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행의 두 길
옛 가야땅에 두 청년이 살았다.
한 청년의 이름은 박박이었고,
다른 청년의 이름은 부득이었다.
두 사람은 한 마을에서 자라난
동네친구였는데, 박박의 성격은
깐깐한 데다 고집이 센 편이었으며,
부득의 성격은
이해심이 많고 온유했다.
그들은 나이 20세가 되어 승려가 되기로
결심하고산으로 들어갔다.
그들이 도착한 곳은
백월산(白月山) 무등곡이었다.
박박은 북쪽 고개의 사자바위를 차지하고
거기에 판잣집을 짓고 살았으므로
그의 거처를 판방(板房)이라 했으며,
부득은 인가가 가까운 남쪽 고개의
돌무더기 아래 시냇가에 승방을 짓고
살았 으므로 뇌방(磊房)이라 하였다.
그들은 가끔 만나서 말없이 산길을 걷기도 하고
계곡물을 바라보며 덕담을 나누기도 하였다.
그때마다 부득은 용맹정진하고 있는
박박이 부러웠다.
박박의 수행은 너무도 엄격하고 철저하여
그의 몸이 지탱하고 있는 것만도 신기할 정도였다.
“석가모니께서도 5백생의
정업(淨業)을 닦았다지 않던가.
성불의 씨앗을 싹틔우기 위해선
이 정도의 고행은 아무것도 아니지.”
“하지만 건강도 생각하게.
거문고 줄도 너무 잡아당기면
그 본래의 소리가 나지 않는다네.”
어느 날인가는 이런 이야기를 나눈 적도 있었다.
예고 없이 부득이 살고 있는
뇌방을 찾아온 박박이 말했다.
“아니, 자네가 섬기는
미륵부처님 어디로 치웠는가?”
“저 아랫마을 할머니 신도 한 분이 어찌나
모시고 싶어하는지 그분 집으로 보내드렸지.”
“그럼, 이제부터는 누굴 섬기겠다는 건가?”
“저 이름 없는 중생들일세.
마을 사람들이 나의 미륵부처님일세.
하늘과 땅의 뜻을 거스르지 않고
살아가는 저 중생들이야말로
나의 미륵부처님이지.”
“미륵부처님은
미래에 오신다는 미륵불 아닌가?”
“그렇지. 그러나 미륵부처님은
벌써 저 중생들 마음속에 와 계시네.
나는 그렇게 믿고 있네.”
판방으로 돌아온 그날 밤 박박은
밤새 잠을 못 이루었다.
부득의 태도를 이해할 수는 있었지만
부득이 바른 길을 걷고 있지
않는 것 같아 친구로서 괴로웠다.
그래서 사자바위에 올라가 둥근 달을
쳐다보면서 아미타경을 수없이 외웠다.
자기 방에 모셔둔 미륵불상을 치워버린
부득을 위해서 정토 왕생을 염원하며
기도할 때는 그의 얼굴에
눈물이 흐르기도 하였다.
이날 이후 박박은
더욱 더 불도에 정진하였다.
그리고 부득에게 단 한 번도
이야기한 적은 없지만 부득의 정토
왕생을 위해서 날마다 기도해 주었다.
이러기를 3년-.
어느 봄날 산그늘이
접혀지는 저녁 무렵이었다.
아기를 밴 듯한 아낙이 박박이 기거하고
있는 판방을 찾아와 하룻밤
자고 가기를 간절하게 청했다.
“날이 저물어 찾아왔습니다.
갈길은 먼데 인가는 보이지 않으니
어찌합니까? 스님,
하룻밤 자고 갈 수 없겠습니까?”그러나
박박은 아낙을 방으로 맞이할 수 없었다.
더욱이 판방에서 아낙이 아기를 낳기라도
한다면 마을 사람들한테
엉뚱한 소문이 퍼질 수도 있었다.
스님이 숨겨둔 여자가 아기를 낳았다고
금세 소문이 돌 수도 있었다.
박박은 한마디를 내뱉고는
문을 쾅 닫아버렸다.
“수도하는 곳은 청정해야 되니
아낙이 가까이 올 곳이 아니오.
날이 더 어두워지기 전에
어서 이곳을 떠나시오.”
판방에서 거절당한 아낙은 참담한 심정이 되어
이번에는 부득이 살고 있는 뇌방으로 찾아갔다.
부득은 어둠 속에 서 있는
아낙을 보고 마당으로 내려섰다.
“어디서 오는 길이오?”
“갈길이 멀어 찾아들었습니다.
하룻밤 묵어갈 수 없겠습니까?
스님.”
뇌방을 둘러싸고 있는 소나무와 대나무
그림자가 한층 선명 해지고,
마을 쪽으로 흘러가는 시냇물 소리가
더욱 차갑게 들려왔다.
부득은 아낙의 모습에서도 바른 법을
일러주러 온 미륵불일지
모른다고 생각하며 말했다.
“이 집은 아낙과 함께 밤을 새울 곳은 아니오만,
밤이 깊어가고 있으니 문전박대할 수가 없구료.
중생의 뜻을 따르는 것도
보살행의 하나이니
누추하지만 들어오시오.”
아낙을 맞아들인 부득은
밤새 쉬지 않고 염불을 외웠다.
배가 볼록한 아낙이 고통스럽게 얼굴을 일그러
뜨리며 비명을 내지르곤 하였기 때문이었다.
아낙은 산기의 진통을 참고 있는 중이었다.
하룻밤을 묵어갈 수 있게 허락을 해준
스님에게 누를 끼치지 않기 위해 아기를
낳더라도 다음날 다른 장소에서 낳으려고
이를 꼭꼭 물었다.
그러나 새벽이 되어서는 더 참지 못했다
그래서 할 수 없이 부득을 불렀다.
“스님, 죄송하지만 산기가 있어 그러하오니
자리를 좀 마련해 주십시오.”
부득은 진통을 꾹꾹 참고 있는 아낙이
측은하여 등불을 들고
시키는 대로 거들어 주었다.
마침내 아낙은 무사히 해산을 하였다.
그런데 이번에는 아낙이 부득에게 물을 데워
아기를 목욕시켜 달라고 사정했다.
뿐만 아니라 아기를 낳으면서 더러워진
자신의 가린 부분의 몸도
씻어주기를 바랐다.
부득은 눈을 어디다 둘지 부끄럽고 두려웠지만
탈진한 산모를 위해 정성껏 몸을 닦아 주었다.
바로 그때였다.
깜짝 놀라면서 목욕통에서 손을 빼었다.
고약한 냄새 때문에 되도록이면 목욕통에서
코를 멀리 두고 있었는데,
그 냄새가 사라진 것이었다.
‘그렇다! 더러울 것도 깨끗할 것도 없는데
마음이 그렇게 휘둘릴 뿐이야.’
부득은 깨달음을 얻은 기쁨으로 어쩔줄 몰랐다.
그래서 부득은 아낙과 아기가 쓰고 남은
목욕통의 물로 목욕을 하기도 하였다. .
이제는 더러울 것도
깨끗할 것도 없는 물이었다.
부득에게는 향기를 풍기는,
깨달음을 안겨준 소중한 물이었다.
날이 밝자, 아낙은 부득을 위해
서둘러 산길로 사라졌다.
부득은 아낙이 사라진 쪽을
향하여 합장을 했다.
“관세음보살일지도 몰라.
수행을 해도 지혜를 얻지 못하는 나를 위해
어젯밤 나타나셨는지도 모르지.”잠시 후,
간밤의 일이 궁금한 박박이 부득을 찾아왔다.
이제 부득은 어제의 부득이 아니었다.
부득의 얼굴은 마을 할머니에게 보낸
미륵불과 너무도 흡사했다.
“아니, 이럴 수가!”
박박은 잠시 호흡을 가다듬은 뒤, 부득이
시키는 대로 목욕통 속의 물을 바라보았다.
“그 물에서 향기를 맡을 수 있을 거네.
나보다 수행이 더 깊은 자네이니까.”
이윽고 부득의 도움을 받은 박박도 그 목욕통
속의 물을 통해서 아미타불을 보았다.
목욕통에 어린 물그림자는 박박 자신의
얼굴을 닮은 아미타불이었다.
부득은 친구의 물그림자를 바라보며
그렇게 믿었다.
- 불교설화(佛敎說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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