는 흔히 있었다.
그런데 지금 어찌하여 왕생하는 경우는 보지 못하는가.
아! 세상 사람들의 경우만 해도 누구나 염불의 가르침을
듣긴 하지만 어떤 이는 신심으로 염하는 자도 있고
어떤 자는 가벼운 마음으로 염하는 자도 있다.
그러므로 염불하는 사람은 많으나 왕생하는 자는 드문 것이다.
저 앵무나 구욕만이 어찌 유독 그렇지 않겠는가.
총론(總論)
어떤 이는 ‘사람은 신령하고 축생은 어리석다.
어떻게 축생이 왕생할 수 있겠는가’하고 말한다.
이것은 모든 성정(性情)이 있는 것은 모두 부처의
영각(靈覺)이 있다는 사실을 모르고 한 말이다.
미혹함이 두텁고 엷은 것이 있음으로 해서
사람과 축생으로 나뉘어지지만 신령하고
어리석음이 균등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꿩이 <법화경>을 듣고 다음 생에는 스님이 된 적도 있었고,
소가 부처님의 얼굴을 보고는 죽어 천상에 태어난
사실은 분명히 여러 전기에 기록되어 있다.
더욱이 ‘지옥 중생이나 귀신이나 축생도
모두 나의 국토에 태어나과저’했던 것이
법장비구의 본원(本願)이었음에랴.
안타까운 점은, 사람으로서 축생의 왕생을 보고도
무덤덤히 깨달을 줄 모르고 오탁(五濁)을 감수하거나
꼼짝할 수 없이 윤회에 빠져, 숨 한번 쉬지
못하면 형체가 비늘이나 깃털로 바뀌어도
스스로 그런 줄 알지 못하는 것이다.
아! 이를 어찌하면 좋단 말인가.
열심히 염불 수행 합시다
나무 아미타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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